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민사린의 이야기.. 카카오TV '며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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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며느리라면 누구나 거치는 시기가 있으니, 이른바 '며느라기(期)'다.
'며느라기'는 민사린(박하선)이 대학 동기인 무구영(권율)과 결혼 후 마주하게 되는 '며느리'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정밀하게 그린다.
'며느라기'를 연출한 이광영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성별이나 역할에 따른 가치나 생각에 대해 옳다, 그르다 답을 내리기보다는 시모, 며느리, 아들 등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연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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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며느리라면 누구나 거치는 시기가 있으니, 이른바 '며느라기(期)'다. 수신지 작가의 동명 웹툰에 따르면 "며느리로서 어찌어찌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는" 때다.
"시가에 가면 가만히 앉아 있기가 영 불편해서 차라리 설거지라도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솔직히 앉아 있는 게 편하지 어떻게 설거지하는 게 편해~ 내가 어리니까 내가 하는 게 맞지, 라고 생각해본 적은요?"
그렇다면, 100%다. 당신의 며느라기.
기혼 여성들만의 사적인 서사로 머물던 '시월드' 속 이야기를 논쟁거리로 끌어올린 2007년 웹툰 '며느라기'가 2021년에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토요일 한 편씩 카카오TV에서 공개되고 있는 웹드라마 '며느라기'가 7편 만에 조회수 1,000만을 넘어선 것. 웹드라마의 경우 100만뷰를 성공 기준으로 삼는 만큼 그 자체로 커다란 성과다.
무엇보다 일상에 스민 부조리함을 과장없이 섬세하게 드러내면서 가부장제의 구조적 문제까지 건드리는 건 '며느라기'의 가장 큰 성취다. '며느라기'는 민사린(박하선)이 대학 동기인 무구영(권율)과 결혼 후 마주하게 되는 '며느리'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정밀하게 그린다.
시월드에 입성한 사린의 고난뿐 아니라 시어머니이자 평생 집안 제사를 모신 큰집 며느리인 기동, 시누이인 동시에 며느리인 무미영(최윤라) 등 각자 중첩된 자리에 발 딛고 있는 인물들의 입장을 두루 보여준다. '며느라기'를 연출한 이광영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성별이나 역할에 따른 가치나 생각에 대해 옳다, 그르다 답을 내리기보다는 시모, 며느리, 아들 등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연출했다"고 밝혔다. 이들 모두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정해진 역할을 했을 뿐 악의가 없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러면서도 '며느라기'는 그 '위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짚는다. 시월드 안에서 사린은 '며느리'로만 존재한다. 시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도 '구영이 처'다. 회사에서 인정 받아 해외출장을 가게 된 사린 앞에서 시모는 아들 끼니 걱정부터 한다. 혹 아들보다 월급을 더 받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며느리에게 앞치마 선물을 하고, 음식하는 걸 돕겠다는 아들은 주방 밖으로 쫓아낸다. "며느리가 시모 생신상을 차리는 건 당연한 일"이 된다. 시가 식구들이 못되서가 아니다. 가부장제가 정한 여성의 자리, 며느리라는 역할에 요구되는 소임일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안온하고 따뜻한 풍경 속 자리한 구조적 폭력을 '며느라기'는 놓치지 않는다.
'며느라기'가 고부간 '을들의 싸움'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평생 아내의 가사노동에 의존한 채 살아와 제손으로 밥 한끼 차려먹을 줄 모르는 시부와 고생한 엄마 대신 일해줄 며느리를 데려왔으니 제몫의 효도는 다한 것처럼 구는 구영은 가부장제의 최대 수혜자다. 불합리를 인정하면서도 구영은 사린에게 "부모님 만나는 날만 그렇게 있어주면 안 될까"라고 한다.
이 거대한 공모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국을 더 먹으려고 주방으로 향하는 중학생 조카손자에게 "아서, 남자가 거길 왜 가"라고 말리면서, 행주로 상을 닦는 5세 여아에겐 "시집 잘 가겠네"라고 하는 장면이 겹쳐지는 명절 아침은 의미심장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여성은 주방, 남성은 거실에 자리한 풍경은 어느 가정이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웹툰에서 사린의 엄마는 사린에게 "느린 것 같아도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어. 바뀌더라도 천천히 바뀌어야 탈이 없는 거야"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탈이 나지 않도록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익숙해지면 어쩌지?" 사린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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