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는 법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2021. 1. 1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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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퇴임 후 잊혀지고 싶다” 했지만 잊혀지기 더 어려워졌다
정치셈법·암계는 소용 없어… 클린턴 성공 기원한 아버지 부시
전두환 초청한 DJ의 ‘도량’ 배워야 권좌에서 곡절없이 내려올 수 있다

고대 아테네의 개혁자 솔론은 왕이 되기를 권유받자 “왕이 좋은 자리이긴 하나 내려올 방법이 없다”고 거절했다. 일단 왕이 되면 내려오고 싶지 않거나, 내려오기가 두려운 것이다. 대통령도 그렇다. 1948년 이후 70여 년간 곡절 없이 청와대를 떠난 대통령은 없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이삿짐을 싸며 “이제부터 죽은 자의 심정으로 삽시다”라고 말했다 한다. 정상적으로 취임한 대통령도 임기 말이 되면 ‘죽은 자의 심정’이 된다. 지나친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전임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슬프고, 비참하며, 비극적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다 정치 보복의 악순환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고, 이 불행한 역사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어떤 일이 일어났나. 얼마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은 80세 생일을 감옥에서 맞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감된 지 4년이 다 됐다. 전임 정부의 공직자 수백 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평생 쌓은 명예가 무너지고, 금전적 곤란에 시달렸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등 3명은 자살했다.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AP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은 지난 70여 년간 한국 정치에서 심각하고도 현실적인 문제였다. 민주화 이후는 더욱 그러했다. 임기가 끝나면 물러나야 했기 때문이다. 국가적 폐해만 생각하면, 전임 대통령에 대한 처벌 금지를 제한적 형태로나마 헌법에 규정하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다. 미국 정치에는 ‘도량(度量)’이라는 더 멋지고 효과적인 전통이 있다. 재선에 실패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1993년 1월 20일 백악관을 떠나며, 집무실 오벌 룸 책상 위에 승자인 클린턴 대통령에게 편지를 남겼다. “이제 당신의 성공은 우리나라의 성공이오. 당신을 열심히 응원하겠소(Your success now is our country’s success. I am rooting hard for you).” 퇴임 후 부시와 함께 재난 구호에 나선 클린턴은 “저는 그와 함께 배우고 웃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냥 그를 사랑했어요”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통령직은 전임 대통령이 되기 위한 고된 직업이라고 한다. 퇴임한 미국 대통령보다 행복한 사람은 드물다. 대선 불복 여파로, 미국도 지금 그 전통이 깨지고 있다.

아버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이 1993년 1월 20일 백악관을 떠나며, 집무실 오벌 룸 책상 위에 승자인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남긴 편지.“이제 당신의 성공은 우리나라의 성공이오. 당신을 열심히 응원하겠소(Your success now is our country’s success. I am rooting hard for you).” 라며 클린턴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했다./트위터

우리도 본받을 사례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당시 당선인 신분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좋습니다”라고 동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증오심이 전신을 휘감았다고 한다. 하지만 2001년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를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용서의 정치’였다. 전직 대통령들도 자주 청와대에 초청해 함께 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세상을 하직할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병문안을 갔다. 그때 “청와대에 10번 가까이 초대받아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이 현직에 계실 때가 전직 대통령들은 제일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애석하게도 지금 이 훌륭한 전통은 사라졌다.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후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통령이 끝나고 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진심일 것이다. 사실 조국·추미애 장관이 야기한 소란, 공수처법 논란 등 최근 한국 정치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간 모든 소용돌이 밑에는 보이지 않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잊히고 싶다는 소망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제 점점 더 잊히기 어렵게 되었다.

퇴임 후를 고려한 정치적 셈법은 쓸모가 없다. 그런 암계(暗計)가 오히려 스스로를 찌르는 칼날이 된다. 윤석열 사태가 그랬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인사회에서 새해는 ‘통합의 해’이고, ‘마음의 통합’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두 전임 대통령의 사면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반성이 먼저라고 하고, 선별 사면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거의 두 개의 나라다. 어떻게 마음에서부터 하나가 되나. 아버지 부시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배울 수 있다면 최선이다. ‘복수의 정치’를 멈춰야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대한민국이 하나가 된다. 그것이 권좌라는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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