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예술작품 아닌 생활의 도구"

손택균 기자 2021. 1. 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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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건축가라는 호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건축 일을 하는 사람'이 편해요."

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옥탑층 사무소에서 만난 정이삭 에이코랩건축협동연구소 대표(42)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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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삭 에이코랩건축협동연구소 대표
흔히 보던 저가 임대용 건물 쾌적하고 깔끔하게 재구성
"도시의 사업 용도 건물에는 미적 가치보다 수익성 중요
용도 환경 등 현실조건 고려, 효율적 공간 기획 마련해야"
반지하와 하숙집은 어둡고 비좁은 공간의 이미지를 품은 단어다. 에이코랩의 서울 성산동 다중주택은 용도에 따른 건축 규정의 적용 묘미를 최대한 살려 쾌적하고 널찍한 반지하 사무 공간, 깔끔하고 안락한 임대주거 공간을 구현한 건물이다. ⓒ노경
“저는 건축가라는 호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건축 일을 하는 사람’이 편해요.”

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옥탑층 사무소에서 만난 정이삭 에이코랩건축협동연구소 대표(42)는 그렇게 말했다. 2016년 제15회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한국관 작가의 일원으로 참가한 그는 분명 엄연한 건축가다. 스스로 그렇게 불리기를 내켜 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일상적 고민과 이 땅의 건축이 괴리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훌륭한 건축 전시가 여럿 열리고 권위 있는 건축 시상식도 잇달아 개최됩니다. 하지만 그 시선은 뭔가 특별해 보이는 건물에만 집중돼 있어요. 그러다 보니 예술작품을 빚듯 심미적 디자인에 방점을 두고 만들어진 결과물에 무게중심이 쏠립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생활과 그런 ‘건축 작품’ 사이에는 사실 별다른 접점이 없는데도 말이죠.”

사회주택기획사 아츠스테이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마포구 성산동 주택가에 완공한 반지하 다중주택(총면적 330m², 3층 이하 규모의 학생 또는 직장인 거주용 건물)은 철저히 현실적 조건과 맞닿은 작업을 추구하는 정 대표의 가치관이 뚜렷이 반영된 건물이다. 225m² 면적의 그리 넉넉하지 않은 땅을 알뜰하게 활용해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반듯하게 올린, 언뜻 평이해 보이는 이 건물의 공간 구성과 디테일은 모두 ‘최대한의 효율’을 잣대로 삼아 결정됐다.

널찍한 옥탑층은 돌가루를 발라 거칠게 긁은 외장 마감으로 하층부와의 차별성을 시각화했다. ⓒ노경
그럴듯한 명칭을 따로 붙이지 않은 이 건물의 원형은 1990년대 대학 인근 주택가에 수두룩했던 하숙집이다. 침대, 옷장, 책상으로 빼곡히 채운 아담한 방들을 학생 등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입주자에게 빌려주는 개인 소유의 주택. 정 대표는 법령에 의해 제한된 3층까지 건물을 짓고 옥상에 별도로 널찍한 복층 옥탑방 두 개를 올렸다. TV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옥탑방 건물의 구성을 여유롭고 세련된 형태로 다듬은 것이다.

“도시에 사업 용도로 건물을 새로 짓는 건축주가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게 과연 심미적 가치일까요? 상업건물이 안정적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면 애초에 건물을 신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용도, 환경, 비용 등의 여러 요소를 균형 있게 고려해 가장 적합한 공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일이 건축을 하는 사람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이 지역의 거주 공간 수요자는 대체로 차량 소유자가 아니다. 그 사실을 감안해 총면적을 기준으로 필요주차대수를 정하는 다중주택으로 지었기에 3대분을 확보하면 됐다. 입주가구 수를 기준으로 하는 다가구주택보다 1대 적은 것이지만, 1층 평면에서 주차공간을 하나 줄이면서 얻는 공간 활용의 이점은 결코 작지 않다. 정 대표는 반지하층에 채광창이 큼직하고 천장이 높은 쾌적한 사무공간을 마련해 사업성을 높였다. 외부 계단참 아래 공간에서 주차를 해결해 이동공간은 더 여유로워졌다.

정이삭 에이코랩건축협동연구소 대표는 “적잖은 건축가들이 ‘다중주택’이라는 부동산 용어를 생소하게 여긴다. 내가 생각하는 건축은 공간 디자인뿐 아니라 사람의 생활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다루는 행위”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런 방법은 책에서 배운 게 아닙니다. 수년 전부터 동네 건축회사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들은 경험담에서 참고한 거예요. 그분들이 현장의 조건과 부딪히며 최대한의 수익성을 내기 위해 착안한 디테일을 하나하나 관련 법규를 찾으며 정리했습니다. 그분들도 저도 모두, 편안하고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일을 합니다. 똑같은 건축이죠. 보기 좋은 디자인은 그 과정에서 자연히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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