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도 공포도 虛로 돌린 '물방울 화가'.. 제주에 잠들다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한국 추상 미술 거장 김창열(92) 화백이 5일 별세했다. 제주도에 자신의 작품 220점을 ‘의탁’할 정도로 제주도와의 인연을 중시여기던 그였다. 그 작품들로 제주도는 도립김창열미술관을 2016년 5월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에 열었다. 미술관은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 문화지구내에 있다.
개막식에 참석했던 김 화백은 “해외를 떠돌다 어디 정착할 곳을 찾는데, 제주도는 풍경이 프랑스와 비슷한 점이 많다. 또 도민이 미술과 문화를 사랑한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나는 맹산이라는 심심산골에서 태어나 용케도 호랑이한테 잡아먹히지도 않고 여기 산천이 수려한 제주도까지 당도했습니다. 상어한테 잡아먹히지만 않으면 제주도에서 여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라는 축문을 남겼다.
김 화백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16세인 1945년 월남했다. 서양화가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운 뒤 1948년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중단했다. 이후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며 추상미술 앵포르멜 운동을 주도했다.
그가 물방울 화가라는 말을 듣게 된 단초는 미국 뉴욕을 거쳐 프랑스에 정착한 1972년의 일이다. 당시 파리시 근교에서 머물며 그림을 그렸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캔버스천을 화구에서 떼다가 물을 뿌려놨다. 그 곳에 방울진 물이 아침 햇살에 빛나는 모습을 보고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었다”고 했다. 같은 해 파리 ‘살롱 드 메’ 전시 출품작 ‘밤의 사건’으로 첫 선을 보이면서 그는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 화백이 제주도와 연을 맺은 것은 6.25때였다.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경찰로 1년 6개월간 근무했다. 그는 제주도를 떠올리며 “추사 선생이 있었고 이중섭 화백을 여러 번 뵌 곳이 바로 제주도이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때의 감동이 계속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중섭 역시 6.25때 피난처로 서귀포에서 살았었다.
김 화백은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에고의 신장을 바라고 있으나 나는 에고의 소멸을 지향하며 그 표현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소원대로 그는 상어에 먹히지 않았고, 물방울을 통해 지향하는 대로 에고의 소멸을 찾았다. 그는 김창열미술관에 있는 나무 밑에 수목장으로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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