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없다

이덕주 2021. 1. 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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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야사-57] *안녕하세요? 매일경제에서 중소기업을 담당하는 이덕주 기자입니다.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중기야사는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2019년 12월 17일 시작해 13개월 동안 중기야사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중기야사는 중소기업에 대한 법적인 정의에서 시작해 중소기업이 스타트업·벤처기업과 다른 점, 그리고 소상공인·자영업자·개인사업자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쯤에서 중기야사 2화에서 다시 소환해보는 중소기업의 정의 그래픽. /그래픽=매일경제 이덕주 기자

그리고 중소기업 근로자 주택특별공급제도를 비롯한 각종 중소기업 우대 정책과 외국인 노동자, 청년·중소기업 일자리 미스매치, 코로나19와 소상공인, 중소제조업(뿌리산업+스마트공장), 중소기업을 담당하는 정부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와 산하 기관,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우리나라의 창업 지원 제도 등을 이슈로 다뤘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제지산업, 섬유산업, 재활용산업, 안경산업, 전자산업, 조명산업 등 세부적인 산업의 역사도 다뤘고 기업가정신, 가족경영, 규제, 주 52시간 근무제 등 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주제에 대해서도 다뤄보았습니다.

첫 회에서 밝힌 대로 중기야사는 '중소기업'을 새로 담당하게 된 기자가 독자와 함께 '중소기업'에 대해 함께 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매경프리미엄 연재물이었습니다.

기자들은 2~3년마다 담당 분야를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15개월쯤 전에 중소기업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저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정의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3개월가량 지나면 어느 정도 그 분야에 대해 파악하게 되고 1년이 되면 '전문가'가 된 것처럼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부자들에게는 재미있는 내용이 외부자들에게는 시큰둥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JTBC 허쉬 홈페이지

그래서 처음 1년은 의미가 있는 기간입니다. 외부자의 시각에서 내부자의 시각으로 변화해가는 기간이면서 양쪽을 잘 연결해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발생하는 문제 중 상당 부분이 외부자와 내부자의 시각차에서 빚어집니다. 이 둘을 연결해주는 것이 기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3개월 동안 중기야사를 쓰면서 제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중소기업은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법적인 근거가 있고, 담당 부처가 있고, 어마어마한 예산을 쓰고 있는데 중소기업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엉뚱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중소기업을 담당하는 부처가 있고 정책이 있는데 말입니다.

최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이 있습니다. 이 법안을 두고 기업계와 노동계가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사망사고 시 사업주의 징역형'으로 대표되는 이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들의 반대가 심하자 국회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간 적용을 유예하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앞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2019년 대기업에 먼저 적용되고 중소기업에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되는 것과 비슷한 타협책을 내놓은 것입니다.

억울한 건 대기업일까요 중소기업일까요? /사진=매일경제신문 2021년 1월7일자

그런데 이렇게 규제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기업 규모에 따라 규제를 달리하는 것은 과연 맞는 것일까요?

기업의 실행 능력에 따라, 업종의 특수성에 따라 규제를 달리하는 것은 중소기업계가 꾸준히 요청해온 것입니다. 사실 규제에 따른 피해를 제일 많이 보는 것은 중소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규제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기업 크기와는 무관하게 그 규제는 도입하지 않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소상공인이든 기업의 본질은 똑같다는 것이 중소기업을 담당하면서 제가 갖게 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워낙 소수 인원이라 예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매출이나 직원 수를 기준으로 규제를 달리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게 된 기업의 본질은 이렇습니다.

기업을 한다는 것은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누군가를 고용하면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업에 대한 리스크와 이득을 모두 진다는 것이 기업가정신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반면 피고용자(노동자)는 리스크와 이득을 모두 포기하고 정해진 보상만을 받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노동자가 유리해질수록 기업가에게는 불리해지고, 기업가에게 불리해지면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집니다. 기업 경쟁력과 사회적 기준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전체적인 국가 경쟁력을 결정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위치는 대개 이 세가지 중 에 위치해있습니다. 다만 중복 선택이 가능합니다.

기업 규모가 크든 작든 이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나쁜 규제라면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도입하지 않는 것이 맞고, 꼭 필요한 규제라면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도 규모에 따라 차등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특수한 사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소기업 지원책은 국가가 기업을 지원하는 몇 안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제 무역에서 국가가 특정 기업을 지원하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됩니다. 이는 국제 경쟁에서 불공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지원한다고 공공연히 비난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가 삼성전자나 현대차를 지원한다면 비난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국제 무역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포용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중소기업의 기준을 정하지 않는다면 이 수단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셈입니다.

미국, EU, 일본이 지난해 1월 발표한 공동성명은 중국에 대한 견제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사진=KIEP

그러나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지원을 다르게 한다는 것은 과연 맞는 것일까 저는 의구심이 듭니다. 도가철학에서 '무위자연'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경제라는 것도 인간이 인위적으로 이를 재단하다 보면 현실과는 다른 것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에는 소상공인에 속하게 됩니다. 소상공인의 정의가 상시 직원 5인 미만 기업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스타트업이 소상공인과의 차이를 찾아낼 방법도 많지 않습니다.

많은 벤처기업이 벤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편의를 위해서 벤처 인증을 받는 경우가 많고,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벤처기업인데도 인증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벤처기업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하이어뮤직레코즈 같은 회사가 법적인 이유로 대기업으로 분류되고 있고(CJ ENM이 주식 51% 소유), 네이버나 셀트리온 같은 회사도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일 잘하는 대기업 직원의 예. /사진=엠넷 쇼미더머니9

직원이 50인 미만인 회사가 직원 500명인 회사보다 더 많은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기도 하고, 매출액 70억원이던 회사가 1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훌쩍 넘기도 합니다. 비즈니스 세계란 워낙 역동적이고 예외가 많아서 경직적인 법과 규제가 따라갈 수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과거에 만들었던 기준이 10~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여서 현실과 동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고가 주택 기준이었던 9억원이 지금은 너무 흔해진 것처럼 세상은 정말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법조문으로 정해놓은 기준과 규제가 한번 정해놓으면 정말 바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규제와 입법 필요성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몇 년만 지나도 기업이나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다시 이것이 절대 바뀌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에 대해 정의하고 이를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역으로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고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중소기업에 대한 규제에 유예기간을 두는 것은 괜찮지만, 규모에 대한 규제를 두기보다는 아예 이 규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중소기업이 워낙 피해가 크다 보니 이를 방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차등 규제로 타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회정치라의 어쩔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세줄 요약으로 중기야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1. 문제가 있는 규제라면 차등 적용을 할 것이 아니라 아예 도입하면 안된다.

2. 복잡한 기업 활동을 법과 수치라는 잣대로 재단하다 보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3. 다만 '국제 경쟁' 체제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을 정의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덕주 벤처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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