[단독]화살 쏴 친구 실명시킨 초등생..法 "교사도 책임"

백경서 입력 2021. 1. 12. 05:01 수정 2021. 1. 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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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법, "교사 책임 없다" 경북교육청 항소 기각
1심선 "청구 금액 일부 손해배상 하라" 판결
아동학대 일러스트. [중앙포토]

초등학교 수학여행지에서 친구가 쏜 화살에 맞아 실명한 초등학생 A군(사건당시 12세) 사건에 대해 법원이 “가해 학생의 부모와 학교는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구고법 민사2부(부장 이재희)는 11일 “A군 측이 자신을 다치게 한 가해 학생의 부모와 경북교육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교사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경북교육청의 항소를 최근 기각했다”고 밝혔다. 경북교육청은 항소심 판결 후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앞서 2019년 대구지법 1심 재판부는 “가해 학생 부모와 경북교육청은 피해 학생 측이 청구한 손해배상금 중 일부와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학여행에서 예측할 수 있는 사고인데 담당교사가 지도·감독 의무를 소홀히 해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 가해 학생의 부모는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자녀를 교육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교사가 소속된 경북교육청과 가해 학생 부모 모두 공동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러스트 강일구]


사건은 2017년 7월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한 유스호스텔에서 발생했다. 당시 경북 영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수학여행의 일종인 ‘사제 동행 캠프’를 간 자리에서 A군과 가해 학생 B군 등 4명이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B군은 이날 자정 취침 시간이 지날 때까지 놀다가 갑자기 오전에 기념품으로 산 장난감 화살을 꺼냈다. 화살은 원래 한쪽 끝에 고무 패킹이 붙어 있었으나 B군은 고무 패킹을 제거하고 교사 몰래 가져온 커터칼로 활의 끝부분을 뾰족하게 깎았다.

이후 B군은 화살을 A군 쪽으로 향했고, A군은 베개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방어했다. 이를 본 친구가 “뾰족한 화살로 사람을 쏘면 다친다.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B군은 멈추지 않았다. A군이 베개를 치우고 B군을 쳐다보는 순간 화살이 발사되면서 A군의 좌측 눈에 맞았다.

사건 직후 A군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왼쪽 눈이 실명됐다. 이후 학교 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B군 행동에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전학’ 조치를 내렸다. B군은 14살 미만 촉법소년이어서 형사 처벌은 받지 않았다.

다문화가정 자녀인 A군은 어머니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와 생활하다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왕따 논란이 있었지만, 학교 측은 “왕따를 당한 건 아니다. 학교 임원을 맡을 정도로 활발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고 설명했다.

사건 직후 A군의 고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가 상처를 많이 받은 상태”라며 말을 아꼈다. 관련 기사가 나간 뒤 중앙일보에 후원 문의가 쏟아졌지만, “조카를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라며 모두 거절했다.

A군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나면서 곧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A군의 변호인인 김용휘 변호사(법률사무소 율휘)는 “축구를 좋아하던 A군은 균형 감각이 떨어져 운동이 어렵고 왼쪽 눈 근처 근육이 굳는 현상이 발생해 나중에 눈 적출까지 갈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구지방법원 전경. 백경서 기자


법조계 안팎에선 이번 판결을 놓고 교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A군의 신체 기능적인 장해뿐만 아니라 앞으로 A군이 안고 가야 할 외모적 장해(추상적 장해)까지 감안한 판결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A군의 실명으로 인한 단순한 노동력 상실뿐만 아니라 A군의 외모적 장해까지 고려해 손해배상액을 산정해서다.

김 변호사는 “(A군의) 얼굴에 남게 될 외모적 상처인 추상장해를 법원에서 인정해 손해배상금액이 높아진 사례”라며 “앞으로 얼굴에 장해를 입게 될 경우 기능적 장해뿐만 아니라 외모적 장해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수 있는 전례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영주=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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