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수술했는데 이번엔 고관절을 수술하자고?

안강 안강병원 원장 2021. 1.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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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박사 안강의 無痛 오디세이]

쿠웨이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허리와 엉덩이 통증이 심했어요. MRI 검사를 마치고 척추관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죠. 척추 신경이 지나는 척추관이 좁아졌으니 이를 넓히고 척추가 흔들리지 않게 쇠를 박아 고정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수술 후에도 통증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당시 수술을 집도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다른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죠. 그런데 새로 만난 의사 선생님은 다른 말씀을 하시더군요. ‘엉덩이가 많이 아프셨겠네요. 사진을 보니 고관절(엉덩이 관절)에 퇴행성 관절염 증상이 심각해요. 이번에는 고관절을 인공 관절로 바꿔야겠어요’ 하고 말이죠.”

안강 안강병원 원장이 쿠웨이트에서 척추관협착증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안 원장은 “척추에 문제가 있을 때 엉덩이 앞뒤나 무릎 등에도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며 “해당 부위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전문 의료진을 찾아 정확한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안강병원 제공

중동에도 우수한 의사가 많지만 아직 우리나라 의료 수준과 비교하기에는 격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 의사가 꼼꼼하게 진료하는 국내에서는 이런 사례가 드문 반면, 중동에서는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난다. 고관절 부위가 허리와 같은 신경의 지배를 받아서다. 이 때문에 허리에 문제가 있어도 엉덩이나 고관절 부위에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척추가 퇴행성 변화를 일으킬 때 천장관절이나 고관절의 퇴행이 같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고관절 손상이 심하면 걸을 때마다 뒤뚱거리게 되고, 천장관절이나 허리 움직임도 제한돼 협착증은 더욱 악화된다.

정반대인 일도 일어난다.

“엉덩이가 아파 병원을 찾았습니다. 퇴행성 고관절염이라고 하더군요. 한두 번 주사를 맞았더니 상태가 좋아지는 듯하다가 금세 다시 아프더라고요. 조금 이른 감은 있었지만 통증을 참을 수 없어 고관절을 인공 관절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아픈 건 여전했어요. 의사가 이번에는 허리를 수술해 보자고 했어요.”

이 경우에도 단순히 환자 말만 들었을 때는 의사가 완전히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오랫동안 요통을 겪는 환자의 20~40%는 이미 고관절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뇌는 처음부터 아픈 곳을 모두 표현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곳의 통증을 먼저 전달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위는 감추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척추관협착증 환자의 왼쪽 다리 저림 증상이 호전되면 오른쪽 다리에 통증이 시작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무릎 안쪽 통증이 심해 퇴행성 무릎 관절염을 진단받았다는 60대 후반의 비만 남성을 만났을 때다. 쿠웨이트에서는 서열이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높은 분이었다. 직원들과 함께 초대받은 궁으로 들어갔다. 궁 안에는 이미 제법 큼직한 의료 장비들이 갖춰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무릎 관절을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서는 별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학적 검사(손으로 만지는 검사)에서도 무릎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고관절의 움직임이 저하된 것이 눈에 띄었다. 바로 고관절 부위를 엑스레이 촬영한 결과 퇴행 증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릎 통증의 원인은 고관절에 있었다.

고관절의 퇴행성 변화가 무릎 관절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호주 멜버른대 재활의학과에서 조사한 결과 고관절 치환술을 받은 환자의 69%는 수술 전 무릎 앞쪽이 아팠다고 했고, 47%는 통증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다고 응답했다. 무릎 관절에 발생한 관절염은 흔히 고관절 부위의 염증을 동반한다. 따라서 허리가 굽거나 비만이 심해 무릎이 아프다면 고관절 통증이 원인은 아닌지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 특히 나이 들면서 나타나는 비만은 관절 염증을 악화하고 만성 통증과 퇴행성 관절염을 부른다.

요즘 ‘척추 관절-고관절-무릎 관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몸에 있는 관절은 서로 큰 영향을 주고받는다. 신체 각 기관이 전부 연결돼 함께 움직이므로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정확하게 확인하고 다른 부위에 미치는 영향도 파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노인이나 비만 환자라면 더더욱 그래야만 좋은 치료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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