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노동자] "XX 어디서 말대답이야" 갑질에 신음하는 경비실 '제2의 최희석들'

김영훈 2021. 1. 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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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100명 심층 인터뷰
욕설·폭행·멸시·부당지시 등
61명 "갑질 피해 경험 참담"
사직서 품고 다니는 '임계장'
"호소할 곳 없어 갑질 둔감해져"
편집자주
택배기사와 경비원, 청소노동자가 스러질 때마다 정부·국회·기업들은 개선책을 쏟아냈다. 금방이라도 해결될 듯 보였지만 그들의 삶이 한 뼘이라도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가 고달픈 현장 노동자들의 삶을 심층 취재했다.
한국일보가 만난 수도권 지역 경비노동자 30명의 뒷모습. 설문 및 인터뷰를 진행한 100명의 경비노동자 중 30명의 협조를 받아 그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신원이 특정되는 것을 우려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조건으로 촬영에 협조했다. 김영훈 기자
법원 갈 때마다 ‘형님 나 좀 살려주시오’라는 동생의 통곡이 귓가에 맴돌아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경비노동자 고(故) 최희석 형

지난해 12월 7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심모(50)씨의 결심공판에 참석한 최광석씨는 법원 가는 길을 일부러 멀리 돌아갔다.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생을 마감한 동생 최희석(59)씨가 생전 일했던 아파트를 지나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광석씨는 “동생이 일했던 경비초소를 방문할 때마다 곡소리가 들려 재판이 끝날 때까진 방문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을 떠나 보낸 가족들의 회한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최희석씨가 세상을 떠난 지난해 5월 10일은 공교롭게도 최씨가 가장 사랑한 둘째 딸의 생일이었다. 아파트 입주민 심씨의 폭행에 코뼈가 부러져 입원했던 최씨는 병원을 몰래 빠져 나와 집으로 향했다. 둘째 딸은 당시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해준다고 해서 집에 없었다. 생때 같은 딸과 헤어지는 선택을 하는 와중에도 딸의 생일을 기억했던 걸까. 숨진 최씨의 품 안에는 ‘딸아 사랑해’라는 메모와 함께 30만원이 든 현금봉투가 들어 있었다.

서울 강북구 S아파트 경비노동자였던 최희석씨는 지난해 5월 10일 새벽 2시쯤 자신의 자택 근처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중주차된 입주민의 차량을 움직인 대가는 폭언과 폭행이었다. 입주민 심씨는 경비원 최씨를 ‘머슴’ ‘종놈’이라고 부르며 최씨의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사표를 쓰라고 협박했다. 심씨는 최씨의 코뼈가 부러졌는데도 최씨가 쓰던 경비원 모자로 최씨의 부러진 코를 쉴새 없이 때리기도 했다. 갖은 폭언과 폭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씨는 관리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관리소장 역시 입주민에겐 ‘을’의 신분이라 최씨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심씨의 반복적인 갑질에 최씨의 몸과 마음은 산산이 부숴졌다. 하지만 아프다고 출근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 근무태만으로 비춰져 해고될 빌미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최씨가 부러진 코에 반창고만 붙인 채 1평(3.3㎡) 남짓한 죽음의 일터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결국 최씨는 다른 입주민들이 사건을 알아차릴 때까지 20일 동안 그 어떤 곳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서서히 영혼을 잃어갔다. 그리고 ‘더 이상 경비가 맞고 억울한 일 당해서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최씨가 사망한지 꼭 7개월이 된 지난해 12월 10일 재판부는 최씨를 감금하고 구타한 심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최씨가 죽음을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경비노동자를 향한 멸시와 갑질은 사라졌을까. 정부가 ‘제2의 최희석 사태'를 막고자 ‘범정부 갑질 피해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갑질 피해를 당한 경비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경비실 문턱을 넘지 못해 알려지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곁에 있지만 어두운 면은 잘 보이지 않는 그들, 한달간 경비원 100명을 직접 만나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경비실 밖으로 끄집어내봤다.


