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전환기 혼란·혼동은 열린사회의 증거

송영규 기자 2021. 1. 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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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 상황서도
대선결과 최종 인준에 질서 회복
美 내부의 문제 스스럼없이 공개
폭풍 견뎌내며 새 복원력 보여줘
파리드 자카리아
[서울경제] 미국에 관한 나쁜 소식이 사방에 널려 있다. 지난 몇 주는 분명 미국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미국이 표방해온 약속의 회생 가능성이 감춰져 있다.

필자는 현실을 달콤하게 포장하고 싶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치하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150년 만의 최대 위기를 겪었다. 게다가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던 사람들에게 이번 주는 반박하기 힘든 확실한 증거를 제공했다. 사실 증거는 줄곧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미국 보수주의의 후견인으로 통하는 월스트리트지는 트럼프의 독재 성향에 대한 일부의 우려를 줄기차게 조롱했다. 그의 집권 첫해를 넘기면서 이 신문은 “트럼프가 민주적 규범에 유일무이한 위협이 될 것이고 미국은 독재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진보적 엘리트들은 아마도 크게 실망했을 것”이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은 이어 “트럼프가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미디어에 대한 ‘도를 넘는’ 수사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중견 의원들은 이처럼 맥 빠진 비난조차 하지 않았다. 그중 한 명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하수인으로 재빨리 변신했고 그의 가장 나쁜 충동을 부채질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된 후 보수주의자들은 트럼프가 행정명령권을 확대하지 않았다며 “이는 그에게 독재적인 성향이 전혀 없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독재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일 뿐이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대통령의 행정명령권을 강화했다. 하지만 확대된 행정명령권이 그들을 독재자로 만들지는 않았다. 독재자가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들에게 권력은 집권 연장과 정적 축출을 위해 필요한 도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에 사회적 안전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자신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권력을 축적했다.

지난해 미 대통령 선거 이후 대부분의 공화당 지도자들은 트럼프의 독기 어린 거짓말과 음모론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공화당 내 서열 2위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선거가 끝난 뒤 수 주가 지나도록 조 바이든의 대선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대통령의 숱한 불복 소송에 대해서도 “100% 그의 권리에 속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특정한 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규범(norm)은 법만큼이나 중요하다. 헝가리에서 터키와 인도에 이르기까지 다른 국가들의 민주주의는 완전한 법적 수단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잘 훈련된 헌법 전문가인 조시 하울리와 테드 크루즈 같은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민주주의에 흠집을 내기 위해 법을 사용한 것은 똑똑한 고학력자라고 해서 반드시 명예롭고 품위 있게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최상의 본보기다.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 시도 이후 불과 몇 시간 뒤에 크루즈와 하울리는 여섯 명의 다른 동료 상원의원들 및 139명의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함께 폭도들의 요구를 지지하는 표를 던졌다.

그런데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필자가 감춰진 희소식 운운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연유에서일까. 우선 난동은 최종적으로 실패했다. 질서는 회복됐고 이후 몇 시간 만에 지난 11월 대선 결과는 의회의 최종 인준 과정을 완료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바이든은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사실 이번 주의 혼란은 반란자들 특히 반란의 수괴인 트럼프를 수세로 몰아넣었다. 트럼프는 선거가 끝난 지 2개월 만에 질서 있는 정권 교체를 약속했다. 또한 매코널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충동질’을 중단했다. 아마도 그들은 감세와 연방 판사 임명만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게다가 조지아주의 유권자들은 두 명의 민주당 후보들을 상원의원으로 선출하면서 트럼프주의를 배격하고 바이든에게 통치권을 부여했다.

지난 4년간 필자는 언제쯤 트럼프 열기가 꺾일지 궁금해했다. 그가 자신이 만든 리얼리티 TV 버전의 기괴한 대통령 쇼를 즐기는 코믹한 괴짜가 아니라 인종주의와 혐오를 부추기며 미국의 민주적 특징을 배격하는 자기도취자이자 선동가임을 사람들이 언제쯤 알아볼까 못내 궁금했다. 그렇다고 국민 전체가 각성을 할 필요는 없다. 닉슨이 사임할 당시에도 미국인들의 4분의 1은 여전히 그를 지지했다. 단지 규범을 재설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필자는 1970년대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자라면서 이곳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 197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미국은 사상 처음 군사적 패배를 맛봤고 대통령은 불명예 속에 사임했으며 소련은 라이벌 슈퍼 파워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하려 들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미국에 깊은 매력을 느꼈다. 중요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터져 나오는 혼동과 혼란은 열린 사회의 증거이자 내부의 문제를 스스럼없이 공개하고 정면으로 도전에 맞서는 국가임을 보여주는 신호다. 다시 말해 미국은 폭풍을 견뎌내면서 새로운 복원력과 에너지 및 힘을 발견한 국가다. 필자는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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