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60] 목동이 짊어진 양의 운명은
목사의 ‘목(牧)’은 가축을 돌본다는 뜻이다. 영어를 비롯한 유럽어로도 ‘목사’는 목동의 라틴어 ‘파스토르(pastor)’에서 유래했다. 예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 양을 어깨에 둘러멘 ‘선한 목자’의 이미지는 예수의 상징으로서 313년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의 초기 기독교 시기부터 등장했다. 특히 지하 무덤인 카타콤에서 기독교인들의 무덤 천장에는 선한 목자의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다. 비록 살아서 고초를 겪었어도 죽음 이후에는 예수께서 살뜰히 돌봐주시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어린 양이나 송아지를 어깨에 짊어지고 서 있는 조상(彫像)은 기독교가 생겨나기 훨씬 이전,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선한 목자’가 아니라, 반대로 신전에 제물로 희생양을 바치는 사제의 모습이다. 신생 종교였던 기독교는 이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이교도의 미술에서 많은 부분을 빌려 기독교의 상징으로 바꿔 사용했는데, ‘선한 목자’가 대표적 사례다. 동물을 어깨에 진 청년의 이미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권에서 널리 만들어졌기 때문에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에도 큰 무리 없이 차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한 이 ‘선한 목자’는 곱슬머리를 어깨로 늘어뜨린 잘생긴 얼굴에 체중을 오른쪽 다리에 싣고 왼쪽 무릎을 살짝 굽혀 자연스럽고도 안정적인 자세로 서 있다. 얼굴과 자세, 비례가 여느 그리스 조각과 다르지 않아 그 맥락을 잘 살피지 않으면, 그가 지금 어린 양을 제단으로 끌고 가 죽이려는지, 푸른 풀밭에 눕혀 보살피려는지 알 수가 없다.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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