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2] 美·中 패권전쟁 끝은.. 2500년전 아테네·스파르타가 보여줬다
미국과 중국은 장차 필연적으로 전쟁에 돌입할까?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기존 지배 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일 경우 그에 따른 구조적 압박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현상은 예외가 아니라 거의 법칙’이라고 설명하면서 전쟁 가능성을 높게 예상한다. 경제·군사적으로 급성장하는 중국에 대해 기존 패권 국가인 미국이 경계심과 공포심을 느끼게 되고, 이런 갈등이 심화될 때 작은 불씨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테네의 급부상이 기존 강국 스파르타에 두려움을 일으켜 양국 간 참혹한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에서 이름을 따와 앨리슨 교수는 이런 현상을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과연 이런 현상이 반복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500년 역사에서 세력 교체 사례 16번을 살펴본 후 12번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이 설명이 맞는다면, 언젠가 미국과 중국은 사망자가 5500만명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뛰어넘는 인류 멸망 수준의 전면전을 벌일 것인가?
2500년 전의 역사 사례를 통해 미래 인류에게 닥칠 운명을 알아낼 수 있을까?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이 필연적으로 전쟁을 초래한 구조적 요인이며, 그와 유사한 현상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분석이 과연 타당할까? “더 길게 되돌아볼수록 더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는 처칠의 충고를 받아들여 고대 그리스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고대 그리스 세계는 소규모 도시국가(Polis) 수백 곳으로 분할된 가운데 아테네와 스파르타만 예외적으로 강력한 세력이었다. 막강한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로 쳐들어왔을 때에도 이 두 나라가 중심이 되어 적군을 격퇴했다. 용맹하기로 유명한 스파르타군이 육상에서 페르시아군을 여러 차례 격파했지만, 그리스 세계가 승기를 잡은 결정적 요인은 살라미스해전에서 승리한 아테네 해군이었다.
이후 신흥 강국 아테네가 주도권을 장악했다. 페르시아의 재침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도시국가 수백 곳과 델로스동맹을 맺었다. 연합 해군을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들은 선박을 제공하든지 아니면 돈을 내야 했다. 이렇게 모은 엄청난 액수의 군비는 델로스섬의 금고에 보관하기로 했지만, 실제로 이 돈은 아테네의 경제 번영과 문화 사업에 쓰였다. 파르테논신전 건축이 대표적인 사례다. 얼마 후에는 아예 금고 자체를 델로스섬에서 아테네로 옮겨왔다. 평화협정에서 페르시아의 육군과 해군이 그리스 방면으로 오지 못하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페르시아의 위협은 사실 사라진 상태였다. 급박한 위험이 없는데도 아테네가 계속 군비를 요구하자 일부 동맹국이 지불을 미루거나 거부했다. 그러자 아테네는 자국 군대와 용병까지 동원하여 비협조적인 도시국가들로 달려가 압박했는데, 이는 그리스 세계에서 처음 겪는 충격적인 사태였다. 아테네는 내부적으로는 민주정이 꽃피어났으나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 지배자로 변모했다.
이제 그리스 세계가 겪는 갈등과 위험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 기존 패권 국가인 스파르타는 아직 아테네나 그 동맹국들에 비해 군사적으로 수세에 몰릴 정도는 아니지만 자칫 주도권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였다. 이것이 결국 두 나라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기원전 459년,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충돌 사태가 벌어졌다. 간헐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일부 영토를 빼앗았다가 돌려주는 일들을 겪은 후 양국은 30년 평화조약을 맺어 사태를 봉합했다(기원전 446~445). 투키디데스는 아무리 평화조약을 통해 갈등을 완화하려고 해도 그 아래 잠재해 있는 긴장의 원인 자체를 없애지는 못했다고 본다. 아테네는 계속 해군력을 강화하고 교역을 통해 부를 쌓아갔고, 이것이 스파르타의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작은 사건이라도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국지적인 문제가 어떻게 전쟁으로 치닫는지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스파르타 동맹국 코린토스와 중립국 코르키라 간 전투가 일어났다. 코린토스가 코르키라에 패배한 후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해군력을 강화하여 만만치 않은 해상 강국으로 올라섰다. 위협을 느낀 코르키라는 아테네에 도움을 요청했고, 코린토스 또한 스파르타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 상황에서 아테네가 대놓고 코르키라를 도우면 평화조약이 깨져서 스파르타와 다시 전쟁을 벌일 위험이 있지만, 그대로 놔두면 코린토스가 아테네의 제해권을 위협할지 모른다.
