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프트와 삼프트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
[경향신문]
야구의 포지션 이름은 위치와 역할로 규정된다. 1루수는 퍼스트 베이스 맨이다. 1루를 지키는 사람이란 뜻이다. 투수는 던지는 사람, 포수는 받는 사람이다. 영어로도 뜻이 다르지 않다. 좌익수와 우익수, 중견수 역시 위치를 뜻한다. 영어로 된 야구 용어를 일본에서 번역하면서 센터 필더는 중견수가 됐다.
유격수는 쇼트스톱(shortstop)이다. 19세기 중반, 초창기의 야구는 인원수도 고정되지 않아 8명에서 12명 정도가 수비를 하러 나갔다. 니커보커스의 수비수 닥 애덤스가 ‘유격수’ 포지션의 창시자였다. 다들 적당히 내·외야에 나뉘어 서 있을 때 애덤스는 외야수와 내야수 사이에 서서 수비했다. 당시 야구공이 가벼워 외야수가 한 번에 내야까지 던질 수 없기 때문에 중간에 이를 전달하기 위해 서 있던 자리였다. 길게 못 던지니, 짧게 멈췄다 가는 정거장 역할을 한 것이 현재의 ‘쇼트스톱’이다.
일본에서도 처음에는 쇼트스톱의 직역인 짧게 막는다는 뜻으로 짧을 단(短), 막을 차(遮)를 써서 단차자(短遮者)라고 하다가 메이지시대 주만 가나에가 ‘유격수(遊擊手)’로 번역해 굳어졌다. 군대에서 게릴라 전술을 펼치는 ‘유격대’와 같은 뜻이다. 실제 유격수는 야구 수비에서 ‘게릴라’처럼 여기저기 해야 할 일이 많다.
야구는 오래됐고, 그사이 또 변했다. 바뀐 야구는 새로운 말을 요구한다. 탬파베이가 2018시즌 사용한, 1~2이닝만 던지는 선발 투수는 기존 선발 투수의 의미와 목적이 모두 달랐다. 메이저리그는 선발 투수를 뜻하는 ‘스타터’라는 말 대신, 문을 여는 투수라는 뜻의 ‘오프너’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 야구는 새로운 말을 찾지 못한 채 ‘오프너’를 받아들였다. 오프너를 활용하는 투수 기용을 가리켜 ‘불펜 데이’라는 말도 갖다 썼다.
2021시즌은 KBO리그 출범 이후 40번째 시즌이다. 강산이 4번 바뀌는 동안 한국 야구도 크게 바뀌었다. 일본식 야구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고, 제대로 된 영어식 표현으로 바꾸는 일에 비해 바뀐 야구에 맞는 새 말을 만드는 과정이 부족했다. 야구가 바뀌면, 말이 바뀌고, 그 말이 새 야구를 잘 설명한다면 야구가 풍부해진다. 탬파베이의 선발 투수 실험은 ‘오프너’라는 용어를 통해 야구계 안팎에 받아들여졌고 야구의 고정관념을 확실히 깰 수 있었다.
바뀐 야구 환경에 따라 바뀌면 좋을 말 중 하나가 ‘선구안’이다. LG에서 은퇴한 박용택은 “좋은 공을 골라 치라는 말이 가장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투수가 던지는 150㎞ 가까운 공은 ‘좋은 공’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이미 치기에는 늦은 공이 된다. 무게중심을 잔뜩 뒤에 놓고 공을 때리는 KT 조용호 역시 “타격은 기다렸다가 골라 치는 게 아니라 모든 공을 치러 나가다 나쁜 공을 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을 선택하는 눈이라는 뜻의 ‘선구안’보다는 나쁜 공을 참아내는 쪽이 실제 야구의 메커니즘과 닮았다. 공을 골라내는 것 역시 ‘눈’이 아니라 ‘몸’이라고 많은 선수들이 말한다. 선구안이 좋은 타자 대신, 참을성을 지닌 타자가 실제와 더 부합한다.
뜻을 잘 설명한다면, 굳이 국어를 고집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어차피 ‘시프트’라는 용어를 쓸 거라면, 3루수가 2루 베이스를 넘어 수비하는 것을 ‘3프트’, 유격수가 옮기면 ‘유프트’라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2루수만 깊숙이 수비하는 것을 두고 ‘2익수’라 부르기도 했다. 새로운 말이 야구를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이용균 기자 |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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