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하나 더했을 뿐인데, '윤스테이' 살린 나영석의 비밀주문

김교석 칼럼니스트 입력 2021. 1. 11. 13:20 수정 2021. 1. 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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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로망의 불씨 피운 '윤스테이'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새로운 영화가 시작됐다. 나영석 사단 최대 히트 시리즈인 <윤식당>이 코로나 시대를 맞아 <윤스테이>로 돌아왔다. 유니버스 내의 프로그램으로 따지자면 <윤식당>의 역사에 <스페인하숙>을 더한 콘셉트다. 윤여정, 이서진, 정유미, 박서준 등 기존 멤버 전원이 이탈자 없이 다시 뭉치고, 사람, 자연, 음악, 인테리어, 음식 등 그들 특유의 팝업스토어식 프로젝트의 주요 재료들과 단순한 일상, 함께하는 따뜻함 등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핸디캡을 보완하는 설정을 더했다.

"우려먹는 덴 대한민국 최고"라는 이서진의 말도 그렇고, 나영석 PD 스스로도 최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자기복제 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식상함보다는 돌아온 계절과 같은 반가움으로 맞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하다. 지난 8일 첫 회 시청률은 수도권 기준 9.8%, 전국 기준 8.2%이며 2049 시청률을 비롯한 어느 지표나, 어떠한 정성적인 평가 기준으로 살펴봐도 이견이 없는 또 하나의 성공 사례다.

<윤식당> 시리즈는 라이프스타일에서 오는 감성과 예능의 재미, 동화 같은 스토리가 결합된 나영석 사단의 정수다. 이들이 창조한 팝업스토어식 관찰예능은 그 시점에 맞는 화두와 라이프스타일, 로망을 재미의 원료로 삼아 특정한 장소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한편의 짧은 드라마를 만든다. 여기서 핵심은 일상 및 현실과 분리된 시공간으로의 초대다. 엄청난 몸값과 인기를 자랑하는 주연 배우들이 점원, 서버, 요리사가 될 수 있게끔, 현실에서 벗어난 동떨어진 특별한 세계를 창조한다. 일상과 다른 세상, 대리만족의 로망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로망의 근간과 그동안 이 시리즈가 쌓아온 기대치 덕분에 <윤스테이>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 비록 이국적 정취가 가득한 풍광과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지는 못했지만, 코로나로 일상마저 소실된 요즘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이야기를 원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떠나는 설렘과 자연을 즐기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나고, 함께하는 기쁨과 현실적 고민이 제거된 루틴하고도 단순한 삶이 주는 행복과 같은 소소한 일상성은 <윤식당> 시리즈의 핵심이다.

물론 요즘 세상만사가 그렇듯 기존과 달라진 환경 탓에 난관도 많다. 발리 옆의 어느 섬이나,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의 어느 휴양지처럼 배경이 되는 풍광에서부터 설렘을 만들고, 출연진들이 인간적인 면모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나 보는 사람이나 이들이 유명 배우가 아니라 실제 종업원으로 리셋해야 하는데 국내에선 좀처럼 이루기 어려운 미션이다. 설렘의 대부분이 새로운 풍경과 색다른 공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오고, 손님들이 출연자들의 출신을 몰라야 핍진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설정의 뼈대 자체를 올리기 쉽지 않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해결하는 미션 과정 또한 특별할 것이 없으니 제작진의 몰래카메라가 삽입되거나 분량의 상당 부분이 윤여정이 말했듯 "대장금을 찍는" 본격 쿡방에 가까워졌다.

전남 구례에 자리 잡은 <윤스테이>는 지난 1년 동안 국내를 무대로 캠핑이나 여행을 떠난 여타 예능들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설정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손님의 자격을 한국 체류 1년 미만의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라는 조건을 하나 더하면서 탈국적의 시공간을 획득했다. 바로 이 한 줄의 설정이 <윤스테이>를 일상과 현실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만든 비밀주문이다. 한옥 스테이, 템플 스테이를 소재로 다룬 예능이 많고, 외국인에게 한식을 소개하는 예능도 많지만, 이 설정 하나로 현지인들에게 이색적인 한식을 전했던 기존 <윤식당> 시리즈의 기조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영어다. EBS는 아니지만 이 시리즈에서 영어는 재미와 로망을 만드는 무척 중요한 수단이다. 유창한 영어는 풍경과 미술(인테리어)와 함께 현실과 일상에서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는 비밀의 문이다. 출연자의 정체성을 숨길 수 있으며,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기회다. 출연자와 손님간의 자연스러운 소통과 반응은 <윤식당> 시리즈가 가진 주요한 재미다. 원활한 소통의 장점은 <비긴어게인> 시리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한식이나 'K-무엇'을 내세우는 것보다 '국뽕'을 재미로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기도 하다. 1회에서 유일한 인턴으로, <여름방학>으로 나영석 유니버스에 합류한 캐나다 교포 출신 배우 최우식이 자신의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하도록 무대를 만들어준 것도) 바로 영어 능력 덕이다.

이제 첫날밤을 맞이한 <윤스테이>는 기존 식당 범위 이상의 업무를 해쳐나가는 산적한 과제를 힘을 합쳐 해결해나가야 한다. <윤식당>이 품은 로망, 대리만족의 즐거움은 실제로 요식업이나 숙박업을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현실을 잊게 해주는 이국적인 풍광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열심히 마주하는 일상, 함께 만들어가는 기쁨과 같은 소소한 행복을 조금 색다르게 보여준 데 있다. 그래서 이런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한옥과 궁중 한식으로 얼마만큼 대리만족을 선사할지, 어떤 매력적인 손님, 혹은 그들이 받고 남긴 인상이 우리에게 어떤 재미와 영감을 줄지 궁금해진다. 꽉 막힌 상황에서도 영민한 설정으로 로망의 불씨를 피워 올린만큼 이 사단이 또 어떤 마법을 부릴지 기대를 가져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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