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이번엔 과로사..폭풍우 속의 중국 빅테크기업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2021. 1. 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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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300시간 이상 일한 22살 여성 신입사원 퇴근길에 쓰러져..알리바바 반독점 조사 이어 빅테크 기업 노동법 규제도 크게 강화될 듯

연초 중국인들에게 가슴 시린 일이 있었습니다. 전자상거래업체 핀둬둬의 22살 여성 신입사원 장(張) 모씨가 작년 12월29일 새벽 1시반 잔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숨진 사건이죠.

2019년 시안 우전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이 신입사원은 작년 11월 중순 신선채소 배달 시장 개척을 신장 우루무치로 파견됐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도 과로사가 드문 일은 아니지만 꽃다운 나이의 젊은 여성이 한달 300시간이 넘는 근로에 시달리다 연말 새벽 귀가길에 쓰려져 급사한 건 가슴 아픈 일이죠. 학교 내 가요제에서 우승을 할 정도로 노래 실력이 뛰어났고,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도 있었다고 합니다.

상하이에 있는 핀둬둬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 /AP연합

◇“지금은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시대...” 염장 지른 해명 글

이 사건은 핀둬둬의 한 사원이 사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어요. 이 글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지식공유 플랫폼인 즈후(知乎)에 질문이 올라오자 핀둬둬가 공식 아이디로 해명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중국 국민들의 염장을 질렀죠.

“밑바닥 국민들을 봐라, 목숨을 돈으로 바꾸지 않는 이들이 어디 있나. 나는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라고 본다. 지금은 목숨을 걸고 일해야하는 시대이다. 편한 삶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해명글에 중국 국민들이 분노했습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는 ‘목숨을 돈으로 바꾸는 이 시대 직장생활의 표준인가’라는 해시태그 아래에 사건 전말과 핀둬둬의 해명을 다룬 글이 속속 올라왔죠. 1월10일까지 이 글을 읽은 이용자가 4억7000만명에 이르고, 댓글도 2만9000개나 달렸습니다. 핀둬둬는 뒤늦게 “협력업체 직원이 올린 글로 회사의 공식입장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대중들은 믿지 않는 분위기에요.

중국 지식공유 플랫폼 즈후에 판둬둬의 공식 아이디로 올라온 과로사 관련 해명글. "밑바닥 국민들을 봐라, 목숨을 돈으로 바꾸지 않는 이들이 어디 있나"로 시작하는 이 글이 여론의 분노를 불렀다. /웨이보 캡처

◇996. 007, 715...암호화된 근무 코드

이번 사건은 알리바바에 대한 당국의 반독점 조사로 궁지에 몰린 중국의 빅테크 기업에 또다른 악재가 될 전망입니다. 핀둬둬 본사가 있는 상하이의 노동 당국은 곧바로 감찰조사에 들어갔죠.

중국 빅테크기업들의 강도 높은 근무 환경은 수년전부터 논란이 돼왔습니다. 작년 4월에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이 국제 오픈소스 공유 플랫폼인 깃허브에서 ’996.ICU’라는 이름의 인터넷 시위를 벌였죠. ’996′은 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을 6일간 한다는 뜻이고, ICU는 병원 내 집중치료시설을 의미합니다. 17만명 이상의 중국 프로그래머들이 이 운동에 동참했죠.

‘007’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0시에 출근해 0시에 퇴근하는 걸 7일간 반복한다는 겁니다. 퇴근하지 않고 24시간 일한다는 거죠. 음식점 체인 업체인 시베이의 자궈룽 회장은 최근 “시베이 직원들은 ’715′로 일한다”고도 했습니다. 매일 15시간씩 일주일 내내 일한다는 거죠.”

작년 996 반대운동이 벌어졌을 당시 중국 IT업계 거물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마윈은 직원 간담회에서 “지금 중국에서 996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는 BAT(바이두, 알리바바, 텅쉰) 정도 뿐이다. 996은 거대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죠.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의 류창둥 회장은 “징둥은 영원히 996을 강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적당히 시간 보내는 사람은 우리의 형제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IT 업계 거물들의 이런 발언에 996 반대운동은 수그러들었죠. 그런 상황에서 핀둬둬 신입사원이 과로사로 숨지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마윈, 류창둥의 과거 996 찬성 발언이 다시 소환돼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죠.

◇중국 IT업계 성공 공식이 부른 비극

중국 IT업계 근로자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많은 연봉을 받습니다. 대신 일하는 강도가 매우 세죠.

중국 IT시장은 그 규모가 거대하지만, 검열 등 여러 장벽으로 인해 외국 기업 진출이 쉽지 않습니다. 중국 IT기업으로서는 국내 라이벌 경쟁만 잘 버텨내 승리하면 해외 증시에 상장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죠. 그러다 보니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직원들에 대한 근로시간과 실적 압박도 큽니다.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전자상거래 업계의 알리바바와 징둥, IT 제조업 분야의 샤오미 등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기업들은 모두 중국 내에서 근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곳들이죠. 자살 사건도 자주 일어납니다.

핀둬둬는 구글 차이나 출신 황정이 2015년 창업한 공동구매 방식의 전자상거래업체이죠. 2018년 창업 3년만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후발주자이다보니 선발업체들이 신경쓰지 않는 지방 중소도시 등 틈새시장을 공격적으로 공략하죠. 그러다보니 업무 강도나 스트레스가 중국 내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번에 숨진 여성 신입사원이 투입된 분야는 신선채소 배달입니다. 다음 날 새벽 채소 배달을 챙기기 위해 쉬는 날 없이 매일 새벽 1~2시까지 일하다 탈이 났어요.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지병이 있었다 하더라도 과중한 업무에 따른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드러난 세대 차이...20~30대 “성공보다 워라밸이 중요”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그동안 한해 수십%씩 성장하고, 미국이나 홍콩 증시에 상장해 엄청난 부를 챙기는 것으로만 알려져 왔죠. 하지만 그 화려한 실적 뒤에 숨겨진 취약한 근로 환경이 이번 사건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반자본 주장까지 고개를 들 정도로 중국 사회 여론이 좋지 않아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관영 신화통신, CCTV 등은 노동법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을 잇달아 내놨습니다. 인민일보 해외판의 소셜미디어 계정인 샤커다오( 俠客島)는 “노동법이 이빨을 갖춰야 한다”고 썼어요. 중국 노동법은 주 44시간 노동을 규정하고 있지만, 업주가 위반해도 벌금만 내면 될 정도로 처벌이 가볍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일과 삶에 대한 세대간 차이도 엿볼 수 있습니다. 40~50대가 주류인 빅테크 기업 창업자들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걸 당연시하죠. 반면, IT업계의 주력인 20~30대는 성공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작년 연말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올해 빅테크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죠. 이번 과로사 사건으로 근로 환경에 대한 규제와 감시도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성공신화에 취해 있었던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거센 비바람 속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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