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의 물구나무]'검찰개혁 시즌2' 성공하려면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2021. 1.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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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당이 ‘검찰개혁 시즌2’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제도개혁에 집중하겠다니 다행이다. 누구나 동의하는 검찰개혁의 대의는 비대한 검찰권력을 분산시키고 적절히 통제하는 것에 있다. 이때 “세계 최대 권한을 가진 한국 검찰”이라는 점이 개혁의 근거로 제시되곤 한다. 그런데 한국 검찰이 왜 그렇게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지, 그 이유를 좀 더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회 법제실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총 법률 1210개 중 758개의 법률에 형벌 조항이 있다고 한다. 최근 입법 사례들을 보면, 법률이 1509개까지 늘어난 현재에도 이러한 경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검찰이 수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형법’이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등과 같은 전통적인 형법뿐만 아니라, 700여개에 달하는 법률에도 산재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많은 정치적·사회적 사건들이 형사사건화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이미 주요 국가들에서는 1980년대부터 사회의 온갖 대소사가 법제화되는 ‘입법의 홍수’ 경향이 문제된 바 있는데, 한국은 특별히 ‘형사입법의 홍수’가 문제가 아닐까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영화 <더 킹>을 보면 검찰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자료를 뒤져서 특정인을 표적 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검찰이 권한을 남용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벌칙 조항이 700여개의 법률에 있으니 어디에선가 과거의 불법을 찾아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이다. 차라리 이들 법률에 의해 불법 사례들이 빠짐없이 적발되어 처벌되고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에는 방치되고 있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 선택적으로 수사가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불순한 목적으로 특정인을 표적으로 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걸면 걸린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검찰개혁을 통해 검찰의 형식적 권한을 줄이더라도 수사 범위가 이렇게 방대하다면, 수사권을 가진 어떤 기관에서든 수사권을 남용할 여지가 있다. 결국 각종 사회 문제가 형사사건화되는 비율 자체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검찰 권한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이 권한을 남용했다며 검찰개혁의 계기가 된 최근 사례들을 보자. 전 환경부 장관 사건,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원전 사건 등에 적용된 혐의는 대부분 직권남용죄 또는 업무방해죄였다. 해석 가능성이 지나치게 열려 있어 ‘걸면 걸리는’ 대표적인 범죄들이었고, 실제로 정책적 판단이나 일상의 문제들이 형사사건화되는 황금다리 역할을 해왔다. 여러 차례 입법적 개선이 논의되었던 이 조항을 그대로 둔 채, 이 조항을 근거로 수사한 ‘조직’과 특정한 ‘사람’만 문제 삼는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형벌 조항을 남발해 검찰 권한을 확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검찰개혁을 외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검찰의 ‘비대한’ 권력의 근원은
수사의 법적 근거가 산재한 때문
사회 문제의 형사사건화 줄여
권한남용 가능케 한 토양 없애야

국가 조직에서 검찰이 차지하는 위상은 재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사회 문제와 분쟁의 해결에서 형벌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형벌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과 동시에 그 한계와 부작용도 가장 심각한 수단이다. 꼭 필요한 곳에 아껴 써야 비로소 본래의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물론 형벌의 투입이 긴요한 경우도 있다. 그런 면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 과정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 법의 제안 과정에서는 근래 보기 드물게 ‘구조적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이고 사고 ‘예방’을 위해 형벌이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가 진지하게 고려되었다. 형벌과 다른 사회통제 기제들이 협력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방안이 입법 설계에 반영된 것도 특기할 만한 점이었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는 목적으로 한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법을 가다듬는 논의보다는 기업의 과도한 비용 부담 문제가 주로 부각되었고, 결국 애초의 입법 취지가 상당 부분 훼손되거나 왜곡된 채 법이 통과되고 말았다.

최근 국회가 양적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내왔지만, 그에 상응하는 ‘질적’ 성과도 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형사입법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요청된다. 수사기관의 권력 남용을 통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회 분쟁과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형사처벌’의 제 몫을 찾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입법의 과제는 법의 관할 영역을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법이 과도하게 관할하고 있는 영역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에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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