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비핵화 쏙 빼고 '남북협력'만 강조..野 "현실 직시하라"
김정은 '核 증강'으로 압박하는데
文 "한반도 평화 대화로" 되풀이
'공동 방역·보건' 먼저 제안하기도
"北 핵개발 방조 하겠다는 것인가"
야당·외교전문가들 비판 이어져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발표한 ‘2021년 신년사’에서 외교 분야와 관련해 △남북 협력 재개와 △한미 동맹 강화 △한일 관계 개선 등의 방향을 제시했다. 취임 초의 신년사보다는 남북 관계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줄었으나 대화 재개를 향한 의지는 더욱 강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문 대통령은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맞아 ‘한미 동맹 강화’ 의지를 밝히고 냉각기가 이어지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미래지향적 발전’을 강조하기도 했다.
남북 관계 개선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핵 무력 증강 계획을 직전에 밝힌 북한의 행보와 대조를 보였다. 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를 더욱 고도화하겠다고 천명한 가운데 문 대통령의 발언은 “전쟁과 핵무기 없는 평화의 한반도”라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렀다. 북한을 향한 비핵화 촉구가 빠진 셈이다. 노동당 8차 대회 닷새째인 지난 9일 공개된 발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핵 잠수함’ ‘국가 핵 무력 건설 대업’ 등 ‘핵’이 포함된 표현을 서른여섯 번이나 사용하며 핵 증강을 외쳤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방역을 고리로 한 남북 협력 카드도 다시 내밀었다.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북한과도 보건 분야의 공동 협력을 바란다”며 손을 내민 후 이어온 기조가 유지된 것이다.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는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와 ‘한·아세안 포괄적 보건의료 협력’을 꼽았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깜짝 북미 대화를 성사시킨 도널드 트럼프 식의 톱다운 의사결정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 속에서 우리 측이 주도하는 보건 협력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 측의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앞으로도 매우 희박해 보인다. 김 위원장은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우리 정부의 방역 협력안을 이미 평가절하한 바 있다. 그는 “남조선 당국은 방역 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 관광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 들고 북남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야당은 문 대통령의 안보 인식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정은이 ‘판문점 선언 발표 이전으로 돌아갔다’는데 문 대통령은 고장 난 시계처럼 ‘상호 간 안전 보장’ ‘공동 번영’만 반복했다”며 “(북한이) 핵 주먹을 쥐고 휘두르는데 어떻게 악수를 하고, 어떻게 대화가 되나”라고 반문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당 비대위 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핵 잠수함을 건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명중률 고도화 이야기를 했다”며 문 대통령을 향해 “북한 현실을 더 직시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도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며 일본 측이 반발하는 등 최근 한일 간 첨예한 대립을 감안해 원론적 수준의 언급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섣불리 언급하기가 지금은 묘한 상황이 됐다”면서 “관계 개선에 대한 한국 정부의 뚜렷한 입장을 발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세민·김혜린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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