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장래 고민하는 이들 정치판에 몇 될까..욕심과 이익만 추구"

최보식 선임기자 2021. 1.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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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이승현 한국외국기업협회 명예회장
이승현 회장은 “국회에서 쏟아내는 규제법으로 로펌에만 일감이 몰린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나라 장래를 고민하는 이들이 지금 정치판에 몇 명이나 있겠나. 다들 욕심과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것처럼 보인다.”

기업 하는 사람들은 정치권력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데, 이승현(63)씨는 요즘 시절에 흔치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한국외국기업협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명예회장이다.

“정치인들은 말로는 변화와 혁신을 달고 산다. 하지만 그 행태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뭐가 있나. 어느 정당의 사무국 직원들이 서류를 만드는 걸 보고는 놀란 적 있다. 삼성에서 이미 20년 전에 했던 식이었다. 얼마나 시대 흐름에 뒤처져 있나.”

터널 속 사람들

그는 대만계 외국 기업인 인팩코리아의 한국법인 대표다. 스마트폰, 디지털 TV,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수동소자류와 GPS 안테나를 제조한다. 삼성전자와 LG 등에 공급하고 있고, 특히 GPS 안테나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다.

“사람이 터널 속에서 지내면 터널 내부만 보인다. 그 환경에 적응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작동한다.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마치 터널 안에서 지내는 것 같다. 터널 바깥에 있어야 터널 안과 밖 전체를 볼 수 있다. 외국 기업에 있으면 바깥세상의 시선으로 우리 내부를 보게 된다. 현 정권에서 만들어진 규제들은 글로벌 기준에서 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것들이 많다.”

-규제 하나하나에는 나름대로 이유와 정당성이 있지 않겠나?

“물론 그럴 거다. 하지만 그 규제들이 전부 쌓이면 기업 활동에 엄청난 제약이 된다. 현 정권 출범 뒤로 경제가 역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16년에 비해 무역 규모는 20%나 떨어졌다. 삼성반도체의 분발을 빼면 무엇이 있나. 코로나 핑계를 댈 일만은 아니다. 코로나 전부터 이미 기울어졌다.”

-외국 기업의 대표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이렇게까지 목소리를 내도 되나?

“외국 기업도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 법률, 행정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에서 국내 기업과 똑같이 영향을 받고 있다. 외국 기업이 처한 고충을 해결하면 국내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 연결돼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들어왔다는 시각으로 외국 기업을 보는데?

“그런 면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도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있는데, 이들은 들어와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해주고 있다. 요즘 외국인 투자법인의 CEO는 거의 한국인이고 피고용인의 절대다수도 한국인이다. 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 수출의 21%, 전체 고용의 6%를 담당하고 있다.”

-국내에 1만7000여 외국 기업이 들어와 있다는 통계를 보고 놀랐다.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위축돼 있지만, 기업의 세계에는 벌써 국경이 없어진 것 같다.

“내가 외국기업협회 회장으로 있던 2018년 외국인 직접투자가 269억달러에 이르렀다. 본사로부터 받는 투자액은 연간 수백억 달러였다. 한국 내에서 발생한 이익금의 재투자까지 합쳐 연간 50조~60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진다. 우리 경제에서 이게 빠진다고 가정해보라. 큰 기둥이 무너지는 것이다. 경제 기여 측면을 높이 평가해줘야 한다. 하지만 2019년 2월 말 청와대에서 ‘외국인 투자 기업인과의 대화’라는 행사가 있은 뒤 나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정말 실망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기에?

“외국기업협회장인 내가 ‘문 대통령께서 외국 기업들의 고충도 한번 들어보고 격려해줘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해 이뤄졌다. 1시간 반 진행된 청와대 행사에 외국 기업 대표 50여 명이 참석했다. 대통령과 처음 갖는 공식 자리였다.”

‘외국 기업인과 대화’ 행사(맨 왼쪽이 이승현).

-여러 언론 매체에서 사진과 함께 행사 의미를 부여한 걸로 아는데?

“언론에는 그렇게 보도됐지만 실제로는 내용 없는 ‘보여주기 쇼’였다. 우리가 언제 대통령을 따로 만날 기회가 있겠나. 각 업종마다 애로나 건의 사항을 전달하는 자리여야 했다. 당장 받아들여지든 아니든 말이다. 그러려면 참석자 누가 대통령께 무슨 질문을 할 것인지 사전 의제 조율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절차가 없었다. 행사 이틀 전에 협회장인 나는 달랑 참석자 명단만 통보받았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소통하는 대통령’을 국민에게 보여주려는 행사였을 텐데?

“내가 당초 생각했던 취지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나는 행사만을 위한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전했지만, 결국 자리를 채워야 했다. 내게 회장으로서 인사말을 하겠느냐고 했지만 거절했다. 행사는 몇몇 외국계 법인의 자기 홍보로 진행됐다. 대통령과 기념 촬영할 때도 나는 일부러 가장 한구석에 떨어져 섰다.”

-문재인 정권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다가 그때 처음 실망을 한 건가?

