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사당 난입 8000명 속엔 평범한 소시민도 있었다

장은교 기자 2021. 1. 1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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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큐어넌 등 극우 지지세력 외
음모론·폭력과 연관성 없는
선출된 정치인·경찰 등 포함
경제적 박탈감 등 계기 다양
트럼프 가도 ‘갈등 불씨’ 여전

‘그들은 누구이고 왜 그랬을까.’ 세계를 경악하게 한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습격 참가자들의 면면이 검찰 수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극우성향 음모론 추종집단인 ‘큐어넌’ 지지자들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모인 ‘프라우드 보이스’ 회원들은 물론 평범한 시민들과 선출된 정치인, 경찰도 있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란 인물을 매개로 모여 분노를 폭발시켰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없는 시대에서도 미국 사회의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불씨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가장 두드러지는 참가자는 극우성향 지지자들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큐어넌과 프라우드보이스, 또 다른 극우단체인 ‘스리 퍼센터스’ 등을 중심으로 지난 5일(현지시간) 밤부터 2000여명이 워싱턴에 모였다. 이들은 방탄조끼를 입고 헬멧을 착용했으며 칼과 곤봉, 쇠막대기 등의 무기를 미리 준비했다. 의사당 2층 유리가 강화유리인지도 확인했다. 미디어 분석회사인 지그널 랩스는 6일 폭동 이전에 SNS에서 “국회를 급습하자”는 용어가 10만번 이상 언급됐다고 밝혔다.

의사당 습격 때 거의 나체에 뿔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성조기를 들고 등장한 제이콥 앤서니 챈설리(왼쪽 사진)는 ‘큐샤먼’이라 불리는 유명한 큐어넌 회원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실에 들어가 책상에 발을 올리고 사진을 찍은 리처드 바넷(오른쪽)은 한 총기옹호단체 회원이다.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제이슨 크로 민주당 의원은 이번 난입 사건과 관련해 25건 이상의 테러 혐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참가자 중엔 정치인과 경찰도 있었다. 공화당의 데릭 에번스 웨스트버지니아주 의원은 의사당에 난입해 현장을 생중계한 뒤 기소됐고, 결국 사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0일 “경찰관 몇명과 경찰서장 한 명 이상이 이번 폭동에 참여했거나 연관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8000명에 이르는 집회 참가자 중에는 음모론이나 폭력과는 거리가 먼 시민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을 “21세기 미국 각지에서 분노로 모인 이들”이라며 “경제적 박탈감 때문이든, 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든, 어떤 음모에 빠진 것이든 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대통령에게 충성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폭도들 속에는 다수의 주류 미국인들이 강경 극단주의자들과 섞여 있었다”고 평가했다.

집회 참석 후 의사당에 들어가지 않은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케빈 하그는 뉴욕타임스에 “의사당에 침입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지만, 수천명의 사람들을 보며 권력을 느꼈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트럼프가 없어도 운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당 안에서도 사람들은 제각기 행동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어떤 이들은 무장한 채 활보했지만, 어떤 이들은 무기를 보고 겁을 먹었다. 어떤 이들은 민주당 의원들을 사냥하듯 상원으로 가자고 외쳤지만 어떤 이들은 “상원이 뭐냐”고 물었다. 어떤 이들은 의사당 안에 들어온 흥분을 즐기며 SNS 생중계를 했다.

사건 이후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가자, 일부 참가자들은 온라인에서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사당을 습격한 사람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에 대해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한 참가자는 의사당에서 “트럼프는 자신의 마러라고(리조트)로 돌아가면 되지만, 우리는 폐업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공화당 소속 뉴멕시코 주위원회 코위 그리핀 위원은 또 다른 습격을 예고했다. 극우성향 SNS에선 취임식 전후 워싱턴 숙박시설과 승차권 공유, 소지할 무기들에 대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인터넷 언론 악시오스는 10일 “미국은 블루아메리카(민주당 지지그룹)와 레드아메리카(공화당 지지그룹), 트럼프 아메리카(트럼프 지지그룹)로 분열됐다”며 “향후 가장 실존적인 물음은 트럼프 아메리카가 몇년 안에 레드아메리카의 전통적인 권력까지 잠식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전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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