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의 도시, 흥분과 격정을 그리다

노형석 입력 2021. 1. 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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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서 뜨거운 블루스 연주가 울려 퍼진다.

블루스 가락이 최고조로 치닫는 격정의 한순간, 코드를 잡은 손은 불붙은 장작처럼 빨갛고, 기타 줄 위로 노란 불꽃이 타오르듯 피어난다.

미국 남부 멤피스에 있는 블루스 바에서 연주 장면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린 가로세로 61㎝의 작은 그림인데, 평면에 칠하는 붓질이 작가의 역량에 따라 얼마나 변화무쌍한 마법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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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작가 '조지 콘도' 한국 개인전
23일까지 성수동 더페이지 갤러리
조지 콘도의 2005년 작 <더 블루스>. 2005년 미국 남부 멤피스에 머무르며 현지 공연장에서 강렬한 블루스 곡 연주에 심취했던 추억을 특유의 화풍으로 그려냈다.

그림 속에서 뜨거운 블루스 연주가 울려 퍼진다. 머리 벗어진 중년 악사가 이빨을 앙다문 채 기타 줄의 코드를 잡으며 열정의 리듬을 뽑아낸다. 그의 얼굴이 분홍빛에서 빨간빛에 가깝게 달아오른다.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기타 리프를 보면서 오직 음에만 집중한다. 블루스 가락이 최고조로 치닫는 격정의 한순간, 코드를 잡은 손은 불붙은 장작처럼 빨갛고, 기타 줄 위로 노란 불꽃이 타오르듯 피어난다.

보는 이의 눈에 후끈한 연주장의 공기가 확 끼쳐올 듯한 느낌을 안기는 이 작품은 미국의 스타 작가 조지 콘도(64)의 유화 <더 블루스>(The Blues, 2009)다. 미국 남부 멤피스에 있는 블루스 바에서 연주 장면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린 가로세로 61㎝의 작은 그림인데, 평면에 칠하는 붓질이 작가의 역량에 따라 얼마나 변화무쌍한 마법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콘도는 악사의 흥분과 격정적 선율을 담기 위해 세부를 생략하고, 눈과 앙다문 이, 기타 리프를 만지는 손의 색감과 윤곽을 강조한다. 오톨도톨한 미묘한 질감을 드러내고 붉은 계통의 색을 명도를 달리해 배치하면서 현장의 온도와 참석한 사람의 기분에 빠져드는 독특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원래 음악 이론을 공부하고 밴드에도 참여했으며 재즈와 블루스에 심취했던 작가의 취향이 잘 드러난다.

‘조지 콘도’전이 열리고 있는 더페이지 갤러리 전시장 모습. 오른쪽 벽에 전시의 대표작으로 나온 <빨강, 초록, 보라색 초상화>(Red and Green and Purple Portrait, 2019)가 보이고 왼쪽 공간 안쪽 벽에 만화 추상 작업 <대피 덕>(Daffy Duck, 2009)이 보인다.

<더 블루스>는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지난 연말부터 열린 콘도의 두번째 한국 개인전 출품작 중 하나다. 콘도는 미국 팝 미술과 유럽 고전주의, 모더니즘 예술의 구도를 융합시켜 뒤틀리고 해체된 현대인의 얼굴상을 표현한 연작으로 유명하다. 특정 지역을 여행한 뒤 그곳의 문화적 인상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변용시킨 ‘기억 그림’도 상당수 그렸다. 2000년대 이후의 크고 작은 근작 20여점을 엮은 이 전시는, 국내에서 볼 기회가 없었던 콘도의 내밀한 ‘기억 그림’을 상당수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눈길을 끄는 출품작이 <더 블루스>를 포함한 멤피스 연작이다. 2005년 미국 서남부의 도시 멤피스를 방문한 뒤 그린 작은 그림들이다. 레스토랑, 슈퍼마켓, 공연장 등을 스케치한 뒤 캔버스에 특유의 붓질과 도상으로 그려 넣었다. 현지에서 만난 케이터링 업체 대표의 명함을 두껍게 떡칠하듯 바른 물감층에 던져놓고 식당 로고와 엮어 만든 오브제 회화가 특히 인상적이다.

2019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 전시관 들머리에 내걸렸던 조지 콘도의 대작 <더블 엘비스>의 전시 장면. 서구 현대 사회와 현대인 내면의 극심한 분열상을 표출한 작품이다.

전시의 대표작은 가로세로 2m를 넘는 대작인 <빨강과 초록, 그리고 보라색 초상화>(Red and Green and Purple Portrait, 2009)다. “인간 내면의 복잡다단한 심리, 감정의 단면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주관적 이미지로 표현한다”며 1980년대 이래 작가가 명명한 ‘심리적 입체주의’ ‘인공적 사실주의’를 입과 귀, 이만 몸체에 붙은 기괴한 인물상으로 표출했다. 기쁨과 공포, 불안, 혐오가 혼재한 현대인의 내면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상을 모티브로 2002년에 만든 검은색 청동 두상은 상하의 비례를 무시하고 찌그러진 얼개로 현대인의 얼굴을 표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내면의 불안과 덧없음을 느끼는 요즘 관객에게 묘한 교감을 안겨주는 전시다. 23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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