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원칙 없는 규제완화여선 안 된다
[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이어 “특별히 공급 확대에 역점을 두고,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주택공급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했다. 다주택자 등을 겨냥한 투기 차단에 중점을 둬온 그동안의 정책기조와 대비된다. ‘공공개발론자’인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을 주택정책 수장에 앉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변 장관은 설 전에 주택공급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의 고밀도 개발이나 민간의 재개발·재건축 공급 확대, 공공자가주택 같은 방안이 거론된다. 적절한 공급이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필요한 규제까지 풀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민간의 공급 때 고분양가를 지나치게 억제하지 않는 방안까지 거론된다니 걱정스럽다. 자칫 그렇게 할 경우 분양가의 고삐를 풀어줘 주변 집값까지 부채질할 위험이 있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 양도소득세 완화론이 나온 것도 예사롭지 않다.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와 부총리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비상경제대책본부장인 김진표 의원이 이를 거론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11일 “검토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의혹의 시선은 다 거두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7·10 대책’ 때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율을 10%포인트 올렸다. 올해 6월부터 적용될 예정으로 아직 시행조차 되지 않은 정책이다. 이런 정책을 다시 손보겠다니 이해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세금보다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것이 강남을 비롯한 서울 집값을 다시 뛰게 하는 요인이다. 게다가 집을 파는 대신 자녀에게 증여해서 중과를 피했기 때문에 양도세 완화 효과도 제한적이다. 지난해 1~11월 주택 증여는 13만4642건으로 역대 최다였음이 이를 방증한다.
집으로 폭리를 챙기지 못한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는 한 백약이 무효다. 부동산정책들이 제대로 효과를 못 본 이유는 7·10 대책 같은 것을 정권 초반에 과감히 내놓지 않고, 땜질 처방만 거듭한 데 있다. 지금은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와 가격 하향안정이란 원칙은 지키면서, 수요 있는 곳에 알맞은 공급을 할 때다. 공급 우선론자에게 휘둘려 원칙을 흔들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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