최희석씨 죽음에도 입주민 갑질은 현재진행형

경기 군포의 아파트 경비원 고원중(가명·74)씨는 지난해 8월부터 입주민의 폭언과 협박에 수개월 동안 시달렸다. 아파트 관리규약상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분리 수거한 입주민에게 “다음에는 좀 더 빨리 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을 건넨 게 화근이었다. 고씨의 말에 화가 난 입주민은 “내가 주는 월급 갖고 일하는 주제에 어디서 말대답이냐”며 언성을 높이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중주차 문제로 최희석씨가 괴롭힘을 당한 것처럼, 고씨 역시 분리수거 사건이 발생한 뒤부터 입주민의 갑질로 고통을 겪었다. 입주민은 휴게시간 중 경비초소에서 잠을 청하던 고씨에게 근무태만이라며 관리소장에게 해고하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고씨와 일부러 충돌을 빚기 위해 정해진 시간이 아닐 때 재차 분리수거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고씨는 관리소장과 함께 입주민 집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어야 했다. 공동주택관리규약을 준수한 게 고씨의 죄였던 셈이다. 고씨는 현재 입주민과 갈등을 빚었다는 이유로 경비용역업체에 반성문을 제출한 상황이라 재계약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고씨는 한국일보에 “너무 억울하고 막막하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어 화병이 날 지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 소재 아파트 경비실 내부 화장실 모습. 문고리도 달려 있지 않아 화장실을 열어 둔 상태로 경비실에서 업무를 봐야 한다. 화장실 안에 커피포트가 있고, 밑의 파란색 상자는 경비실에서 휴식을 취할 때 내부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김영훈 기자.

영혼을 잃은 뒤에야 드러나는 갑질피해

갑질에 시달리는 경비노동자는 고씨만이 아니었다. 한국일보는 경비노동자의 노동실태를 확인하고자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서울·경기지역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170여명의 경비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다. 이 중 인터뷰에 응한 경비노동자 100명을 상대로 갑질 피해경험 및 고용계약형태, 임금, 원하청 부조리 등 9문항으로 구성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경비노동자의 세계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참혹했다. 갑질을 당했다고 응답한 경비원들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이들이 홀로 감내했던 피해가 무엇이고 피해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우리 사전에 인권이란 말은 없다"고 토로했다. 100명의 경비노동자 가운데 △언어폭력 △임금체불 △부당해고 △폭행 등 ‘갑질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경비원이 61명(61%)이나 됐다. 그런데도 경비원들의 인권침해 실태는 최희석씨 사례처럼 걷잡을 수 없이 문제가 커진 뒤에야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하고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힌 사례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구로구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 서모(64)씨는 술에 취해 대리기사가 운전한 차를 타고온 입주민 동대표에게 뺨을 맞았다. 출근길에 자신이 주차했던 자리를 비워두라고 말했는데, 다른 차량이 주차하도록 내버려뒀다는 게 폭행 이유였다. 너무 수치스럽고 울컥해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했다는 서씨는 그날 그사건을 가슴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서씨는 "용역업체나 관리소장에게 맞았다고 말해봤자 돌아오는 건 계약만료라는 이름의 해고통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설문조사에서 갑질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한 경비노동자 61명은 서씨처럼 폭행(4.9%)이나 부당업무지시(27.8%), 욕설(21.3%), 협박(13.1%)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시각물_경비 노동자 실태조사_갑질피해경험. 강준구 기자

임금을 떼이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 안양의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관리소장, 경비원, 미화원, 시설관리직원 등 공동주택 노동자 91명은 입주자대표 회장의 전횡으로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치 임금인 4억6,000만원을 받지 못했다. 회장으로 당선된 최모씨의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돼 선거무효 판결이 났는데도, 직무대행에게 사용 인감을 반납하지 않아 월급 지급이 멈췄다. 임금체불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비원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다. 14년째 경비원으로 일해온 조모(75)씨는 “3개월 동안 이어진 임금체불로 휴일에도 일용직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관리소장 표모(60)씨는 “일부 입주자의 전횡으로 아파트 시설 수리·교체비까지 막혀 버렸다. 입주민 3,300세대는 물론 노동자 91명의 삶까지 황폐해졌다”고 밝혔다.

