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엄마와 딸의 마지막 9개월
루프레히트 슈미트는 독일 최고급 레스토랑의 수석 요리사였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인생이었지만, 그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바로 음식의 가치를 찾는 일이었다.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함부르크의 한 호스피스 병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죽음을 앞둔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맛보게 될 음식을 요리하며 비로소 허기가 채워짐을 느꼈다. 요리는 각 개인의 주문에 따라 만든다. 덕분에 생의 마지막 시간을 남겨둔 이들이 음식을 먹으며 생의 의미를 찾는 귀중한 시간을 보냈다. 이 호스피스 병원 벽에 걸려 있는 “우리는 인생의 날을 늘려 줄 수는 없지만, 남은 날들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는 있습니다”라는 문구 그대로였다.
말기 암으로 고생하다 떠나신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먹먹하다. 나는 결혼 후 아이 둘을 내리 양육하며 여유 없이 살았다. 외며느리로 시댁을 가까이하며 지내느라 멀지 않은 곳에 계신 친정어머니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 여유가 생기는 주말이면 집에서 쉬고 싶었다. 친정어머니께는 죄송했지만 다른 형제들이 자주 찾아뵙고 있으니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살았다.
몇 달간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지내던 어느 날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어머니를 오랜만에 마주한 그날을 잊지 못한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던 분이셨는데, 수척해진 모습으로 힘없이 앉아 계셨다. 병색이 짙은 어머니는 말기 간암으로 3개월 생존 선고를 받았다. 짧은 기간에 어떻게 이리 되셨을까 믿기지 않았다.
그길로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 왔다. 안방을 내드리고 그날부터 내 손으로 직접 식사를 챙겨 드렸다. 어머니는 그 후 아홉 달을 더 사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스물다섯 나이에 어머니를 떠나 살다가 불혹이 되어 비로소 어머니와 다시 살게 되었다. 비록 몇 달이었지만 나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 되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건강한 식단을 연구하지도 않았고, 요리 솜씨가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원하는 음식을 해 드리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요리했다. 16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 생의 마지막 식사를 챙겨 드릴 수 있고, 잃어버렸던 ‘엄마 딸’의 시간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에게도 여쭤보고 싶다. 딸의 음식을 드시며 조금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셨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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