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된 권력', 어디까지 비판하고 조롱할 수 있나

박찬수 2021. 1. 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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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_14
1월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과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의사당을 점거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링컨은 ‘대중이 더이상 노예제에 찬성하지 않는 순간, 노예제는 사라질 것’이라며 국민 마음을 얻는 게 대법원 판결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 마음(민심)이 전부다. 국민의 마음을 얻으면, 못할 게 없다. 이걸 잃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고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자가 법을 제정하거나 판결을 내리는 자보다 더 중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입법하기 전인 2019년 10월, 의원회관에서 금태섭 당시 국회의원을 만난 적이 있다. 금태섭 의원은 공수처 설치를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그날도 금 의원은 공수처법 표결에 찬성표를 던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해야지, 이 둘을 함께 갖는 공수처를 설치하는 건 또다른 옥상옥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내가 “공수처는 오랫동안 검찰개혁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몇달 뒤에 총선인데, 입법에 찬성하지 않으면 경선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하자, 금 의원은 “그런 어려움은 감수해야죠”라고 답했다. 그 이후 전개 과정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소신을 꺾지 않은 정치인 금태섭은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고, 지금은 민주당을 탈당해 새로운 정치적 모색을 하고 있다.

자, 무엇이 문제인가. 공수처가 검찰개혁의 옳은 방향이 아니라는 금태섭 생각이 잘못인가, 아니면 그런 금태섭을 포용하지 못한 민주당의 편협함이 문제인가. 정답은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은 합리적 이견을 가진 사람을 포용하는 게 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또한 금 전 의원은 중요한 표결에서 당원의 뜻을 반영하지 못했으니 당내 경선에선 그에 걸맞은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둘 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개별적으론 일리 있는 주장들이 현실 정치에선 종종 첨예하게 대립한다. 민주주의는 이런 대립적 사안의 최종 결정권을 국민에게 맡기는 제도다. 어떤 게 전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다수가 선택했기에 믿고 따르자는 게 대중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다. 경선에서 탈락하고 새로운 모색을 하는 금 전 의원 행동에 대한 평가도 오는 4월의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금태섭 전 의원과의 만남을 불현듯 떠올린 건, 최근 사법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무효 결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 때문이다. 한쪽에선 ‘선출된 권력(대통령)의 일반적 행정 행위를 ‘선출되지 않은 법관’이 제어하는 게 옳은가’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선 ‘그런 주장이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무너뜨린다. 민주독재다’라고 주장한다. 정작 이 논쟁에서 ‘국민의 뜻’은 너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선출된 권력’이 만능일 순 없지만, 이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조롱은 대통령제와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눈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예로 검찰총장 징계무효 결정이 난 직후, 야당 쪽의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 2명은 법원에 후보추천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지명한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후보자의 임명을 가로막으려는 것이다. 임기제 검찰총장의 징계 논란은 이렇게 대통령 인사권 하나하나에까지 법적·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며 무력화하려는 상황을 일상적으로 만들고 있다. ‘선출된 권력’의 평가와 판단을 국민 뜻, 곧 선거에 맡기지 않고 법과 제도에 따라 제어해야 한다는 시각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일부에선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예로 들며, ‘선출된 권력’을 물러나게 한 건 ‘선출되지 않은’ 헌법재판관들이 아니었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2016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전국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촛불이 없었더라도 과연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국민의 뜻이 촛불시위로 표출되지 않았다면, 박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2017년 12월에 치러지는 대통령선거를 통해 판가름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정상적 절차였다.

‘선출된 권력’에 대한 사법부 또는 입법부의 대응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봐도 알 수 있다. 선거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 등을 이유로 한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적법’했다. 그러나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헌재 결정을 광범위한 국민들의 탄핵반대 시위, 그리고 탄핵을 주도한 야당의 총선 참패와 떼어놓고 보긴 어렵다. 두차례의 헌재 결정이 모두 순수하게 ‘법적 논리’에 의해서 이뤄졌다고 본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전부다”라는 유명한 말은 바로 이 점을 꿰뚫고 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58년, 민주당 상원의원 스티븐 더글러스와 노예제도에 관한 논쟁을 7차례 벌였다. ‘흑인 노예와 그 후손은 미국 시민이 아니다. 연방정부는 주정부의 노예제도를 금지할 권리가 없다. 정당한 법 절차 없이 주인으로부터 노예를 빼앗을 수도 없다’는 1857년 미 연방대법원 판결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링컨은 더글러스가 노예제 자체의 선악을 논하기보다는 오로지 대법원 판결에만 기대 노예제를 옹호한다고 비판했다.

