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문 대통령 신년사는 '3년 전 봄날'에 젖어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오전에 2021년 신축년 신년사를 내놓았다. 방송으로 생중계됐는데, 읽는데 27분쯤 걸린 분량이다. 핵심 요점을 추려보니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2021년은 우리 국민에게 ‘회복의 해’, ‘포용의 해’, ‘도약의 해’가 될 것입니다.” 경제와 일상생활의 회복, 선도국가로 도약, 취약계층 포용, 이렇게 세 가지다. 짧게 말하면 회복, 도약, 포용 등이다.첫 번째 ‘회복’이란 무엇인가. 대통령 발언은 이렇다. “우리 경제는 올해 상반기에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성장률과 수출에서 다른 나라를 앞지르는 성과가 있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가령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한국이 OECD 국가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했다. 물론 우리보다 성장률이 좋은 국가도 있다. 중국과 대만이 그렇다. 그렇지만 이들은 OECD 회원국이 아니다. OECD 회원국 대부분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는데, 우리 역시 마이너스이긴 했으나 그나마 그 폭이 작았다는 뜻이다.문 대통령은 이른바 ‘K방역’을 자랑하면서 OECD 국가 중 손꼽히는 방역 모범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드디어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입니다.” 이 대목에서 국민들은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든다. 지난번에도 대통령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했었는데, 그 직후부터 확진자 수가 치솟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달 전인 12월9일 수도권 방역상황 긴급 점검 영상회의에서 대통령은 ‘터널의 끝’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그 뒤로 확진자 수는 1000명대를 넘어서기 시작했다.문 대통령은 OECD 국가 혹은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백신을 한국은 다음 달에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것 역시 우리는 왜 백신 접종이 늦어졌는지, 충분한 물량 확보가 왜 안 됐는지 국민들께 해명하고 사과해야 할 것 같은데 마치 자랑처럼 말했다. 그러면서 ‘무료 접종’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렇게 말했다. “다음 달이면,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에 따라 순서대로 전 국민이 무료로 접종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기업이 개발한 치료제의 심사도 진행 중입니다.”다음 달이면 코로나 백신의 전 국민 접종이 완료되는 나라도 있다. 우리는 이제 시작인 셈이다. 그런데도 선도국가냐고 묻고 싶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뭉텅이 돈을 풀 것인지를 열거하고 나섰다. “오늘부터 (총4조1천억원 규모인) 3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했고, 또 ‘확장적 예산’을 집행하여 ’110조원 규모의 공공·민간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했으며, ’30조5천억원의 일자리 예산을 1분기에 투입하겠다'고 했다. 4월에 있을 서울·부산 보궐선거 이전에 천문학적 규모의 현금을 살포하겠다는 얘기로도 들렸다.그러나 문 대통령은 아파트 값을 비롯한 부동산 대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는지 비교적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다.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면서 “다양한 주택공급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만 했다. 정상 상태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돈 풀기를 강조한 다른 부문에 비해 주택 문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은 것이나 같다. 그나마 세금으로 투기를 막겠다는 식의 과거 발언을 아끼고 대신 “공급확대에 역점을 두겠다”고 한 것이 부동산 대책의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문 대통령은 이날 신년사에서 선도국가라는 말을 무려 6번이나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빠르고 강한 경제회복으로 새로운 시대의 선도국가로 도약할 것”, “우리 경제도 선도형 경제로의 대전환에 나섰다”, “국민이 한국판 뉴딜을 체감하고 선도국가로 가는 길에 동행”, “소프트 파워에서도 선도국가로 도약”, “책임 있는 선도국가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것”,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 나아가는 선도국가 도약의 길” 등이다. 대통령의 말들이 너무 화려하고 장밋빛이어서 국민을 몽롱한 꿈에 젖게 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것과, 망상을 갖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진짜 국가 지도자라면 국민들에게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마지막으로 대통령이 국민에게 말씀 드려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북한 핵에 관한 것이다. 더군다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주말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핵 위협을 했다. 이렇게 말했다.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 무기화를 보다 발전시키라.” 즉 전술핵을 개발하라는 것이다. 전술핵이란 사거리가 수백 km 이내인 단거리 미사일로 발사되는 핵탄두를 말한다. 즉 한국이나 일본을 직접 겨냥하는 핵무기인 것이다.김정은은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핵무력 건설 대업을 완성” “완전무결한 핵 방패” “핵무력 고도화를 위한 투쟁” 같은 발언에서 보듯 핵무기를 무려 36차례나 언급했다. 비핵화는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김정은의 발언 직후에 있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를 주목하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에 대해 뭐라고 할 것인지 가장 뜨거운 이슈이기 때문이다.문 대통령 신년사 중에 그 대목을 그대로 옮겨본다. “전쟁과 핵무기 없는 평화의 한반도야말로 민족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 부분에서 구태여 말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지만, 문 대통령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핵무기 없는 한반도’가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라고 했어야 한다. 한국에는 이미 핵무기가 없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용어였는데, 그나마 가짜 비핵화였다는 게 거듭 확인되고 말았다. 또한 문 대통령 말처럼 비핵화 문제는 ‘후손에게 물려주겠다’고 할 만큼 머나먼 훗날의 과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 우리 목숨이 달려 있는 당면 과제다. 대통령은 후손을 들먹임으로써 먼 훗날 얘기하듯 하고 있다. 국민을 지킬 의지가 있는 정권이냐고 묻고 싶다.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8차 당 대회에서 36차례나 쏟아낸 직접적인 핵 위협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마치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문 대통령 발언은 이렇다. “멈춰있는 북미대화와 남북대화에서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남북 협력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평화’가 곧 ‘상생’입니다.”김정은은 핵무력 고도화를 말하고 있는데, 문 대통령은 남북이 공동대응하자면서 코로나 협력과 상생과 평화를 말하고 있다. 코로나 협력은 북한이 비본질적 문제라면서 이미 걷어찬 제안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우리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이렇게 지적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날 ‘우리의 남북 합의 이행 의지는 확고하다’고 얼빠진 소리를 또 되풀이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밖에 할 수 없다.”그런데 김정은은 또 이런 말을 했다.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 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은 평화와 번역의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3년 전 봄날’이란 2018년4월, 그러니까 지금부터 3년 전에 있었던 4·27 판문점 선언을 가리킨다.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라고 한 부분은 문재인 정부가 올해 3월로 예정돼 있는 한미 연합군사 연습을 중단하라는 압박이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신년사에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냥 짤막하게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발맞추어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한편…”이라고만 했다. 우리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향후 움직임을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야 할 것 같다.그리고 문 대통령 신년사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얘기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짐작했던 대로다. 이번 주 목요일, 1월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이 있고, 또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갖게 되면 그때 뭔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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