“그전에 ‘이 정권이 왜 이런가’ 의심할 만한 일이 있었다. 외국기업협회는 구직자와 글로벌 기업을 직접 매칭해주는 ‘청년취업아카데미’를 운영해왔다. 그런데 정부가 2018년 이 프로그램 지원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재원을 다른 데로 돌려버린 것이다.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정부 책임자를 면담하려 했으나 만나주질 않았다. 정권 출범 초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고 일자리 정부와 청년 취업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이렇게 하니 사기를 당한 느낌이었다.”

법이 법을 만드는 악순환

-어쨌든 청와대 행사에서 대통령께 못 전달했던 외국계 기업들의 고충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진출한 기업들은 화학 관련 업종이 많다. 시행을 앞둔 ‘화학물질등록평가법’ ‘화학물질관리법’과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현장 혼란이 심했다. 2018년 신고 관리 건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3.5배나 많은 2000여 건이었다. 외국 본사에서는 문제없는 기술이 왜 한국에서만 제재를 받는지 납득이 안 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야 규제가 풀릴수록 좋겠지만, 노동자 생명 및 인권과 환경보호 등을 위해 꼭 해야 할 규제도 있지 않은가?

“외국계 기업 입장에서는 자국보다 강한 규제나 복잡하고 중복된 규제에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입차 업계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주행 테스트가 자주 거론된다. 독일에서 5만㎞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 주행 테스트를 통과했는데도 한국에서 다시 2만㎞ 기준으로 재점검을 받아야 하는 식이다.”

-나라마다 사정과 여건이 다를 수 있지 않겠나?

“글로벌 기준이라는 게 있다. 정치권에서는 규제를 혁파하겠다는 말만 요란할 뿐, 실제로는 법이 법을 만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는데도 중대재해처벌법까지 통과됐다. 소규모 외국 기업 경영자들도 범법자로 몰리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국회에서 쏟아내는 규제법으로 로펌에만 일감이 몰린다. 자주 발생하는 노사분규로 노무사 몸값도 치솟는다.”

-규제가 결국 로펌과 노무사들만 배불리게 한다는 뜻인가?

“법과 규제가 자주 바뀌니 기업으로서는 혼자서 당해낼 재간이 없다. 신기술 개발은커녕 공장을 짓거나 생산 라인 설치할 때도 지자체마다 요청 자료가 달라 시간이 많이 든다. 일일이 외부 기관에 평가를 위탁해야 하니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세상 어디에도 100% 만족할 수 있는 최적의 기업 환경이 있겠나?

“문제는 법과 정책의 일관성이 없고 신뢰성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외국 본사는 절차와 과정을 엄격하게 따진다. 사소한 문제라도 정부 기관에 한번 불려가면 한국법인 경영자는 바로 물러나야 한다. 외국계 기업인들끼리는 ‘골대를 수시로 옮겨버리는 한국 팀과는 경기하기 힘들다’는 말을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

“글로벌 외국 기업은 세계 곳곳에 공장이 있다. 규제가 많아지고 경영 여건이 까다로워지면 다른 나라로 옮겨갈 수 있다. 우리의 경쟁국들은 이런 기회를 틈타 외국 기업에 손을 내민다. 규제 입법 과정에서 공청회라도 열어야 하는데 일부 형식적 사례를 빼면 그런 절차도 없다. 그러면서 과중한 규제법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기업인들을 이상하게 몰아간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단체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고 진짜 할 얘기는 못 한다.”

전남 해남 출신인 그는 ‘거북선 같은 군함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공고(工高)를 택했다. 울산과학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로 배 만드는 현대중공업에 들어갔다. 그 뒤 대우조선·삼성중공업으로 옮겨 선박 설계를 담당했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그는 삼성전자로 발령 났다.

“1992년 말부터 삼성전자 일본 주재원으로 10년간 근무했다. 당시 ‘전자(電子) 종주국’인 일본이 나가는 방향과 현재 상황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조사해 본사로 보내는 게 내 역할이었다. 그러다가 1999년 일본에서 그때까지는 아무도 시도 안 했던 도전을 했다. ‘전자상거래’로 삼성 LCD(액정) 모니터를 팔겠다고 한 것이다. 이게 성공했다.”

발목은 잡지 말아야

그 무렵 세 차례 미팅을 가진 미국 컨설턴트로부터 ‘우리가 집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TV 전원을 켜는 것이다. TV는 피로에 지친 우리를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가장 친한 장난감이어야 한다’는 말에 그는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귀국한 뒤 대형 모니터 기술로 LCD TV를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삼성에서 ’40인치 LCD TV 사업화'를 실제 책임지는 보직을 맡았다.

“지금은 LCD가 대세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의 소니와 도시바, 파나소닉, 샤프가 디지털 TV의 표준을 놓고 사생결단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그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의 초대형 LCD TV 개발로 일본 업체를 제압하고 세계 1등 TV 메이커가 됐다. LCD의 화질 개선을 위해 오랜 시간 수많은 엔지니어가 밤을 새웠다.”

지나친 책임 의식으로 돌진해온 그는 과로로 몇 달간 입원했다고 한다. 2006년 삼성을 나왔다.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은 살아남으려고 치열하게 변화와 혁신을 한다. 그래도 도태되는 기업들을 수없이 봐왔다. 나라를 꾸려나갈 재원은 대부분 기업에서 나온다. 현 정권은 이런 기업들을 마치 적을 대하듯 하는 것 같다. 안 도와줄지언정 발목은 잡지 말아야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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