링컨은 ‘대중이 더이상 노예제에 찬성하지 않는 순간, 노예제는 사라질 것’이라며 국민 마음을 얻는 게 대법원 판결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 마음(민심)이 전부다. 국민의 마음을 얻으면, 못할 게 없다. 이걸 잃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고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자가 법을 제정하거나 판결을 내리는 자보다 더 중요하다.”(Public sentiment is everything. With public sentiment, nothing can fail, without it nothing can succeed. Consequently he who molds public sentiment goes deeper than he who enacts statutes or pronounces decisions)

미국 대통령제 정착에 기여한 이들이 입법부 또는 사법부와 ‘대통령 권한’을 놓고 충돌한 과정을 살펴보는 건 흥미롭다. 현대 대통령제(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의 기반을 닦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법원이 뉴딜 법안에 잇따라 위헌 판결을 내리자, 대법관 숫자를 두배로 늘리고 구성 권한을 대통령에게 주는 ‘대법원 개혁’을 추진했다. 대법원이 미국민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구질서를 옹호한다고 비판했다. 그의 구상은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토대를 약화시킨다’는 의회 반발에 부닥쳐 무산됐지만, 바탕엔 링컨과 비슷한 인식이 깔려 있다. 헌법이든 대법원 구성이든, 최종 결정권한은 국민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선출된 권력’이 항상 옳지는 않다. 히틀러가 그랬고 지금 미국의 트럼프가 그렇다. 그러나 수백만명을 학살하고 인류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고 간 히틀러와, 시위대의 의회 점거를 선동한 트럼프를 ‘선출된 권력’을 폄하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영웅전설>에 나오는 현명한 전제군주 라인하르트와 공화주의자 양 웬리의 민주주의에 관한 논쟁은 이 점을 짚고 있다.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흐르면서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공화정의 생명을 갉아먹었다는 라인하르트의 비판에, 양 웬리는 ‘그래도 국민 스스로 선택하고 국민 스스로 책임을 지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낫다’고 대답한다. 그 누구도 국민을 대신해 ‘선출된 권력’을 제어할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민심은 변한다. 링컨이 한 ‘국민의 마음이 전부’라는 말도 결국 모든 것은 변한다는 걸 염두에 둔 표현일 것이다. 변화하는 민심은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가 꽃을 피운 루스벨트 시대를 ‘제왕적 대통령제’의 시초로 부르는 건, 이 제도 역시 완전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정해놓아 너무 긴 시간 동안 ‘민심의 변화’를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개헌 외엔 달리 도리가 없다. 하지만 개헌 역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 국회와 법원은 대통령보다 국민의 믿음을 얻고 있는가, 이 점부터 돌아봐야 한다.

2019년 10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면서 링컨을 인용했다. 하원의 탄핵 청문회를 열기 전, 펠로시는 의사당에 걸린 링컨 초상화를 보면서 “국민의 마음이 전부다”(Public sentiment is everything)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때 트럼프는 살아났지만, 지금은 두번째 탄핵소추의 길에 서 있다. 지난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선거 승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한 것은 상징적이다. ‘다수 국민의 선택’에 기반한 현대 대중민주주의는 기존 법과 질서를 상위에 두려는 위협뿐 아니라, 선거에 승복하지 않는 소수 대중의 조직적 저항에 직면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게 미국만의 일이 아님은 우리 모두는 안다. 말 그대로 ‘위기의 민주주의’ 시대다. pcs@hani.co.kr

박찬수ㅣ선임논설위원. <한겨레신문>에서 정치부와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과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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