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조급한 마음에 무엇을 얻을까'.. 한 곡의 노래는 나무 한 그루 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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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무대'(KBS 1TV)는 청국장 맛과 얼추 비슷하다.
노래 한 곡을 남기는 건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과 비슷하다.
서유석은 평생 '마음'을 노래한 가수다.
'그림자 지고 별 반짝이면/ 더욱 그리운 나의 마음/ 세상 사람이 뭐라 해도/ 그대 없이 난 못 살겠네'('사모하는 마음' 중). 불멸의 히트곡 '가는 세월'에서도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 이내 몸이 흙이 돼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라고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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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석 ‘황소걸음’
‘가요무대’(KBS 1TV)는 청국장 맛과 얼추 비슷하다. 나이 들어서야 구수함을 안다. 선후배들이 겸손하게 서서 주제가를 부르는 모습도 흐뭇하다. ‘그리웠던 그 목소리/ 보고팠던 그 얼굴들/ 오늘 여기 다시 모였네/ 반가움의 꽃 피었네’. 2021년 새해 첫 주(1월 4일 방송)에는 김연자 설운도 윤항기 인순이 하춘화 옆에 뜻밖의 인물 두 명이 서 있었다. JYP 박진영과 비. “너희가 왜 거기서 나와.” 이것은 영토 확장일까 침범일까. 새 노래를 홍보하려는 가수의 속셈과 무대를 넓히려는 제작진의 덧셈이 어우러져 그 합창은 엉뚱하면서도 신선했다.
가요는 넘쳐나는데 무대는 한정돼 있다. 노래를 알리고 싶은데, 들려주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 않다.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랑은 구걸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부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은 끌려가지 않고 상대를 끌어당긴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생명력 있는 노래는 냇가에 머물지 않고 서서히 흘러 바다로 향한다. 비록 세상의 노래로 시작해도 궁극엔 세월의 노래가 되는 게 음악인들의 꿈이다. 계산적이거나 계획적으로 되지 않는다.
한밤중에도 노래는 움직인다. 누구는 노래를 만들고 누군가는 노래를 듣는다. 오전 3시에 KBS 제1라디오를 켜면 ‘세월 따라 노래 따라’를 만날 수 있다. 진행자는 신곡을 틀어주지 않는다. 세월의 잣대가 엄선한 노래들이 불면의 밤에 숙성된다.
‘가요반세기’는 글자 그대로 50년 동안의 가요를 모은 책이다. 하지만 노래는 도서관이나 박물관보다 공연장에 어울린다.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영화도 있다. 1968년 국도극장에서 개봉했는데 배우 김진규가 내레이터를 맡아 1960년대까지의 대중음악과 비화를 소개한다. 그리고 또 반세기가 흘렀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서유석 ‘가는 세월’ 중).
1971년이니 딱 50년 전이다. 청년 서유석(사진)은 헤르만 헤세의 시에 곡을 입혔다. 제목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 기어이 부숴 버리는/ 내일이면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아이처럼’. 하기야 어떤 노래는 장난감 같다. 귀를 즐겁게 하고 일정 기간 눈에도 어른거리지만 마음 깊숙이 도달하진 못한다.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고운 장난감처럼 조그만 손으로 장난하고’ 그래서 내 마음을 고민에 빠트린다.
차고 넘치는 듯 보여도 모든 노래가 마음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안 들려 안 들려/ 마음 없이 부르는 소리는 안 들려 안 들려’(송창식 ‘왜 불러’ 중). 사람들은 배우지 않아도 안
다. ‘그냥 한번 불러주는 그 목소리에/ 다시 또 속아서는 안 되지’(송창식 ‘왜 불러’ 중).
노래 한 곡을 남기는 건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이에겐 그 노래가 그늘이 되고 때로는 산소가 되기 때문이다. 서유석은 평생 ‘마음’을 노래한 가수다. ‘그림자 지고 별 반짝이면/ 더욱 그리운 나의 마음/ 세상 사람이 뭐라 해도/ 그대 없이 난 못 살겠네’(‘사모하는 마음’ 중). 불멸의 히트곡 ‘가는 세월’에서도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 이내 몸이 흙이 돼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라고 노래했다. 왜 그토록 마음이 중요한가. ‘세상 모든 게 죽고/ 새로 태어나 다시 늙어갈 때에도/ 감히 이 마음만은 주름도 없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아이유 ‘마음’ 중).
게으른 농부에게도 가을은 온다. 그러나 땅은 마음을 다해 씨를 뿌린 자에게만 곡식을 허락한다. ‘서둘러 모든 일 뜻대로 잘 될까/ 조급한 마음에 무엇을 얻을까/ 황소걸음에 마음을 다하니/ 추수 때엔 정말 기뻐’(서유석 ‘황소걸음’ 중). 올해가 신축년이라 하니 무너진 마음도 새로 지어보자(新築). 경직되지 않고 신축성을 지닌 마음이라면 더 좋을 성싶다.
프로듀서·작가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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