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그날'은 오지 않는다

입력 2021. 1. 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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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꿈은 아니리 / 오랜 고통 다한 후에 /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 뜨거운 눈물들 / (중략) /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80년대 운동 가요 중 가장 미학적 성취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그날이 오면'의 가사다.

"그날이 쉽게 오지 않음을 알았어도, 또한 그날이 꼭 와야 한다는 것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사회적 정의를 관장하는 법무부장관이 사법적 판단에 대한 존중 대신, 역사적 유토피아니즘과 이념적 감상이 뒤섞였던 80년대의 '그날'을 호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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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장관. 연합뉴스

"한밤의 꿈은 아니리 / 오랜 고통 다한 후에 /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 뜨거운 눈물들 / (중략) /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80년대 운동 가요 중 가장 미학적 성취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그날이 오면'의 가사다. 노래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역사적 유토피아다. 그 이상향에 서면 '뜨거운 눈물'이 환희로 흘러내리고 '정의의 물결'이 넘실댈 거라 믿었다. 그런 낭만성에 취해 '유사 혁명가'들이 쏟아졌다.

80년대 이념적 자아를 구성한 것은, 상당 부분 이런 미학적 환상 혹은 환각들이었다. 운동 가요가 아니었음에도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가 당시 대학생들의 술자리에서 열렬히 소비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 곡 역시 비극적 유토피아니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운동은 감상(感傷)이 주된 동력이었다.

이념이 감상적 열정과 결합될 때, 역사적 서사는 쉽게 극화한다.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정치적, 도덕적 지향을 담아 각색된 역사를 보여 준다. 선악이 선명해지고, 정의가 승리해 희생이 보상받는 '닫힌 동화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하지만 현실은 정치적 동화의 세계가 아니다. 과학은 현실을 이루는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아둔하고 어두우며 자기편향적인지를 발견해왔다. 선악과 정의·불의의 경계는 늘 희미하다. 그래서 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덕목은 절차성에 대한 존중이다.

정의로운 '그날'에 빨리 이르고자 하면 할수록 세계는 쉽게 폭력적 욕망에 휩싸인다. 설득과 합의라는 지루한 절차가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내용 민주주의'의 조급한 욕망에 빠져있으며 사실상 심리적 내전 상태다.

작년 연말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 복귀 판결 후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SNS에 올린 글이 사람들 입방아에 올랐다. "그날이 쉽게 오지 않음을 알았어도, 또한 그날이 꼭 와야 한다는 것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사회적 정의를 관장하는 법무부장관이 사법적 판단에 대한 존중 대신, 역사적 유토피아니즘과 이념적 감상이 뒤섞였던 80년대의 '그날'을 호출한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미숙함을, 역사적 전망을 선취한 자의 희생 제의로 바꿨다. 시사만평가 박재동은 현실의 불의에 만신창이가 된 '투사 추미애'를 비감하게 그려 역시 80년대식으로 답했다. 나는 이 퇴행적 과장들이 우스웠다. 여당에선 한 발 더 나아가 "사법의 정치화" "사법 쿠데타"라는 노골적 비난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의 목을 겨눴다.

그들의 정치적 반대자인 진중권은 이를 경계하는 문장을 SNS에 남겼다. "정의롭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은 먼 훗날에 도달할지 모르는 텔로스가 아닙니다. 정의와 평등과 자유는 이미 그 세상을 만드는 '과정' 속에 구현되어야 하는 겁니다." 특유의 조롱과 경멸을 걷어낸, 이 성찰적 문장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사랑과 연민이 빠진 기독교 유토피아니즘이 가짜이듯, 과정과 절차가 훼손된 정치적 이상 역시 가짜일 것이다.

역사적 유토피아를 믿는 사람을 난 믿지 않는다. 그곳은 칼 포퍼식으로 말하면 "닫힌 사회의 순진함과 미(美)의 세계"이며 "거기로 가고자 하면 할수록 낭만화된 깡패 행위로 가는 것이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정의와 자유가 살아있다면, '그날'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 어딘가에 희미하게 숨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신념이 아니라, 반성과 회의의 힘으로만 찾을 수 있다.

이주엽 작사가, 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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