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빈칸을 채우는 배우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배우가 좋은 캐릭터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탄탄한 서사도 중요하겠지만 그 옷을 어떻게 입고 소화할지는 배우의 몫이다. 이 지점에서 김남희는 늘 자신의 몫 이상을 해내는 배우다. 지독한 악역부터 현실에 있을 법한 친근한 매력까지 팔색조 같은 면모를 뽐낸다.
김남희가 출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극본 홍소리·연출 이응복)은 은둔형 외톨이 고등학생 현수가 가족을 잃고 이사간 아파트에서 겪는 기괴하고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태어난 괴물이라는 설정으로 한국에서 본 적 없는 크리처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개 이후 한국을 포함한 대만,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필리핀, 페루, 쿠웨이트, 카타르,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총 11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7위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 최초의 성과를 거뒀다.
먼저 공개 직후 이어진 뜨거운 반응에 대해 김남희는 겸손한 태도를 드러냈다. 그는 "'스위트홈'이 온전히 좋은 평가와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 지적을 받으며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사랑을 해주신다. 어떻게 안 기쁘겠냐. 배우로서 팀의 구성원으로서 좋은 결과라 생각하다. 허나 너무 들뜨지 않고 더 좋은 역작을 위해 꾸준히 연기하려 한다"며 정제된 모습을 보였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게 된 '스위트홈'. 자연스레 해외 진출에 대한 욕심도 품을 법 하다. 이를 두고 김남희는 웃으며 "해외 진출은 영어가 안 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대사가 없는 역할이라면 언제든지 진출하겠다"면서 "반응이나 리뷰를 간간히 찾아본다. 계속 보고 있자니 집착하는 것 같아 가급적이면 안 보려 한다. 연연하는 것도 안 좋은 것 같다. 좋은 글이면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와의 작업을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넷플릭스 시장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오래된 것 같다. 그만큼 친밀하다. 무명 배우나 기존 배우도 더 넓은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다. 배우 입장에서 봤을 때 플랫폼으로서 다양한 연기, 과감한 연기, 다양성을 열어둘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앞으로도 더 도전하고 싶다"며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극 중 김남희는 선과 정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진 정재헌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정재헌은 조용하고 얌전한 말투를 가진 기독교 신자인 국어 교사로 괴물과 죽음에 대한 공포, 타인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공간에서 남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타적인 인물이다. 특히 정재헌과 윤지수(박규영)과의 감정선은 '스위트홈'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로 팬들을 환호케 했다.
그렇다면 국내 첫 크리쳐물에 도전한 소감은 어떨까. 이에 김남희는 "사실 부담이 있었다. 크리처물을 비교하자면 헐리우드 밖에 없다. 너무나도 월등하게 앞서 있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 했다. 배우들도 부담을 느꼈다. '어벤져스', '아이언맨' 등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하는 메이킹 영상을 보며 저보다 훌륭한 배우들을 참고했다"며 남다른 비하인드를 밝혔다.
관객들을 만족시키기에 많은 부담감이 있었다는 김남희는 자신의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제 연기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제가 좋아했던 장면들을 좋아하시니 사람들 보는 눈은 다 똑같더라. 극 중 '던져'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당초 정재헌을 어두운 인물로 설정했다. 하나의 사건으로 무너졌다가 종교로 극복하고 평범한 삶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인물이다. 어두움을 이겨내고 바른 자세로 이겨내려는 전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진검을 활용한 화려한 액션에 대해선 "촬영 6개월 전부터 검도를 배웠다. 빈 연습실에서 사범님과 둘이서 진검에 대해 연습했다. 죽도로 검술을 하는 자세, 검도를 막연히 잘 하는 모습보다 어떻게 검을 좀 쓸 줄 아는 자세, 그와 맞춰 현장에서 무술 감독님의 지도 하에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원작의 캐릭터를 원천으로 서사를 구축했다는 김남희는 인물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트와 유머를 넣었다. 정적이고 굳은 모습으로 희생을 한다면 보는 이들에게 여운을 남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매사 평온한 모습과 진중한 모습, 그리고 쉴새 없이 휘두르는 검술 실력 때문일까. 정재헌이라는 캐릭터를 두고 많은 팬층이 형성됐다. '신의 뜻'이라는 대사가 유행어처럼 남기도.
