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마"
과거 문파식 무조건적 지지 아냐
朴·MB 사면도 親文 반대가 장애물
대통령도 '퇴임 이후' 생각할 시간
文도 문파도 멈출 때가 됐다
당시 발표된 문 대통령의 워딩은 이렇다. “추 장관 본인의 사의 표명과 거취 결단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 숙고해 수용 여부를 판단하겠다. 마지막까지 맡은 소임을 다해주기 바란다.” 말로는 ‘본인의 사의 표명’이라고 했지만 당시 정황을 종합하면 검찰개혁, 아니 검찰장악을 위해 칼춤을 추게 했던 추미애의 존재가 마침내 국정운영에 부담이 된다고 느낀 여권 핵심부가 경질한 것에 가깝다. 청와대는 밝히지 않아도 될 ‘사의 표명’ 사실을 공개하고, 문 대통령은 ‘마지막’이란 단어를 붙여 쐐기를 박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대통령의 의중에 반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수십만 명의 친문세력이 동의 버튼을 누른 것이다. 청와대 토론방에는 추 장관을 내친 대통령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는 지지자들의 글도 올라왔다. 과거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던 문빠(이하 ‘문파’로 순화)식 무조건적 지지가 아닌 것이다.
비슷한 일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논란에서도 벌어졌다. 사면론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기했지만, 대통령과의 교감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게 정치적 상식이다. 이 대표 측은 ‘독자 행동’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낙연은 대통령과의 교감 없이 박근혜·MB 사면론 같은 메가톤급 폭탄을 던질 정도로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면론은 문파 내부에서 강한 역풍을 불렀고, 결국 ‘당사자의 사과’ 같은 불가능한 조건이 붙거나 선별 사면론이 나올 정도로 옹색해졌다.
사면권자인 대통령으로선 곤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자신의 임기 전후 감방에 간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적어도 ‘박근혜 사면’만이라도 퇴임 전에 털고 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퇴임 이후에도 두 전직 모두 감옥에 있는 한 문 대통령도 편히 발을 뻗고 자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면에 대해선 아직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편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언명(言明)한 대로 ‘진영 바깥’의 비판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진영 내부의 비판에는 굉장히 아파하고 귀를 기울인다’. 결국 친문 진영의 사면 반대가 문 대통령이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된 셈이다.
바로 이런 현상들이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의 또 다른 징표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던 문파들마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는 마’라고 변하는 것. 이는 팬덤 정치를 조장해온 문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문파의 스타 문재인이 도리어 팬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시간이 오고 있다.
소위 대깨문(대××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사람들은 ‘문 대통령과 끝까지 간다’고 외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연예계 스타에겐 임기가 없으나 대통령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 14개월밖에 남지 않은 지금, 문 대통령도 ‘퇴임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적폐청산이니,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의 검찰장악)이니 칼바람을 일으켜 수많은 ‘적’을 양산(量産)하는 게 부담스러운 때가 됐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8일 “새해는 통합의 해”라며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통합”이라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취임식부터 말로는 ‘통합’을 외치고도 역대 최악의 분열로 치달은 대통령이지만, 이번에 말한 ‘마음의 통합’은 다르게 들렸다. 문제는 대통령이 박근혜 사면 같은 임기 말 통합 행보를 보일 경우 문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누구나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을 수 있고, 지지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문파의 관계는 건강한 정치적 지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문 대통령을 절대 선(善)으로 보고, 문재인과 그 주변에 신성불가침 영역의 울타리를 세운 뒤 누군가 그 영역을 침범하면 떼로 몰려가 응징하는 극성 팬덤. 그 위험한 팬덤을 자제시키기는커녕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용해온 대통령이 ‘너무 멀리 나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은 이미 늦은 때일 것이다. 문 대통령도 문파도 멈출 때가 됐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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