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축구팀'과 싸워도.. 토트넘, 최선 다했다

송원형 기자 입력 2021. 1. 12. 03:02 수정 2021. 1. 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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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축구 인사이드]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은 협회에 소속된 1~10부 리그 프로, 아마추어 700여 팀이 참가하는 토너먼트 대회다. 최근 6부 리그 촐리FC가 이 대회 3라운드(64강전)에서 잉글랜드 축구 스타 웨인 루니가 감독 대행으로 있는 2부 리그 더비카운티를 2대0으로 꺾은 것처럼 ‘각본 없는 드라마’가 나와 화제가 된다.

11일엔 잉글랜드 북서부 해안, 인구 5만명 소도시 코르즈비에 축구팬들의 이목이 쏠렸다. 127년 역사를 지닌 지역 축구팀 8부 리그 마린FC가 프리미어리그(EPL·1부) 4위 토트넘과 FA컵 3라운드에서 맞붙었기 때문이다. 두 팀 사이엔 160여 팀이 있는데 FA컵 3라운드 사상 가장 실력 차가 많이 나는 팀(타이기록) 간 대결이었다.

개러스 베일(토트넘·오른쪽)이 11일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3라운드(64강) 마린FC와 원정 경기에 출전해 드리블하는 모습. 8부 리그 팀 마린FC 선수들은 교사, 환경미화원, 간호사 등이 본업이며 주택가에 있는 동네 축구장을 홈 구장으로 쓴다. 베일은 이날 후반 20분 교체 투입돼 유효 슈팅을 날렸고, 수퍼마켓에서 일하는 골키퍼가 이를 막아냈다. /로이터 연합뉴스

◇8부 리그 팀의 유쾌한 도전

마린 선수들은 축구 선수 말고도 교사, 간호사, 환경미화원, 인테리어 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지니고 있다. 축구로는 생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 중 8부 리그에서 시작해 1부에서 뛰는 꿈을 이룬 제이미 바디(레스터시티)를 바라보면서 미래를 꿈꾸는 젊은 선수들도 있다. 마린은 FA컵 예선 5경기 승리로 본선에 진출했다. 4부 리그 콜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본선 1라운드는 승부차기 끝에 이겼다. 2라운드에서 만난 6부 리그 해번트 앤드 워털루빌은 연장 종료 직전에 터진 결승골로 1대0으로 꺾었다.

마린에게 3라운드 상대인 토트넘은 넘기 힘든 벽이었다. 하지만 구단과 주민들은 마치 축제를 벌이기라도 하듯 홈구장 카펫을 청소하고, 특별 도시락을 준비하며 부산을 떨었다. 토트넘의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인 해리 케인과 손흥민, 그리고 세계적 명장인 조제 모리뉴 감독을 직접 볼 기회였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무관중으로 치러졌지만, 주민들은 홈구장 철조망에 다닥다닥 붙어 와인잔을 기울이며 역사적인 경기를 즐겼다. 주민 응원을 받은 마린은 전반 24분 첫 골을 내줄 때까지 선전을 펼쳤다. 전반 20분엔 배관공 닐 켕니가 골대를 강타하는 중거리슛으로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토트넘 골키퍼 조 하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0대5로 졌다.

◇베일 내보내며 마린을 예우한 모리뉴

경기 전 “상대팀을 존중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던 모리뉴 감독은 마린 드라마의 조연이었다. 체력 안배 차원에서 케인과 손흥민을 투입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주전을 내보내며 마린을 예우했다. 후반 20분엔 개러스 베일(32·웨일스)을 넣었다. 2007년부터 토트넘에서 뛰며 세계적 선수로 성장한 그는 2013년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 8600만파운드(약 1470억원·추정치)를 받고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이후 잦은 부상, 감독과의 불화로 올 시즌 임대 형식으로 친정팀에 복귀했다. 최근 기량이 떨어졌지만 주급이 60만파운드(약 8억9000만원)로 케인(20만파운드)의 세 배다. 마린 내 선수 최고 주급(300파운드)의 2000배에 달한다. 베일은 후반 24분 날카로운 왼발 무회전 프리킥을 날렸고, 수퍼마켓에서 일하는 21세 골키퍼 베일리 파상은 온몸을 던져 막아냈다. 경기 후 마린FC 선수들은 베일과 유니폼을 교환하기 위해 앞다퉈 달려갔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대회 규정상 유니폼 교환이 금지돼 토트넘은 새 유니폼을 마린 선수들에게 전달했다. 마린 수비수 제임스 조이스는 “베일과 함께 웃으며 얘기한 걸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눈앞에서 베일이 뛰는 모습을 본 주민들은 “믿기지 않는다”며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렸다. 닐 영 마린 감독은 “베일을 투입한 모리뉴 감독을 존경한다”고 했다.

◇FA 경기로 재정 위기 탈출

마린은 이 경기로 주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재정 위기에서도 벗어났다. 영국 BBC에 따르면 마린은 코로나에 따른 무관중 경기와 스폰서 취소로 올 시즌 약 10만파운드(약 1억5000만원)의 손해를 봤다. 하지만 토트넘과 한 경기를 치르면서 재정에 숨통이 텄다.

마린은 이번 토트넘 경기에 맞춰 한 장당 10파운드짜리 ‘가상 티켓’을 팔았는데 전체 관중석 3185석의 10배에 가까운 3만697장이 팔렸다. 이 티켓 구입자는 추첨을 통해 다음 프리 시즌 친선 경기 임시 감독을 맡을 수 있는데, 모리뉴도 티켓을 샀다고 한다. 마린은 티켓 판매로 약 30만파운드를 벌어들인 것 외에도 경기 중계권료(7만5000파운드)와 FA컵 출전 수당(8만파운드)을 합쳐 총 45만파운드(약 6억7000만원)를 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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