시각물_경비원 갑질 사례.png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피해자들

경비노동자와 직접 계약한 용역업체는 경비원들을 보호할 1차적 책임이 있지만, 입주민 갑질을 묵인하고 방조하면서 경비원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상 아파트주민회의가 용역업체 및 위탁관리회사를 통해 경비원들을 고용할 경우, 입주민은 사용자 지위가 아닌 만큼 경비원에게 직접 명령하거나 해고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입주민이 용역업체에 명령해 경비원을 해고하거나 감원시키는 경우가 빈번하다. 용역업체가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재계약을 따내기 위해 입주민들의 비위를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서울 동대문구 아파트 경비원 김모(71)씨는 용역업체로부터 지난해 12월 31일까지만 출근하고 더 이상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씨가 택배를 분류한 지 일주일이 넘도록 입주민이 가져가지 않아 물품이 분실됐는데, 입주민이 이를 김씨 책임으로 몬 것이다. 입주민이 “재계약하고 싶으면 당장 김씨를 해고하라”고 용역업체에 압력을 넣자, 업체는 순순히 김씨를 자르기로 결정했다. 김씨는 “해고 통보를 받기 전날만 하더라도 3개월 계약 연장을 할 것처럼 말해놓고, 입주민 한 마디에 뒤집히는 걸 보니 ‘파리목숨’이 따로 없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만난 경비노동자 100명 가운데 용역회사(89%)에 고용된 형태가 절대적이었다.

시각물_경비 노동자 실태조사_고용방식. 강준구 기자

더욱 심각한 건 경비노동자의 울타리 역할을 해야할 용역업체가 되레 경비원들의 고용불안 심리를 이용하는데 있다. 경기 안양의 아파트에서 2017년부터 경비원으로 근무한 박우홍(가명·70)씨 역시 김씨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12월 31일을 끝으로 출근할 수 없게 됐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업체와의 재계약 조건으로 경비원 감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급작스런 해고통보보다 더욱 황당했던 건 박씨가 받아야 할 퇴직금이 자신도 모르게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DC형은 용역업체가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위탁해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용역업체는 박씨를 포함한 경비원들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퇴직연금 사업자에 넘기면서 상품권을 받았지만, 경비원들은 구경조차 못했다. 경비원 개인정보가 용역업체의 돈벌이에 이용된 것이다. 더구나 최저임금이 오른 상황을 감안하면 DC형으로 퇴직금을 받게 되면 예상보다 적은 돈을 손에 쥘 수밖에 없다. 박씨는 “3개월마다 새로 고용계약서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용역업체에게 항의할 간큰 경비원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설문조사 결과 박씨처럼 3개월 이하 '초단기 근로계약서'에 서명한 경비노동자는 무려 63%에 달했다. 3명은 1개월 단위의 ‘초초단기 근로계약서’에 사인했다. 계약만료가 다가올 때마다 사직서를 미리 제출하는 게 관행임을 감안하면, 경비노동자들은 작업복 속에 항상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고 볼 수 있다.

시각물_경비 노동자 실태조사_고용기간. 강준구 기자

고용불안에 낮아져만 가는 갑질감수성

문제는 대다수 경비노동자가 갑질 피해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정확한 실태가 외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경비원 100명 중 61명이 갑질을 당했다고 밝혔지만, 경찰이나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경비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보복 두려움(44.2%) △신고 기준을 몰라서(27.8%) △처벌 법이 없을 것 같아서(22.9%) 순으로 나타났다.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근본 원인으론 고용불안과 지원기관 부재가 꼽힌다. 피해를 호소해도 해결책이 없기에 경비노동자 스스로 낮은 ‘갑질 감수성’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더욱 음성화된 형태로 갑질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경비원 경험이 처음일수록 입주민 언어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연차가 오래되면 인권보호와 고용불안을 해결해줄 제도가 없다는 걸 알고 갑질에 점점 둔감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시각물_경비 노동자 실태조사_갑질피해신고유무. 강준구 기자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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