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선박 억류 정치화 말라..한국, 美 요구에 굴복"

최종건 차관, 이란 차관 만났지만 입장차만 확인

[서울경제]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이란 외교당국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억류된 한국 선원과 이란의 한국 내 동결자금에 관해 교섭을 벌였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AFP 통신은 10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IRNA 통신을 인용해 이란을 방문한 최 차관이 테헤란에서 세예드 압바스 아락치 외무차관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한국 측은 선박과 선원 억류를 조속히 해제하기 위해 적극 교섭에 나선 반면, 이란 측은 한국 내 은행에 동결된 약 70억 달러(약 7조6,000억원) 자금 문제에 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차관은 선원들의 억류 해제를 강하게 요구하며 이란 측이 주장하는 환경오염 혐의에 관한 구체적 증거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은행 2곳에 동결된 이란의 자금 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력하겠다는 뜻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dpa 통신은 이란 ISNA 통신을 인용해 아락치 차관이 “한국이 이번 사건을 정치화하지 말고 이란 사법부의 사실관계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아락치 차관은 최 차관과의 면담에서 한국 선박은 기름을 유출해 걸프만(페르시아만)을 오염시켰기 때문에 억류된 것이라며 이 사건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기술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락치 차관은 “미국의 제재로 2년 반 동안 우리 계좌가 동결됐고 이 기간에 한국은 스스로 미국의 지시에 흔들렸다”면서 한국은 이란과의 관계에서 독자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의 강경파와 가까운 한 내부자가 “한국은 모욕을 당할 필요가 있었다”며 “우리가 약과 백신 구입이 절박한 때 이란의 자금을 묶어둘 수 없다는 걸 깨달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는 또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아락치 차관이 최 차관에게 “한국의 행동은 미국의 몸값 요구에 굴복한 것일 뿐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라며 “이란과 한국의 양자 관계 증진은 이 문제(자금 동결)가 해결된 뒤에야 의미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란은 한국과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화했지만 결과가 없었다”라며 “한국에서 이란의 자금이 동결된 것은 잔혹한 미국의 대이란 제재 부과라기보다는 한국의 정치적 의지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란 정부에 따르면 최 차관은 아락치 차관에게 “이란이 한국 내 동결 자금에 접근하도록 하는 문제는 한국 정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라며 “한국은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는 점을 확실하게 밝힌다”라고 강조했다.

이란 언론들에 따르면 한국 정부 대표단은 11일 이란중앙은행 총재를 만나 동결자금 해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등 한국의 은행 2곳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원화 계좌에는 약 70억 달러에 달하는 이란 석유 수출대금이 동결돼 예치됐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