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양극화에 소환되는 부유세

이윤정 기자 2021. 1. 1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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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심한 중남미서 시작
미국·유럽 '도입 논의' 급물살
각국, 경제 충격 완화 대안 검토

[경향신문]

‘백만장자들의 재산에 세금을 매기자’는 부유세 도입 논의가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정부 재정이 악화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자 부자들의 곳간을 열어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남미에서는 일부 국가들이 이미 부유세 법을 통과시켰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부유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부유세 도입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곳은 중남미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지난달 5일(현지시간) ‘백만장자의 세금’이라고 불리는 일회성 부유세 부과 법안을 통과시켰다. 2억페소(약 26억원)가 넘는 재산을 소유한 1만2000여명이 자산의 3.5~5.25%에 달하는 세금을 내도록 하는 법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부유세로 3000억페소(약 6조8580억원)의 재정을 확보해 의료장비 마련, 중소기업 지원, 장학사업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볼리비아에서도 지난해 11월 정권을 잡은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이 부유세 도입을 약속한 뒤 지난달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칠레, 페루 등에서도 의회가 부유세 도입을 논의 중이다.

미국에서도 민주당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전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부유세 도입에 부정적이지만 민주당이 다수당인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의회에서는 고소득층 대상 부유세 도입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11일 기준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를 보면, 세계 억만장자 10명 중 6명이 미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주에 거주하고 있다.

민주당은 부유세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직면할 때를 대비해 양도소득세 등 다른 ‘부자세’ 카드도 검토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부유세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영국 경제학자들이 세금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지난해 설립한 독립연구기관 ‘부유세위원회’는 세입 충당책으로 부유세 도입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자산 50만파운드(약 7억4000만원) 이상을 보유한 이들에게 재산의 1%를 세금으로 5년 동안 받는 방식이다. 과거 부유세를 도입했다 폐지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재도입 논의가 점화됐다.

부유세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경제 충격 때문이다. ‘K자형 경제회복’으로 계층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빈부격차 해소 방안의 하나로 부유세가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위축되면서 정부의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 것도 원인이다.

올해 4500억파운드(약 666조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재정적자를 경험하고 있는 영국이 대표적 사례다. 데이비드 고메스 인디애나대학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부와 소득에 대한 불평등 인식이 늘고 있다”면서 “현재 세금 제도가 이런 인식에 대응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들이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섣부른 부유세 도입이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부자들이 국외로 거주지를 옮기는 등 실질적으로 세수 확보가 잘되지 않았던 전례가 많아서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미국 억만장자들이 소득세율이 높은 캘리포니아주를 떠났고, 아르헨티나에서도 부자 500여명이 부유세를 내지 않으려고 국외로 거주지를 옮겼다. 1995년 기준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5개 나라에 부유세가 존재했지만, 2019년 현재 스위스, 벨기에, 노르웨이, 스페인 등 4개국에서만 부유세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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