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의 법과 사회]인권에 여야가 따로 없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1. 1. 12.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서울 동부구치소 관련 코로나19 확산에 야당과 야권 대선주자들은 호재를 만난 듯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인권’을 공격무기로 꺼내 들었다. ‘재소자 인권을 강조했던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가 맞나’ ‘선택적 인권 의식’ ‘인권 감각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후진국 수준’ 등.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된 언론기고문도 끄집어내 그 당시 갈수록 악화하는 재소자 인권을 지적했음을 환기했다. 맞는 지적이자 비판이다.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최우선시해 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수치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면서 재소자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으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집단감염뿐만이 아니다. 무더위에 열사병으로 죽어 나가고, 지난해 5월 부산구치소에서는 의료진이 없어 제때 진료받지 못한 정신질환 수용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비판과 공격이 야당의 임무라지만 왠지 씁쓸하다. 맞는 말 하고도 싹수없이 한다는 느낌이 든다. 욕먹기 딱 좋은 밉상 짓으로 와 닿는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권을 상대방 공격무기로 삼았다는 점 때문이다. ‘선택적 인권’이라고 지적질한 자들에게 화살을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권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재소자의 인권을 호명할 수 있는가. 성적 지향의 문제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이들이 그들이다. 소수자와 약자, 소외된 자의 인권에 무관심하다가도 상대를 공격할 때만 인권을 소환한다. 비판하고 공격하고 발목 잡는 것이 야당다움이지만 그래도 앞뒤는 좀 가려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과밀수용으로 수용자의 인권을 좁디좁은 감방에 처넣은 자가 누구인가.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수용자가 급증했다. 대책 없이 잡아 가두다 보니 정원보다 20~30%가 늘었다. 4대 악 관련 수용자도 크게 늘고 생계형 경제사범도 폭증했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야 할 정도로 교정시설은 이미 과포화 상태다. 재소자의 운동권과 의료권은 바닥이다. 교정·교화는 뒷전으로 밀리고 가두어두는 데 급급했다. 교도소가 아니라 일제시대의 감옥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재소자의 인권을 생각했다면 교도소를 더 지었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지역구 국회의원도 땅을 내주지 않는다. 혐오시설로 여기기 때문이다. 님비현상은 인권 의식의 민낯이다. 그러니 동부구치소와 같은 아파트형 밀집 교정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오래돼 낡고 열악한 시설, 환기라고는 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 중형 선고로 넘치는 수용자들이 전국 교도소의 모습이다. 의료진도 정원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조차도 충원 미달이다. 운동장도 변변치 못하고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감염병에 아주 취약한 구조의 수용시설인데 방역 물품 예산조차도 없다는 것은 우리의 인권 수준을 드러낸다. 수용자가 포화상태면 가석방을 확대하거나 벌금형의 집행유예를 활용하고, 불구속 수사 원칙을 지켜 미결구금자의 숫자를 줄였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재소자의 인권보다는 피해자의 인권과 시민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재소자 인권을 옹호해봤자 표가 되지 않는다는 정치인의 득표 계산이 깔려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지지부진한 것도 같은 이유다.

몇 해 전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이 들어가 보고 비로소 인권침해를 알았다. 유엔 인권기구에 구치소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고 노회찬 전 국회의원이 국감장 바닥에 신문지 한 장을 깔고 누워보는 퍼포먼스까지 벌인 인권침해의 현실이었다. 더럽고 차가운 시설을 고치지 않은 책임은 본인한테도 있었지만 당해보자 와 닿았던 것이다. 이랬던 야당은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책임지라고 한다. 이제 와서 머리 숙이면 뭐가 나아지고 달라지나. 정치공세에 불과할 뿐이다.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날마다 대통령을 끌어들이고, 대통령의 과거 언행을 찾아내 공격에만 핏대를 세운다. 공허하고 비생산적이다. 야당이라도 비판만이 아니라 원인을 파헤치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따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우선이다.

인권에 배제와 구별이 없듯 여야가 따로 없다. 재소자건, 소년원생이건, 성소수자건, 경제적 약자건 인권에 차별이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교도소는 죄인을 징계하고자 하는 곳이지 사람을 죽어 나가게 하거나 못살게 하는 곳이 아니다. 무더위와 추위, 감염병에 취약한 곳이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하는 곳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법무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범정부적 차원에서, 입법부와 사법부 모두 과밀수용을 포함해서 재소자 인권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