많은 사랑을 받게 해준 정재헌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김남희는 "저는 정재헌처럼 살 수 없었을 것 같다.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다. 제 안의 희생적인 모습을 극대화했다. 또 은혁처럼 마냥 배려를 하는 사람이 안됐을 것 같다"면서 "재헌이라는 인물은 등치가 있어야 해 외부적으로 벌크업을 하며 몸을 키웠다. 다만 연기가 아쉬웠다. 양극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 안 돼 아쉬웠다"고 솔직하게 답하기도 했다.
이어 "제가 연극 경력이 있다. 그때 당시 기억을 살려 대사를 구어체로 바꾸려 노력을 많이 했다. 또 좋은 역할을 했던 전작들을 참고했다. '콘스탄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저격수도 참고했다. 기독교적인 인물이 상당히 매력이 있다는 게 궁금했다"고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고충을 밝혔다. 다만 김남희는 실제로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다고.
특히 김남희의 중저음 목소리가 인물의 신실한 면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도. 이를 두고 김남희는 "그동안 목소리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들었다. 변성기가 지날 때부터 주변 친구들이 왜 이렇게 굵냐는 이야기를 했다. 내 목소리가 그렇게 이상한가 생각했다. 하지만 연기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네 배우 인생은 목소리가 이끌 것이라 하셨다. 목소리가 아주 좋은 배우가 될 거라 해서 발성과 에너지 뱉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뜻밖의 비하인드를 밝혔다.
그런가 하면 극 초반부터 괴물들과 사투를 벌여왔던 정재헌의 죽음은 시청자들을 눈물짓게 했다. 그린홈 주민들을 위해 몸을 던진 그의 숭고한 모습은 '스위트홈'의 명장면이다. 기리 남을 명장면을 만들었지만 캐릭터의 죽음이 아쉽진 않았을까. 이에 "모든 배우들은 죽는 게 아쉽고 더 나아가고 싶어 한다. 희망이 있을 법한 장면에 죽어서 더 아쉬워할 것 같지만 명장면으로 남았다.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다. 원작보다는 더 강렬하고 애틋하게 죽었다. 갈 때 가더라도 멋지게 가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재헌의 환생, 부활은 전혀 없다. 그래서 많이 아쉽다"면서도 "많이 응원해주신다면 혹시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스위트홈' 정재헌의 강풍 같은 인기가 몰아치자 김남희의 필모그래피도 함께 화두에 올랐다. '미스터 션샤인' 친일파 모리 타카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모두의 전 남자친구 표준수까지 모두 김남희였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 2013년 영화 '청춘예찬'으로 데뷔한 이래 드디어 전성기를 맞이했다며 들떠 있을 법 한데도 김남희는 고요하고 또 차분했다.
"'스위트홈'에 관심을 가져주시면서 제 전작들도 찾아봐 주신다. 각각 다양한 모습이 나오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이사람이냐며 새로운 매력을 느낀다. 그만큼 제가 무명이었다. 많은 분들이 저를 잘 모르셔서 그랬을 것 같다. 못 알아봐서 아쉽진 않다. 배우로서 제일 좋은 칭찬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김남희는 배우로서 어떤 길을 걸을까.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너무 급하게 많은 것을 얻으려 하고 싶지 않다며 묵직한 소신을 드러냈다. 매 현장에서 작품을 위한 사명의식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당장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목표라고. 고민을 거듭하던 김남희는 어떤 배우가 될 것인지 앞으로 꾸준히 연기를 통해 고민하겠노라며 대답을 빈칸으로 만들었다. 이에 김남희의 빈칸이 어떻게 채워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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