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기꺼운 '수고 비용'

김유나 입력 2021. 1. 1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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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티슈 좀 보내주세요." 얼마 전 퇴근 후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에 든 알림장을 펼쳐봤다가 '아차' 싶었다.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긴급보육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데, 매달 아이가 쓸 물티슈를 챙겨보내야 한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물티슈를 주문하니 다음날 오전 7시쯤 배송 완료 문자가 왔다.

물티슈를 가방에 넣으면서, 로켓배송의 편리함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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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티슈 좀 보내주세요.” 얼마 전 퇴근 후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에 든 알림장을 펼쳐봤다가 ‘아차’ 싶었다.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긴급보육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데, 매달 아이가 쓸 물티슈를 챙겨보내야 한다. 문득 지난번 박스에서 마지막 물티슈를 꺼냈던 것이 떠올랐다. 미리 주문했어야 하지만 ‘다음에 하자’고 미루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당장 아침에 물티슈를 보내야 할 텐데 어쩌나.

하지만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로켓배송’이 있으니까.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물티슈를 주문하니 다음날 오전 7시쯤 배송 완료 문자가 왔다. 확인해보니 실제 배송 시간은 오전 5시30분쯤이었다. 단 몇 시간 만에 필요한 물건이 문 앞에 놓인 것이다. 물티슈를 가방에 넣으면서, 로켓배송의 편리함에 감탄했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아이를 키우다 보면 깜빡할 때가 많아 로켓배송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간식이 똑 떨어졌을 때도, ‘당장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울라프 인형’도 모두 로켓배송으로 해결했다. 2900원만 내면 한 달 내내 무엇이든 하루 안에 갖다 주다니. 가히 ‘육아의 동반자’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택배 노동자 과로사’ 사건들은 내게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란 질문을 안겨줬다. ‘적은 비용’과 ‘신속·편리’라는 상충된 가치를 좇는 내 태도가 택배 노동자들의 심신을 ‘갈아 넣는’ 구조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편리하고 신속한 한국의 택배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로켓배송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택배는 3일 안에 배송된다. 소비자 만족도를 최상으로 높여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수많은 노동자를 쥐어짜는 어두운 현실이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의 97%는 주 6일 이상, 60%는 하루 12시간 이상 일한다. 지난해 알려진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만 10여건에 이른다.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최근 ‘택배 기사 과로사 방지법’이 국회 법사위원회를 통과했다. 과로 원인으로 꼽히는 심야 배송과 물품 분류작업 내용이 명시되지 않아 앞으로 남은 과제가 많지만, 문제 개선을 위한 첫걸음이란 점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법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택배 비용 인상과 지연 배송을 용인하는 분위기다. 지금보다 많은 비용을 주고, 택배를 조금 ‘천천히’ 배송해도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적은 비용으로 빨리빨리’를 외치는 구조에서는 그 어떤 법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11월 1600여명을 조사한 결과 95.6%가 ‘택배 노동자의 과도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답했고, 87.2%는 ‘배송이 일정 기간 늦어지는 것도 참을 수 있다’고 했다. 또 ‘가격 인상분이 택배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사용된다면 동의한다’는 의견도 73.9%에 달했다. ‘조금 늦고, 더 내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선 반발심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저비용으로 편리함을 누리려는 마음은 버렸으면 한다.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한 편리함이라면 누리지 않는 게 낫다. 모두가 기꺼이 누군가의 ‘수고 비용’을 지불하려는 인식이 확산해야 살인적인 노동 환경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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