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배경 비극적 숙명.. 빅토르 위고의 숨결을 느끼다

박성준 2021. 1. 11.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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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1998년 초연.. 프랑스 뮤지컬의 전설
현대적인 기술·장비로 재무장한 작품
극적 내용 전개.. 원어 공연의 매력 뽐내
서커스 방불케 하는 압도적 무용 눈길
주교 프롤로 연기한 라부아 존재감 뚜렷
중세가 저물고 르네상스가 열리던 1482년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높음과 낮음이 교차하는 드라마로 프렌츠 오리지널 내한 공연이 5년 만에 이뤄졌다. 음유시인 그랭구아르가 미치광이들의 축제에서 노래부르는 장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프렌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5년 만의 내한 공연에서 긴 여운을 남기고 돌아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극장 밖에선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무대 위에선 명작의 품격을 고스란히 지켜낸 공연이었다. “삶이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높음과 낮음이 서로 섞여드는 기묘한 드라마”라던 원작자 빅토르 위고의 숨결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1998년 초연된 이 작품은 미국 뮤지컬 1번가 브로드웨이 DNA가 장악한 뮤지컬 세계에서 꼿꼿이 버티고 있는 프랑스의 자존심. ‘클래식 오페라’라는 유럽 전통을 현대적 기술과 장비로 재무장한 록·팝 콘서트로 부흥시킨 작품이다. 또 다른 흥행작 ‘스타마니아’로도 유명한 뤽 플라몽동(극본·가사)은 우리나라 팬들을 위한 제작사 인터뷰에서 “단 한 번도 미국식으로 (각본이 가볍고 노래와 춤으로 대화가 군데군데 끊기는)뮤지컬을 만들지 않았다. 이는 프랑스에서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다. 제가 하는 것은 오페라에 가깝다”며 “대사 전체가 웅장한 선율에 맞춰 노래로 불리고 줄거리는 강력하고 감동과 감정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조기 폐막을 며칠 앞둔 지난해 마지막날 공연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는 극적인 내용 전개에 올려진 아름다운 노래로 프랑스어가 가진 특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냈다.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압도적 무용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세계 23개국에서 공연된 작품이지만 프랑스 본토(누적관객 280만명)를 빼면 유독 이탈리아(306만명)와 우리나라(100만명)에서 큰 사랑을 받았는데 공연을 직접 보면 ‘그럴 만하다’는 데 동의하게 된다. 때로는 서정적인, 때로는 격정적인 노래들이 쉴 새 없이 가슴을 두드린다. 공연이 끝나도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돈다. 대사없이 노래로만 이어가는 ‘성 스루(Sung-Through)’ 뮤지컬로 1막 28곡, 2막 23곡 총 51곡이 불린다. 내공이 모자란 작품에선 그저 곡수를 채우기 위한 노래도 여럿인데 ‘노트르담 드 파리’는 보탬없이 모두 빼어난 노래로 채워진다. 단 한 곡도 허투루 흘려듣기 어렵다. 유명하기로는 음유시인 그랭구와르가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라고 새 시대 도래를 예고하는 ‘대성당의 시대’와 세 남자가 각각 에스메랄다 사랑을 갈망하며 부르는, 발표 당시 프랑스 음악 차트에서 무려 44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는 ‘아름답다’가 대표곡으로 꼽힌다. 하지만 ‘미치광이들의 축제’, ‘기적의 궁전’, ‘괴로워’, ‘숙명’, ‘파멸의 길로 나를’, ‘성당의 종들’, ‘신부가 되어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 등 다른 모든 노래 역시 베스트곡으로 손색없다. 유럽과 남미에서 대중음악가로 활동했다는 작곡가 리카르도 코치안테는 성당 종지기 콰지모도가 쓰디쓴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는 ‘불공평한 이 세상’을 첫손가락으로 꼽았는데 충분히 수긍할 만한 선택이다.

이날 무대에 선 ‘다니엘 라부아’는 거대한 가고일 석상, 100㎏이 넘는다는 성당 종만큼이나 무대 위에서 존재감이 뚜렷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상징이었다. 초연 때부터 에스메랄다를 향한 정념에 빠진 주교 프롤로를 연기해온 명배우. 올해 71세인 그의 내한은 처음이다. 이제는 전설이 된 초연 무렵 공연 실황 영상에서나 그의 연기를 볼 수 있었던 팬들에게는 전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외모에선 지나간 세월을 실감케 했으나 고음에 변음이 이어지는 한없이 어려운 대목도 마치 읊조리듯 쉽게 노래 부르는 모습에선 아득한 관록이 느껴졌다.
1998년 초연때부터 대주교 프롤로를 연기해 온 명배우 다니엘 라부아.
모두가 호연한 이날 무대에서 콰지모도는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 조제 뒤푸르가 맡았다. 2014년부터 콰지모도로 활약하며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안젤로 델 베키오의 대역으로 호불호가 엇갈린다는데 이날 공연만큼은 원조 콰지모도인 가루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와 연기를 보여줬다.

초연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이번 공연은 몇몇 변화도 감지됐다. 초연 영상과 비교하면 무용수들이 벽을 타는 레펠 장면이 없어지고 콰지모도가 수레바퀴에 묶이는 장면은 더욱 실감나게 바뀌었다. 대형 종이 등장하는 장면은 무용수가 종에 올라타면서 보다 역동적으로 바뀌었고, 자극적이었던 카바레와 고문 장면은 보다 순해졌다. 근위대장 페뷔스와 그의 약혼녀가 에스메랄다 화형을 조건으로 재결합하는 장면도 곡 순서가 바뀌면서 한층 밀도가 높아졌다.

어둠의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파리를 배경으로 성당 주교와 종지기, 그리고 집시여인의 비극적 숙명을 그린 이 작품에서 난민, 노숙자는 또 다른 주인공으로 비중 있게 그려진다. “우리들 이방인 부랑자들 갈 곳이 없는 떠돌이들… 세상이 변하고, 바뀌는 그날에 이곳은 우리의 세상”이라고 노래한다. 그저 꼽추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력하다. 뮤지컬로 대성공을 거둔 원작자의 또 다른 작품인 ‘레미제라블’보다 더 노골적으로 지배계층의 위선과 부도덕을 비판한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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