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 건물의 우아함 속에 숨은 권력의 횡포.. "말하라, 돌들이여"

강구열 입력 2021. 1. 1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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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
돌·물·피·돈·불·발·꿈 카테고리 나눠
유럽의 역사·문화·예술 등 되짚어봐
로마 '판테온'·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려함 속에 고통·파괴의 역사 공존
피로 얼룩진 경기 즐긴 '로마 콜로세움'
하루 수천마리 짐승·수십명 사람 죽어
佛 니스 산책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
선의로 조성된 길 위 테러 아픔 공존
유럽의 도시들이 많은 이들에게 ‘여행의 로망’이 된 건 고대로부터 현대에까지 중첩된 역사, 문화, 예술 덕분이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때 도시들은 더욱 풍부한 의미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은 영광과 아름다움, 문명의 산물만은 아니다. 수치, 고통, 파괴와 야만이 공존한다. 연세대 윤혜준 교수의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아날로그·사진)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7개의 키워드(돌, 물, 피, 돈, 불, 발, 꿈)로 도시들을 들여다본다. 익히 알고 있던 도시의 면모조차도 독특한 시선으로 분석하고 있어 흥미롭다.
 
◆돌:권력자의 횡포를 세탁한 ‘예술품의 신전’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로마여행의 꿈을 이룬 독일의 문호 괴테는 ‘로마비가’에 이렇게 적었다.

“말하라, 돌들이여. 나에게 말해보라.”

고대 로마의 영광과 쾌락의 흔적, ‘폐허의 기둥’에 관심이 많았던 그로서는 당연한 외침이었다. “유럽 도시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역사와 전통이 배어 있는 석조건물의 우아한 자태”라고 못박은 책은 돌을 키워드로 유럽의 도시를 먼저 소개한다.

건립된 지 200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건축물’로 꼽히는 로마의 ‘판테온’, 파리의 역사 그 자체라는 ‘노트르담 대성당’ 등을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수긍되는 대목이다. 다만 그 역사와 전통이 찬란한 기억만은 아니다.

‘서머싯 하우스’는 런던시민과 방문객들에게 마네와 고흐 등의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의 기원은 사뭇 폭력적이다.

헨리 8세(재위 1509∼1547)의 충복이던 서머싯 공 에드워드 시모어는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템스 강변에 화려한 저택을 짓기로 했다. 당시 ‘종교개혁’을 명분으로 탄압하던 가톨릭 주교들의 집을 허물어 터를 마련했고, 수도원을 폭파해 석재를 조달했다. 당시 수도원이 기도와 수행 외에도 병원, 고아원, 요양원의 역할을 하며 빈민과 약자들에게 마지막 안식처 역할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권력 투쟁에서 패배해 서머싯이 처형을 당한 뒤 서머싯 하우스는 왕비들의 거처, 외교 관저, 군대 막사 등으로 쓰이다 18세기 재건축이 결정돼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저자는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던 수도원을 무참히 파괴해 그 돌로 사저를 지었던 서머싯, 그의 이름은 예술품의 신전 노릇을 하는 이 말쑥한 석조건물 덕에 말끔히 세탁됐다”고 씁쓸해한다.
고대 로마제국의 위대함을 증언하는 콜로세움에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짐승 간에 목숨을 건 경기가 이어지며 대중들의 열광을 이끌었다. 글담 제공
◆피:아테네와 로마의 차이

그리스의 비극은 종종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이 자해나 타살로 죽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피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을 무대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처참한 일은 배우들의 말로 관객에게 전달됐고, 그것이 호응을 이끄는 데 유리했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은 이 도시가 “비극을 사랑했으되 피를 꺼렸음”을 증언하는 흔적이다.

로마는 달랐다. 콜로세움은 “가난한 자들을 피로 회유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무료로 입장한 5만여명의 관객은 대중의 호의를 사기 위해 황제와 거물급 인사들이 공짜로 제공한 음식을 먹으며 피로 얼룩진 경기를 즐겼다. 검투사 경기, 짐승과 사람의 대결, 권투 경기 등으로 콜로세움에는 피가 넘쳤다. 하루에 5000마리의 짐승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고, 수십명이 죽어나갔다. 네로 황제 때는 기독교도들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죽이는 것도 고정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고 한다. 콜로세움에서 죽은 사람, 동물로 만들어진 ‘카르나리움’은 20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발굴됐다.

◆발:테러로 얼룩진 선의의 산책로

프랑스 니스는 습하고 어두침침한 겨울을 피해 영국 부유층들이 찾은 곳이었다. 그들은 이 온화한 해변도시에서 밝은 햇살과 맛있는 요리를 즐겼다. 니스의 온화한 기후를 선호한 것은 부유층만이 아니었다. 1820년 지독한 겨울이 니스 북쪽의 유럽을 강타했을 때 빈민들은 니스로 몰려들었다. 추위와 굶주림을 피해 무작정 니스로 들어온 빈민들에게 거리를 오가는 부유층의 자비심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희망이었다.

이런 광경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현지 영국인 교회의 루이스 웨이 목사는 니스시 당국에 구걸하는 실업자들을 모아 도로를 닦자는 제안을 했다. 공사비는 교회가 대겠다고 약속했다. 돈 걱정 따위 할 것 없는 부유층을 교인으로 두고 있는지라 가능한 일이었다. 해변을 따라 길게 산책로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 이때였다. 19세기에 여러 차례에 걸쳐 연장되고, 넓어진 이 길이 오늘날의 ‘프롬나드 데 장글레’(영국인 산책로)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에서 2016년 7월 14일 세계를 놀라게 한 테러가 발생했다. 튀니지 이민자인 테러리스트는 배달용 트럭을 몰아 사람을 치고, 총을 난사해 86명의 생명을 빼앗았다. “부유한 교인들의 이웃사랑 실천과 목사의 공익 증진 실용주의가 결합해 탄생한” 거리에서 발생한 비극인지라 참혹함이 더하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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