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민의사색의창] 제야의 종소리 유감
67년간 평화·사랑의 소리 울려
코로나 탓 감격의 순간 멈춰서
다시 울릴 우렁찬 종소리 기원
올해는 종로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엄중하여 타종 행사를 할 수 없게 되어 생긴 일이다.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지던 유명한 타종 행사들이 취소되었고 모두가 아쉬움 속에 조바심을 치면서 새해를 맞았다. 연초부터 몰아닥친 눈보라와 추위에 종로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줄었다. 보신각의 텅 빈 종루는 적막한데, 울어보지 못한 올해의 종소리는 마음속으로만 다시 음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에는 전란 속에 종각 자체가 모두 불타버렸다. 나라에서는 전란이 평정된 후에 새로 종각을 재건하였고 원각사에 있던 종을 대신해 내걸고 날마다 이를 울렸다. 조선 말 고종 때에 오랜 전통으로 이어졌던 인정과 파루의 제도 자체가 폐지되자 도성의 야간 통행도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로워졌다. 고종은 1895년(고종 32)에 종각이라는 이름 대신에 ‘보신각(普信閣)’이란 현액(懸額)을 내려 그곳에 걸게 하였다. 이때부터 종각이라는 이름 대신에 보신각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보신각의 종은 정오와 자정에 시각을 알리는 뜻으로 계속 타종하도록 하였다. 1908년 타종 대신에 포(砲)를 쏘는 것으로 대체하였고, 일제강점기에 종은 제대로 울어보지도 못한 채 보신각은 방치되어 퇴락하고 말았다.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보신각 종은 그 우렁찬 소리를 되찾았다. 보신각의 타종 행사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3년부터 시작되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무너진 종루를 다시 세우게 되자, 모든 시민이 민족의 평화통일을 기도하면서 처음으로 제야의 종소리를 함께 들었다. 그 후 67년 동안 보신각의 종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년 마지막 날 자정에 온 천지에 평화와 사랑의 종소리를 울렸다.
내가 종로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직접 들은 것은 우리 집 큰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게 된 해였다. 날씨가 매섭게 차가웠지만, 보신각에서 자정에 이루어지는 타종 행사를 직접 구경하겠다고 아이가 먼저 나서 나를 채근했다.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아이를 무동 태웠던 그날밤의 감동이 지금도 가슴을 저려온다. 1999년을 보내던 마지막 밤의 타종 행사도 잊을 수가 없다. 새천년을 맞이하는 설렘 속에서 서른세 번 이어지는 종소리를 속으로 헤아리며 나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었다. 2004년의 제야의 종소리는 광복 60주년을 맞이하는 기쁨으로 모두가 감격했던 울림으로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제야의 종소리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축원이다. 한 해 동안 이어진 고달픈 삶의 고통과 아픔을 밀어내고 하늘까지 울리며 새로운 기운을 모은다. 제야의 종소리는 새해를 축복하는 소박한 꿈이며 더 높이 오르고 더 멀리 나아가고자 하는 소망이다. 그러므로 그윽하게 울리면서 가슴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제야의 종소리는 한순간에 뜻을 모으고 함께 서른셋을 뇌며 간절하게 두 손 모으는 우리 모두의 기도다. 그 기도는 언제나 한목소리로 외치는 함성이 되어 온 세상에 고루 퍼진다.
종로 보신각은 이 겨울의 찬 바람 속에 휑하니 쓸쓸하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코로나 사태의 고통을 잊고 어둡던 묵은해를 넘기고 싶었는데, 그 감동의 순간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의 뜻으로 보신각 종을 크게 울릴 수 있는 날이 다시 온다.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벗어나 모두 일어나서 손을 잡고 기뻐하며 뎅 뎅 뎅 우렁찬 종소리에 함께 감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권영민 문학평론가 미국 버클리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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