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는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2021. 1. 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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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옥의 평화문화만들기] 영랑호를 지키는 것, 한반도 생태계를 회복하는 길

[김귀옥 한성대학교 교수(freeox@hansung.ac.kr)]
21세기 초 최대 담론: 기후위기와 환경위기

2020년 과학계에서나 사회적으로 최고의 담론은 기후위기와 환경위기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가치를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정부도 탄소 중립 선언이나 그린 뉴딜 정책 등을 쏟아내고 있다.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차이가 있어서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전문가의 일치된 의견으로 지나친 개발과 그로 인한 기후위기(climate crisis)의 결과를 꼽을 수 있다. 개발에 따른 자연 훼손이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게 되는 과정에, 야생 동물의 바이러스가 종간의 면역체계를 허물고 인간에게 적응하면서 계속 변종 바이러스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지구생태계와 기후의 변화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CO2)의 막대한 배출은 지구의 기온을 상승시키면서 야생 동물의 서식지도 이동하게 만들어 야생 동물의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체계를 갖추지 못한 인간이 습격을 당하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21세기 과학기술은 하루가 멀다 않고 진화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계의 적응과 진화의 방향은 제대로 예측하기 어렵다. 인간이 번영과 발전의 명분을 드높이며 자본과 과학기술을 동원할 때 잠시는 자연을 정복한 듯이 보이지만, 자연은 반드시 더 큰 보복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연의 피폐화는 나와 우리의 평화와 행복을 불안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코로나19 국면에 정부는 침체된 경제와 이에 따른 우울증을 뜻하는 이른바 '코로나 블루'에 빠진 국민을 일으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국가 재정을 투입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가까이서 볼수록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특히 지역 정부를 놓고 보면 그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무분별한 개발이 청초호의 용을 죽였어!

25년 전,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6개월을 살았다. 오랜만에 거주해 본 중소도시가 주는 특별한 느낌은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된다. 특히 바다와 청초호 사이에 있는 아바이마을은 종종 감동을 줬다. 설악산으로 해가 넘어갈 때 설악산의 그림자가 청초호에 깃들면,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특히 겨울의 설악산과 청초호의 조화는 감동 그 자체였다. 조선조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도 "설악산의 그림자가 청초호에 비치면 나그네는 청초호 부근 마을에 잠자리를 정한다"라는 시구를 소개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미 속초 청초호는 원상회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자연경관이 망가져 있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청초호와 영랑호 유원지 정책을 착수할 당시 자연 보호와 개발의 균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관심했다. 197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속초와 설악산 환경정비사업에 9억 500여만 원의 사업비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대부분 비용은 자연보호가 아닌 도로 건설 등의 개발사업비에 들어갔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80, 90년대에도 설악산과 동해안에는 자연이 훼손되면서 콘도미니엄, 레저시설들이 경쟁적으로 건립됐다. 당시 하수도 종말처리장이 없어서 생활 오·폐수, 농업폐수는 그대로 호수로 유입되었다. 특히 항구처럼 이용되었던 청초호에는 선박이나 선박 건조공장에서 버리는 폐수도 엄청났다. 종종 호수의 부영양화가 심각해질 때면 질식사한 고기떼들이 호수에 둥둥 떠올랐다.

이에 1980년대에 청초호를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1990년대 내가 속초에서 연구하고 있을 당시에도 환경보호의 낮은 목소리는 개발 논리에 사장되었다. 몇몇 전문가들은 그때에도 청초호를 살릴 길이 있다고 했다. 제대로 하수처리장을 만들고 오·폐수를 호수에 버리지 않고 몇 년만 두면 자연정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속초시와 중앙정부는 개발만이 지역경제가 살길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거부했다. 급기야 1990년대 후반에는 속초 청호동을 두 동강 내어 동해와 청초호를 연결하는 새로운 물길을 열겠다고 하면서 해당 청호동 주민 수십 세대들을 철거시켰다. 청초호의 1/3을 매립했고, 항구와 유원지로 조성하면서 호수 주변의 원형은 거의 사라졌다. 청초호는 이제 자연 석호의 기능을 거의 잃고 인공호수처럼 되었다.

청초호와 영랑호 전설에 따르면 각 호수에 숫룡과 암룡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한 어민의 실수로 청초호 솔밭이 불타버리면서 숫룡이 죽게 되자 암룡이 그 지역에 가뭄과 흉어의 벌을 내렸다고 한다. 개발이라는 화마가 청초호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완전히 망가뜨린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청초호가 가진 자연적 속성은 앞으로도 어떻게든 진화를 할 것이다. 진화의 방향이 인간에게 이익이 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그런데 속초시는 이제 남은 영랑호마저 개발하지 못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2017년 속초시는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관광 활성화를 위해 영랑호에 부교, 수변광장, 데크로드(800m), 천연기념물 급의 범바위에 대한 경관조명, 야외학습체험장 등을 갖춘 약 40억 원 규모의 개발사업을 들고 나왔다.

