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앞세운 김정은, 얼어붙은 비핵화 프로세스
김 위원장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제8차 노동당 대회 사업총화(결산) 보고를 통해 "북남(남북)관계의 현 실태는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며 "첨단 군사 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남측이) 계속 외면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시점에서 남조선당국에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며 "(남측이)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적대행위를 일체 중지하며 북남선언들을 성실히 이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남북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금강산 개별관광 등과 관련해서는 "비본질적 문제"라고 하며 사실상 제안을 거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서는 "세계 최대 수준의 탄두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고 한 발언들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을 향한 강경 메시지도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미국을 "최대의 주적"이라고 칭하며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힘을 줬다. 또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조미(북미) 관계수립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며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책임적인 핵보유국"임을 언급하며 앞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해 발사할 수 있는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 막바지임을 시사했고, 핵기술 고도화와 전술핵 무기 개발도 과업으로 꼽았다. 김 위원장이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1만5000km 사정권'의 명중률 제고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거침없는 대외 메시지는 그동안의 전망과 차이난다. 한국의 대선이 1년 남은 시점, 미국의 리더십 교체가 이뤄지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김 위원장이 다소 온화한 메시지를 낼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북한의 내부 상황이 외부의 적을 상정한 채 '체제결속'에 전념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을 향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여전하다. 코로나19(COVID-19)로 중국과의 교역도 힘든 가운데, 수해로 인해 식량생산까지 차질이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경제 문제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핵'을 앞세운 김정은 리더십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당대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자력갱생'도 같은 의도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주민불만을 해소하고 체제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당대회"라며 "위기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임을 설명하기 위해 공세적인 대남·대외 메시지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인민들에게 안보적 차원에서 안심을 주고, 경제발전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내부결속용이라고 하지만, '대화 재개'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도 분명하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가 아닌 '핵보유국'을 앞세운 것은 북미대화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향후 무기 개발 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 사실상 '도발'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장관은 "상반기에 모멘텀을 만들어, 하반기에는 남북협력의 결과물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는 목표 역시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막판에 접어든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번 제8차 당대회에서 '대화'에 우호적인 메시지가 나오면, 코로나19(COVID-19) 극복을 위한 보건협력을 필두로 해서, 남북접촉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이 장관이 꾸준히 "코로나19 백신을 북한과 나눌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해온 이유다.
금강산 관광과 관련해서는 이 장관이 "독자개발 보다는 공동개발을 하자"고 북측에 아예 제안을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물물교환 방식으로 금강산 공동개발을 추진하는 것 등이 거론돼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당대회 결산 보고를 통해 "현재 남조선 당국은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 들고 북남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며 "금강산지구를 우리 식의 현대적인 문화관광지로 전변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의 남북협력 제안을 '비본질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공식적으로 거절한 것이다.
남북 간 대화의 조건으로는 한미 연합훈련과 같은 적대행위의 중지 등을 걸었다. 세계 최대수준의 탄두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과 관련한 '해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비핵화'가 아닌 '핵보유국'을 앞세우며 핵무기 고도화의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강경한 대남 메시지가 나온 셈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이 전반적으로 '남측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남북관계가 복원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이는 명분 축적용으로 보여진다"라며 "우리 측이 수용하기 쉽지 않은 조건들을 추가로 제시했다. (북측이)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선 철회 없이 의미있는 남북관계는 없음을 재천명했다"라며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 대북제재의 일부 해제 등 미국의 선제적 조치가 없을 경우 대화 재개도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지속적으로 남북접촉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이 "남조선당국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전 봄날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한 대목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번에 북한은 미국에 대해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했고, 우리에게는 향후 남북관계가 남측 태도에 달렸다고 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전략도발을 하지 않았다"라며 "북한은 대화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제8차 노동당 대회 사업총화(결산) 보고를 통해 "첨단 군사 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남측이) 계속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또 "(남측이)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적대행위를 일체 중지하며 북남선언들을 성실히 이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조치가 없을 경우 남북관계가 2018년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당장 3월 한미 합동군사훈련 문제가 북한이 남북관계의 1차적 준거로 볼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가 미국의 새 행정부와 연합훈련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핵심과제"라고 평가했다.
올 상반기 한미 연합훈련(3~4월)은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FOC(완전운용능력) 검증평가를 상반기에 시행해야 하반기 연합훈련(8월쯤)에 완전임무수행능력(FMC) 검증평가까지 마무리,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전작권 전환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한미 간에 △1단계 기본운용능력(IOC) △2단계 FOC △3단계 FMC 검증평가를 완수해야 한다. 현재 1단계가 진행된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COVID-19)의 영향으로 FOC가 예행연습만 이뤄졌다. 올해 내에 FOC에 이어 FMC까지 진행돼야 전작권 전환 여건이 갖춰지는 것이다.
만약 북한의 요구를 들어줘 상반기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지는 상황을 맞게 된다. 노무현 정부 때 확정됐던 '2012년 전작권 전환 구상'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 뒤집힌 것을 목격해온 문 대통령 입장에서 반길 수 없는 일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2022년) 내 전작권 전환 완수와 관련해 그 누구보다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방부가 미국 측과 협의를 거쳐 북한의 반발을 사지 않을 정도로 연합훈련의 규모를 축소시켜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규모 훈련이 어려운 측면 역시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경우 미국 측이 전작권 전환 검증평가를 진행하기에는 훈련 규모가 작다고 딴지를 걸 수도 있다.
일단 한미는 올 상반기 한미 연합훈련 실시와 관련한 협의를 시작한 상황이다. 국방부는 지난달 '20-2차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평가회의'를 통해 전작권 전환 조건과 관련한 한미 공동평가를 2021년에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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