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홍두사미?'..'양도세 완화' 묵살 與, 홍남기 선별지원론 수용할까

세종=이민아 기자 2021. 1. 1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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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부총리, 정치 논리에 밀려 의견 관철 못해
다주택자 매물 유도 발언 하루만에 기재부·여당 반발
1차 재난지원금 때도 결국 여당 뜻대로

"현재 세 채 네 채 갖고 계신 분들이 매물을 내놓게 하는 것도 중요한 공급정책이다. 기존 주택을 다주택자가 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다 공급대책으로 강구할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오전 9시 KBS 1TV ‘현안진단 라이브’ 생방송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전국에 생중계된 홍 부총리의 발언은 오는 6월부터 시행되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렇지만, 불과 6시간 만에 기재부는 "양도세 중과 완화 방안에 대해서는 검토된 바가 없다"는 보도해명자료를 냈다. 장관 발언에 대해 부처 실무진이 반박하는 자료는 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양도세 등 부동산 규제 강화를 고집하는 집권 여당의 불편한 심경이 기재부에 전달됐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한 발 더 나아갔다. 11일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당 최고위원회 회의 결과를 전하며 "양도세 중과세 완화 검토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관련 논의를 한 적이 없고 논의할 계획도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처럼 부동산 정책을 교란시키는 말이나 주장은 참 나쁜 것으로 간주하고, 부동산 당·정과 배치되는, 해서는 안 되는 주장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정당국 의견대로 돼야하는 건 아냐" 힘 빠진 洪의 소신

이같은 상황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해 7·10 부동산 대책의 부작용을 완화해야 부동산 시장에 매물이 나올 수 있다는 시장의 목소리를 홍 부총리가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여권의 반발에 뜻을 접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다주택자들에게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세를 한꺼번에 올린 7·10 대책으로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처럼 경제 현안에 대한 홍 부총리의 ‘소신 발언’이 집권 여당인 민주당에 묵살당하는 모습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기재부 내부에서 조차 홍 부총리의 소신 발언이 관철될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홍 부총리는 역대 6번째로 장수(長壽)하고 있는 부총리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장수 부총리라는 기록에 비해 그가 소신들은 여당에 번번이 밀려 초라하게 접혔다.

현재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2차 전국민 재난지원금(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홍 부총리의 소신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설 명절 전에 일부 피해 업종 자영업자·소상공인에 지급하는 3차 재난지원금 이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금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홍 부총리는 같은 방송에서 "4차 논의는 시기적으로 이르다"면서도 "정부 재원이 화수분이 아니므로 피해 계층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소신을 밝히면서도 여지를 두기도 했다. "재정당국의 의견을 이야기하지만 그대로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 지난 해 5월 지급한 1차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 과정에서 그가 "소득 하위 70%에만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전국민지급안을 최종 확정한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본인의 소신을 부대의견으로 남겨달라고 고집한 것에 비해서는 다소 약한 수준의 반대 의사로 풀이된다.

이는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여당 지도부가 이번에도 전국민 지급에 군불을 떼고 있기 때문이다. 최인호 수석부대변인은 11일 "4차지원금의 지급대상이나 방식은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낙연 대표도 "민생 실태와 코로나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신속하고 유연하게 추가 지원방안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홍익표 정책위원회 의장도 "전국민 지급이 필요한 시점이라 한다면 적극적으로 논의할 생각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홍두사미’라도 소신 발언 이어가는 이유는

지난해부터 홍 부총리에게는 ‘홍두사미’라는 별명이 생겼다. 홍 부총리의 이름에 ‘용두사미’를 합성한 것으로, 한번 제기한 사안을 끝까지 밀고 간 적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홍 부총리 취임 후 기재부가 주요 현안에 대해서 집권 여당의 정치 논리에 끌려간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는 단어다. 별명처럼 홍 부총리는 처음에는 강경하게 시장 논리에 따른 경제 상식을 자신의 소신처럼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집권 여당과 청와대의 정무적인 판단에 끌려다녔다. "기재부는 더불어민주당의 심부름꾼 아니냐"라는 내부 반응도 있다.

지난해 11월 주식양도세 부과 대주주 요건에 대한 당정 간 의견 대립 국면은 ‘홍두사미’의 대표 사례다. 지난 2018년 정부는 2021년 4월 이후 종목당 3억원 이상 보유한 사람을 대주주로 여기고 과세한다는 내용으로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양도세 부과로 인한 매물 출회로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주식 투자자들이 반발했다. 그러자 여당에서 양도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3억원에서 현행 10억원으로 유지하라고 촉구했고, 결국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대주주 기준이 현행 10억원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이에 홍 부총리는 지난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책질의에서 사의를 표명하며 반발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홍 부총리에 재신임 의사를 밝혔고, 홍 부총리는 하루만에 "인사권자의 뜻에 맞춰 직무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의표명을 거두었다.

홍 부총리가 급격히 악화된 재정 건전성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이라며 야심차게 내놓은 재정준칙도 국회를 통과할지 불투명하다. 입법예고를 마치고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친 한국형 재정준칙은 야당과 여당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어 국회 통과까지는 요원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야당은 ‘고무줄처럼 느슨하다’는 비판을, 여당은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한 시기에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재정준칙을 만들 때부터 기재부 내부에서는 ‘양쪽에서 다 비판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홍 부총리는 밀어붙였다. 재정건전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자세를 보여야 관료 집단에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 부총리는 취임 3년차에 접어들지만, 전직 부총리들과의 공식 만찬 간담회를 한번도 열지 못했다. 전직 부총리·기재부 장관들이 신임 경제부총리를 격려하기 위해 간담회에 참석하는 전통을 잇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시내 한 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홍 부총리의 행보를 두고 "기재부 공무원들과 정부 임면권자 모두에 잘 보이고 싶은 게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강하게 소신을 밝혀 부총리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는 걸 보여줘 기재부 내부 여론을 잠재우고, 결국 임면권자의 뜻대로 행해 부총리 이후 행보를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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