▲ 속초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 마스터플랜 ⓒ속초시

1970년대 영랑호 유원지 정책으로 이미 영랑호의 생태계도 훼손될 대로 훼손되었고, 영랑호의 부영양화 등의 여러 원인에 의해 다양한 민물과 바다 어종들이 빈번하게 고통을 겪었다. 1993년 영랑호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호수 퇴적물 준설, 친환경형 수변 조성, 바닷물 유입을 위한 도류제(導流堤, training dike) 설치, 상류 습지공원 조성 등에 500억 원 이상이 투입되고 있다. 현재도 습지생태공원 사업은 진행 중이지만 영랑호 하구에서는 간혹 부패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간신히 살아나고 있는 영랑호는 지난 2019년 속초의 대화재로 몸살을 앓았다. 그런 중에도 영랑호는 속초와 인근 주민을 지켜줬다. 영랑호가 가진 풍부한 수량 덕분이었다. 늦게 출동하는 소방차를 대신하여 주민들도 영랑호 물을 퍼날랐다. 또한 수 십대 출동했던 소방헬기가 한 번에 영랑호의 물을 4000리터 씩 퍼 나른 덕분에 인근 불길을 잡게 해주었다. 너무도 고마운 호수다.

▲ 설악산 울산바위와 겨울 영랑호 ⓒ김귀옥

▲ 2019년 속초 대화재로 소실된 후 방치된 영랑호 주변 콘도 ⓒ김귀옥

또한 영랑호를 비롯한 동해의 18개 석호를 포함한 수려한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영랑호는 수많은 큰고니(백조), 왜가리, 천동오리 등과 같은 철새 도래지이고, 그 외에도 많은 나그네 새들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또한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수달(천연기념물 330호)과 수리부엉이(천연기념물 324-2)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생태습지로서 수많은 수중 식물들이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영랑호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야할 공간이다.

1970, 80년대 무분별한 개발을 돌이켜 생각하면, 가난했고 자연에 무지했던 시절, 관광이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역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던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관광자본이 더욱 부자가 되었을 뿐이고 지역민들의 형편은 여전히 팍팍하다. 아무튼 그런 덕분에 인구 8만여 명의 중소도시인 속초는 연간 1700~180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되었다.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수도권에 비해 지역의 낙후성은 개선되고 있지 않다. 아직도 지역경제는 어렵고 지역민들은 살기 어렵다. 또한 일자리를 포함하여 지역문화가 낙후되어 있어서 청년들은 계속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현실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역 경제를 살리는데 생태 훼손이 도움이 될까?

관광 선진국인 스위스를 잠시 보자. 스위스의 관광지하면 레만호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제네바 도심 한가운데 있는 레만호는 호수 밑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최상의 자연보존 상태여서,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이래서 관광 선진국임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1950년대에는 레만호도 썩을 정도로 오염되어 죽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마구잡이 개발과 오·폐수의 방류가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주민과 정부의 각성, 엄격한 오염 감시와 생활폐수 유입 방지의 노력에 의해 호수를 다시 살려 냈다.

스위스는 초원에도 무조건 가축을 기를 수 없도록 했다. 가축 분뇨의 과잉 발생은 CO2 발생과 수질 오염의 주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호수 주변에서는 일정한 공간에 가축 사육수를 제한하였고, 분뇨조차 썩힌 뒤 분사 처리하도록 하였다. 레만호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자연이 지켜진 레만호는 세계인들의 사랑받는 관광지가 되었고, 세파의 지친 사람들을 치유하고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외화를 획득하도록 하고 있다.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

이번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에 대해 많은 속초 시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속초·고성·양양지역의 환경단체는 기나긴 지역 정부와의 투쟁에 지쳐갔다. 그때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단체 이름도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로 지었다. 속초 시민 8만여 명 중 10%가 넘는 사람들이 반대 서명을 했다고 한다.

2020년 7월부터 시민들이 나서서 반대 활동을 하고 있고, 2021년 1월 4일 속초시 연례시무식에도 침묵시위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영랑호에 인접하고 있는 속초고등학교 학생들은 영랑호 개발 반대를 위한 동영상을 만들어 영랑호를 지키자고 나섰다. 심지어 속초의 중학생 480여 명도 "환경파괴 영랑호 개발반대"를 표명하며, "자연석호를 보존해 달라"며 서명부를 속초시에 제출했다.

▲ 속초시 시무식 옆의 영랑호 개발 반대 시민의 침묵 시위(왼쪽)와 속초시청앞에서 진행된 영랑호 개발 반대 1인 시위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

영랑호 하나를 친자연적으로 지키는 것이 속초와 지역경제에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수도권 사람들이 간혹 내려가서 자연을 편리하게(!) 즐기고 돈 좀 쓰고 오면 서로 상생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후대들도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 또한 야생생물도 생명권을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을 때 자연은 인간에게 경제적 이익과 치유와 안식을 베풀어 준다.

돌아보면 영랑호를 비롯한 동해 18개 석호는 세계적 자연유산으로서 손색이 없다. 설악산의 울산바위와 청초호, 영랑호를 가진 속초는 그야말로 천혜의 아름다움을 갖춘 축복의 지역이다. 외부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민, 후대들, 세계인들도 더불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영랑호에 얽힌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화랑 영랑의 이야기는 동부 휴전선 직하의 도시인 속초의 미래 지향적 가치를 상징하기도 한다. 분단과 한국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속초, 양양, 고성 등지에 남아 있다.

군사분계선과 전쟁, 정전 상태는 한반도의 육지, 바다, 하늘 자체를 전장으로 또는 전쟁 연습장으로 만들어 왔다. 이제는 한반도가 개발과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자. 한반도 생태계가 평화로워질 때 이 땅의 사람들에게도 평화와 번영이 찾아올 것이다. 이제라도 자연과 미래를 망치는 영랑호 개발계획을 내려놓고, 영랑호의 생태계를 지키자. 내일이면 늦다.

[김귀옥 한성대학교 교수(freeox@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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