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중대재해법 발효 자체가 '중대재해'

기자 2021. 1. 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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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중대재해법)이 지난 8일 끝내 국회를 통과했다.

엔론의 회계부정은 고의로 일으킨 범죄지만, 우리의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은 우발적 재해라는 비고의적 과실이라는 사실이다.

산업재해가 과실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고의범죄에 준해서 징역의 하한을 정한 것은 법리적으로 지나친 모순이다.

바로 이런 속성들 때문에 산업재해에 대한 법적 제도의 가장 핵심은 처벌보다는 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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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중대재해법)이 지난 8일 끝내 국회를 통과했다. 통계를 보면 산업재해 관련 사망자는 연간 2000명이 넘는다. 세계 경제대국 10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전적으로 기업의 책임으로 돌려 단 1번의 비(非)고의성 사고만으로도 기업의 대표나 실질적인 경영주에게 최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린다. 동시에 해당 법인에 대해서도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작업중지나 영업중단 같은 행정 제재를 하고, 손해액에 대해서는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다. 모든 조항에 걸쳐 처벌을 받으면 동일 재해에 대해 무려 4중 처벌까지도 가능하다.

기업이나 경영자에 대한 처벌 관련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게 바로 미국에서 2002년에 기업범죄 예방과 회계자료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도입된 ‘사베인스-옥슬리법’이다. 이 법안이 만들어진 것은, 2001년 12월 2일 미국 7대 기업으로 꼽히는 엔론이 15억 달러에 이르는 회계부정 때문에 파산 신청을 한 게 그 배경이다. 엔론 사태로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600억 달러 이상의 주식 가치가 증발했으며, 21억 달러의 노동자 퇴직연금이 사라졌고, 5600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결국, 막대한 규모의 피해를 초래한 엔론의 CEO 제프리 스킬링은 징역 24년4개월과 500억 원에 이르는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엔론의 회계부정 사태와 산업재해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엔론의 회계부정은 고의로 일으킨 범죄지만, 우리의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은 우발적 재해라는 비고의적 과실이라는 사실이다. 산업재해가 과실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고의범죄에 준해서 징역의 하한을 정한 것은 법리적으로 지나친 모순이다. 동시에 이런 우발적 과실까지 모두 경영자와 기업의 책임으로 귀속시키면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가 지나치게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중대한 산업재해들을 분석해 보면 대다수의 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예외적 사건들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경영자라면 고의적으로 사고나 재해를 발생시키기 위해 산업 설비를 갖추지는 않는다. 이런 예외적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 모든 기업에 대해서 법적 규제를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효용가치가 없다.

세계 최고의 회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산업재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다. 100년 이상의 역사에 세계 최고 수준의 위험관리를 한다는 영국 종합석유화학회사 BP도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산업재해를 피하진 못했다. 바로 이런 속성들 때문에 산업재해에 대한 법적 제도의 가장 핵심은 처벌보다는 예방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만 해도 경영자나 사업주가 지켜야 하는 의무 조항이 1200개가 넘는다. 산업 규제를 남발하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

정치적 여론을 빌미로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대 법률을 그대로 발효시켜선 안 된다. 그전에 국회와 정부는 이 법안을 원점 재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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