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입양모입니다, 정인이의 죽음에 대해 대통령께 말씀드립니다 / 정은주

한겨레 2021. 1. 1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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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입양모입니다.

지난해 10월에 일어난 16개월 입양아동 정인이의 죽음에 대해 입양가족으로서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지난 1월4일 대통령께서는 입양의 사후관리뿐 아니라 입양절차 전반에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의 원인과 책임에 '입양절차 전반'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의 발표 이후 언론은 들끓는 여론을 따라가며 입양절차에 비판을 더해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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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비극’]

16개월 영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양부모의 첫 재판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정문 인근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관계자들이 화환에 리본이 떨어지지 않도록 스테플러 고정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은주50대 입양모·경기 고양시

저는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입양모입니다. 지난해 10월에 일어난 16개월 입양아동 정인이의 죽음에 대해 입양가족으로서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아기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없게 하기 위해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할까 가슴앓이하던 중, 대통령님의 발표 내용을 접했습니다.

지난 1월4일 대통령께서는 입양의 사후관리뿐 아니라 입양절차 전반에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의 원인과 책임에 ‘입양절차 전반’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12월 초에 정부의 주무부처에서 사건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여 대책을 내놓았고, 정인이의 죽음은 입양 전반 과정이 아니라 입양 이후 공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뤘던 방송(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피디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입양기관에 비난의 초점이 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대통령님의 발표 이후 언론은 들끓는 여론을 따라가며 입양절차에 비판을 더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입양부모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갑자기 지인들로부터 아이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전화를 받거나, 예비 범죄자가 된 듯 의심하는 시선을 곳곳에서 받는 등 깊은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첫아이를 입양해서 잘 살고 있는 한 입양가족은 둘째 입양을 준비하던 중 이런 상황에선 입양을 포기해야겠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정인이의 입양모가 정신과 진료기록이 있었다는 이유로 입양절차가 허술했다고 비판하는 여론 앞에선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입양을 위해서는 법원에서 정해준 병원에 가서 3시간이 넘는 심리상담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법원 판결이 나옵니다. 심리검사 중 혼이 쏙 빠질 정도의 질문을 받고 이것저것 테스트를 거칩니다. 검사 결과지는 입양부모 본인들도 보지 못합니다. 정인이의 입양부모가 그 과정을 어떻게 통과했는지는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저희는 좌절합니다. 앞으로 한번이라도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사람은 입양할 마음을 접어야 할까요?

만일 입양 정책이나 입양법에 문제가 있다면,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론에 등 떠밀려 구색 갖추기 식으로 대책을 강구할 일이 아닙니다. 아동학대 문제를 다룰 때 특정 가정의 형태에 초점을 두면 편견과 차별을 깊게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 아닌가요? <한겨레> 탐사보도로 구성된 책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2016년)에서는 아동학대 가해자가 친생부모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보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우리의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아동학대를 우리의 문제가 아닌 ‘그들’의 문제로 보게 하는 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길이 못 된다고 말입니다.

부디 이번 사건으로 가슴 아파하는 모든 이들과 죄인처럼 위축돼 있는 입양가족들을 위해, 현장의 열악한 상황에 밀착된 개선책을 세워주십시오. 입양을 70년간 민간에 맡기고 국가가 역할을 해오지 못했다면, 민관이 함께 머리를 모아 대책을 찾아가야 합니다. 혹시라도 일거에 공공화시키겠다는 정책으로 공백이 생기게 하지 마시고, 신영복씨의 말처럼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일일이 찾아 듣는 고심 어린 과정을 거쳐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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