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공허하게 울리는 '노동의 가치'
[경향신문]
부쩍 청년과 주식이란 단어를 같이 쓰는 글을 자주 본다. 아마 비트코인 가격 폭등 때부터였을 거다. 각종 코인을 포함해 청년 세대가 주식 투자 등을 자본증식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빚내서 투자한다’는 뜻의 ‘빚투’라는 단어엔 그런 우려의 시선이 담겨 있다. 위험한 투자를 즐기는 청년들의 자본증식 방식과 소비패턴이 걱정될 만도 하다.
물론 나에게도 주식 투자는 남의 일이다. 돈이 돈을 벌고, 내 자산의 정도가 성과의 크기를 결정하는 생산(?) 방식은 어쩐지 싫다. 하지만 주변의 주식에 투자하는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주식 투자는 세간의 우려처럼 ‘위험한’ 외줄 타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내가 공부한 만큼 벌 수 있어서다. 직장에서의 노동력의 대가가 집 한 채 못 구할 만큼의 적은 월급이라면, 발로 뛰어 정보를 습득한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 주식 투자가 더 ‘가성비’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식 투자하는 청년들에게 노동에 대한 회의감은 당연하게 따라온다. 주식 투자로 일해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면, 자신의 노동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 친구는 수익을 내면 낼수록 지금까지 배워온 경제활동으로서의 노동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식 투자 중인 혹자는 세상을 아는 것은 돈의 흐름을 아는 것이라고까지 역설한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주식시장에 몰두하는 청년이 많다는 현실을 우려하는 이유다.
노동은 사람이 한다. 이 당연한 말을 새삼 다시 꺼내는 이유는, 내가 사는 이곳이 사람이 수단이 되어버린 곳이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산업재해 사망자 7명.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기는커녕 위험의 가장자리에서 일하다 퇴근하지 못하는 노동자만 1년에 2400명이다. 지난 8일 다행히 국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켰지만 과연 그 법이 온전한 노동자의 뜻인지는 모르겠다. 통과된 법안의 내용은 누더기나 다름없다. 재해 사망 비율의 2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연간 400여명이나 되는 숫자다. 이뿐만 아니라 발주처에 안전보건의무를 부여하고 처벌하는 조항도, 산재 은폐를 시도한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인과관계 추정 도입에 대한 조항도 없다.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 과연 모두의 뜻인지 궁금하다. 집권여당은 당론으로조차 이 법을 택하지 않았다. 법안 통과를 위해 싸운 것은 수많은 시민·노동단체, 그리고 산재 사망자 유가족이었다. 그들이 투쟁하는 동안 “이 법이 통과되면 기업활동 망한다”는 보수언론의 숱한 공격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세상에서 노동의 가치를 새기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나는 내가 수단이 되지 않는 곳, 안전하게 나의 삶과 권리가 보장받는 사회를 원한다. 청년이 노동할 의미를 잃어버린 사회의 끝은 어디로 갈까.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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