스파르타 또한 비슷한 전략적 딜레마에 빠졌다. 만일 코린토스를 지원하면 아테네는 이것을 자국의 해상 지배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자칫 전쟁을 개시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코린토스의 지원 요청을 무시하면 다른 동맹국들로부터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코린토스 대사가 스파르타 의회에서 아테네가 저토록 설치는데도 스파르타가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만일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동맹에서 탈퇴할 거라고 위협했다. 의회에서 격렬한 논쟁 후 투표를 한 결과 전쟁 개시를 결정했고, 이에 맞서 아테네 또한 전쟁을 결의했다.
이 시기 아테네나 스파르타 모두 냉철한 이성보다는 흥분한 애국심만 넘쳐났다. 양측 모두 전쟁이 나면 자신들이 단기간에 승리를 얻으리라고 믿었다. 현명한 스파르타의 왕 아르키다모스만이 어느 쪽도 완전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므로 전쟁이 한 세대는 지속하리라고 보았다. 그의 예측대로 거의 30년 지속한 참혹한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이 끝난 후 두 나라 모두 공멸의 길을 갔고, 조만간 그들이 야만인이라고 하시하던 북방의 테베와 마케도니아(알렉산드로스의 제국으로 발전하게 된다)에 복속당하고 만다.
과연 이런 분석이 옳을까? 여러 비판이 가능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저명한 역사가 도널드 케이건은 전쟁 전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위협할 정도로 국력이 급상승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이 전쟁이 구조적 요인에 의해 필연적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전쟁의 원인은 양국 지도자들의 잘못된 결정에서 찾아야 한다. 구조적 요인이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고 해도 그 자체로 전쟁이 시작되는 건 아니며 결국 시민들의 태도와 지도자들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 사실 앨리슨 교수가 투키디데스 함정에 대해 이야기한 목적 또한 미국과 중국 간 전쟁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그런 위험 요소를 인지하고 이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자는 것이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들만이 같은 역사를 되풀이한다.
킨들버거 함정
중국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변화시킬 정도의 강대국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데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중국의 총생산(PPP·구매력평가지수 기준)은 24조2000억달러로서 미국(20조8000억달러)을 제치고 이미 세계 1위다(2020년 추산치). 그런데 ‘1인당 기준’으로는 1만7206달러로서 세계 73위에 불과하다. 덩치로는 이미 세계 1위지만 내실을 보면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세계의 패권을 노린 역대 국가들은 모두 그 시대 최정상급 국가들이었지, 가난한 개도국이 세계 패권을 노리는 것은 희소한 일이다.
투키디데스 함정만큼이나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에도 유의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역사가이며 마셜 플랜의 설계자 중 한 명인 찰스 킨들버거는 1930년대에 극심한 공황이 발생하고 이것이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원인은 1차 대전 이후 새롭게 패권국이 된 미국이 지난 시대 영국이 했던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 세계에 ‘국제 공공재(안정된 환율 시스템 유지, 금융 위기 시 최후의 대부 역할 수행 등)’를 공급하는 것이 패권국의 역할이다. 이것은 꼭 이타적인 의도가 아니라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패권국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이나 중국 모두 그런 역할을 방기하고 자국 이익만 좇아 고립주의 혹은 무임승차를 고집한다.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하는 투키디데스 함정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 모두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지 않아서 생기는 국제 질서의 붕괴라는 킨들버거 함정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두 강대국 모두 요즘 상황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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