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2] 원주 가는 길(原州途中)
원주 가는 길(原州途中)
봄바람에 지팡이 짚고 관동 가는 길
원주로 들어서니 안개 낀 수풀
인적 드문 객사에 마차 또한 드물고
드높은 누각 비 온 뒤 붉은 해당화
십 년 길 누비며 다 닳아버린 신발
드넓은 세상에 텅 빈 주머니 하나
시 짓는 나그네 마음 어지러운데
산새 노래하듯 기생소리 들려오네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최명자 옮김)
김시습이 26세에 이런 시를 썼다. 그도 남자니까 기생 소리에 마음이 흔들렸겠지. 마지막 줄에 ‘기생’으로 번역된 말은 원래 한시에선 ‘어화’(語花·말하는 꽃, 기생을 일컫던 말). 해당화와 대구를 이뤄 심심한 시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아무도 거두지 않는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에 묻고 스무 살의 시습은 길을 떠났다. 스님 행색으로 온 세상이 내 집이라며 떠도는 삶도 젊은 날에는 흥겨워 요런 재미난 시를 남겼다.
신발 타령이 몇 편 더 있는데 다 구질구질. 텅 빈 주머니만 탓하지 말고 생업을 구하거나 이 나라를 떠나지. 한자로 글을 그렇게 잘 지으면서 왜 중국이나 일본에서 살 생각을 하지 않았나? 돌봐야 할 부모도 처자도 없는데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조선에 붙들려 한평생… 이리 쓸쓸한 시를 남겨 내 가슴을 아프게 하나.
성종이 즉위하자 서울로 올라와 수락산에 한동안 머물렀고 사십대에 환속해 결혼도 했지만 부인이 일찍 죽는 등 불운이 이어진다. 생육신 방랑시인.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거대한 과오를 깨달은 그는 이런 시를 썼다. “가난하더라도 한곳에 머물고 싶어” “더 일찍 깨달을 수 없었을까… 내 무덤에 표적 남기려면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써주시구려.” 꿈꾸다 죽지 않으려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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