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속 '내복 여아' 방치 엄마 사연이 논란인 이유

조민영 입력 2021. 1. 12. 04:01 수정 2021. 1. 1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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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한 엄마, 아이와 34번 통화 기록 나와
"아이 홀로 둔 건 학대" 비난 속 "엄마 홀로 감당 현실 안타깝다" 의견도
"사각지대 도움 필요" 목소리↑

지난 주말 영하 13도의 날씨에 길거리에서 내복 차림으로 떨다 구조된 다섯 살(만 3세) 여아 사연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입양 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세상을 뜬 ‘정인이 학대 사망사건’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가운데 벌어진 일인 만큼 ‘내복 아이’ 엄마를 향한 비난도 매서웠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홀로 아이를 키우며 일하러 나가야 했던 사정, 일터에서 아이에게 수십 차례 통화했던 기록,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고 있던 남편 등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단순히 엄마만 비난할 일인지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육아와 생계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싱글맘(대디)이나 육아와 관련한 교육은 물론 기본적인 준비 없이 부모로 내몰린 미혼모(부) 등에 대한 교육과 실질적 지원이 있어야 사각지대에서 반복되는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11일 JTBC는 지난 8일 ‘내복 차림’으로 발견된 이 아이가 엄마 A씨와 통화한 내역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A씨가 출근한 오전 10시34분부터 20, 30분 간격으로 아이와 연락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오후부터는 대부분 아이가 먼저 전화를 거는데 A씨가 바로 받지 못하고 나중에 다시 아이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반복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A씨가 퇴근 전 마지막으로 전화한 오후 5시까지 6시간 반 동안 모두 34번의 통화가 이뤄졌다. 아이와 A씨 사이 통화가 되지 않은 것은 오후 5시6분부터라고 한다. 아이는 엄마와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 동안 10번 더 전화를 걸었고, 이때부터 40여분 뒤 길에서 시민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아이는 미아방지 팔찌를 차고 있었고, 이 덕분에 아이를 발견한 시민이 엄마에게 연락해볼 수 있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어 연결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JTBC에 따르면 이 시민은 5시55분쯤 엄마에게 아이를 발견해 보호 중이라고 문자를 보냈고 A씨는 5분여가 지난 뒤 편의점에 도착했다.

실제 아이를 구조해 보호했던 시민 B씨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가 내복만 입고 울면서 엄마를 찾고 있었다”면서 “제가 이해하기로는 (아이가)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없어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B씨는 일단 아이를 안고 아이가 말해준 집으로 갔지만 현관문이 비밀번호로 돼 있어 열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전했다. 이후 몸을 녹이기 위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가 아이 팔찌에 있는 엄마 전화번호를 발견했다. B씨는 이 번호로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가 꺼져 있는지 연결이 안 됐다고 했다. B씨는 “출동한 경찰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아이 어머님이 오셨다”고 말했다.


B씨는 “아이 엄마가 굉장히 급하게 들어오면서 아이를 안았다. 아이가 저랑 얘기할 때는 단어만 나열하는 정도였는데 엄마를 만났을 때는 품에 안겨서 말도 잘했다”고 했다. 아울러 “아이 엄마도 ‘너무 추웠지’라며 걱정하고 쓰다듬어줬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아이 엄마 A씨를 아동복지법상 유기·방임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인 서울 강북경찰서는 신체적 학대 정황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이의 상태도 밝고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역 맘카페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영하 15도 안팎을 오가던 날씨에 만 3세 아이가 밖에서 떨어야 했던 상황, 홀로 9시간 가까이 방치됐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쓰레기가 쌓여 있던 집안 상황 등을 볼 때 아이가 정서적으로 방치·학대된 것만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홀로 일하며 아이를 돌봐야 했던 엄마에게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엄마의 방치·학대 가능성에 대한 경찰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아이가 엄마와 분리돼 친척집에 가 있다는 소식과 관련, “그동안 엄마가 홀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 것을 보면 친척집에서는 안전히 잘 있을지 걱정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엄마의 방임 책임에 대한 처벌 여부와는 별개로 이 같은 사각지대를 사회적으로 지원해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일을 예방하는 근본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제안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 A씨는 남편 없이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년 전 아이 아빠와 이혼한 A씨는 당시 두 살배기였던 아이와 모자원에 들어갔다 4개월 전에 이 시설에서 독립했고 생계를 위해 부업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이 한 달에 10만원의 양육비를 주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녔지만 사건 당일 등원을 거부해 집에 있게 됐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어린이집 측도 사건 전날까지 아이가 매일 등원했으며 특별한 학대 정황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인근 주민들이 이전에도 아이가 혼자 거리를 떠도는 모습을 목격하는 등 상습적으로 방치됐다고 증언함에 따라 상습 방임 등이 있었는지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다만 아이에 대한 학대 의심 사례 신고가 접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아이는 B씨가 아침에 출근한 뒤 9시간가량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혼자 있었으며 잠시 집 밖으로 나왔다가 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관계자 등과 함께 출동해 이들의 집을 확인한 결과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임을 확인했다.

한편 이들 모녀 사연과 관련해 성북 아보전이 A씨가 딸을 적절히 양육할 수 있는 상황인지 장기간에 걸쳐 점검하는 사례 관리에 들어가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례 관리는 통상 사건 발생 9개월에서 1년 정도 이어진다.

아보전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대로 모녀의 여러 상황과 아이의 안전을 고려해 가정으로 복귀시킬지, 아동보호시설로 옮길지 결정할 예정이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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