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 점거 시위' 사망한 트럼프 지지자, 그를 죽인건 누구일까

이효상 기자 2021. 1. 1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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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애슐리 배빗(35)은 지난 6일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 있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그가 선거결과를 불복하고 집권 2기를 열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이날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로 5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배빗은 현장에서 나온 첫 사망자였다.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했을 당시, 총격에 사망한 애슐리 배빗의 사진. AP·연합뉴스


10일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순교자’가 된 애슐리 배빗의 이야기를 다뤘다. WP는 “그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공언했던 사명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미국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끔찍한 공격에 가담했다”고 했다.

사고가 있기 전 애슐리 배빗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0년 이상을 공군에서 복무했지만 계급이 엄격한 군대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특유의 직설화법은 이내 상관과의 마찰로 이어졌다. 오랜 군 복무 기간 동안 그는 최소 7번 부대를 재배치를 받았고, 적어도 1번은 강등됐다. 그의 군대 동료들은 징계 문제와 불복종이 배빗의 경력을 망쳤다고 WP에 말했다.

자유경제를 믿는 그는 2016년 군에서 전역한 이후 샌디에이고 외곽에서 수영장 운영·관리 사업을 시작하려했다. 하지만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2019년 7월1일 법원은 그가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의 수영장 사업에 대해 7만1000달러를 압류했다.

그 당시 그에게 위안이 된 것은 정치인 트럼프였다. 법원의 판단이 있기 하루 전, 배빗은 러시모어산에 트럼프 대통령의 석상을 새기기 위해 시민들이 모금을 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러시모어산에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재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국인이 존경하는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한 때는 그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주변인들에게도 오바마에게 투표했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고 WP는 전했다. 하지만 그의 정치 지향은 트럼프의 등장 이후 달라졌다. 그는 미국 대선을 일주일여 앞 둔 2016년 10월 트럼프의 이름 옆에 ‘#사랑’이라고 쓴 트윗을 남겼다. 해당 트윗에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H(힐러리)를 감옥으로’라는 글귀도 담겨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배빗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트럼프에게 “오늘 우리는 독재와 부패로부터 미국을 구해냈다”는 트윗을 보냈다.

애슐리 배빗을 추모하는 공간에 꽃과 양초가 놓여 있다. 애슐리 배빗은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했을 때 총격에 사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에 대한 그의 지지는 갈수록 강렬해졌다. 그는 트럼프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아이들을 납치하고 민주당원을 현대판 노예로 묘사했다는 극우세력의 가짜뉴스를 퍼날랐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며 그의 안에 분노가 자리 잡았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은 화를 부추겼다. 그는 소셜미디어 등에서 코로나19를 “빌어먹을 농담”이라고 부르며,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믿지 않았다. 지난해 7월에는 온라인 상에 “우리는 멍청이가 됐다”며 “양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공유한 음모론 관련 트윗은 8600개를 넘는다. 지난해 초부터는 온라인 음모론 집단인 ‘큐어넌(QAnon)’ 해시태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큐어넌 추종자들은 소아성애자들이 미국을 지배하고, 이들이 언론과 할리우드, 정치인들을 통제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오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만이 이 세력에 맞서 미국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본다. 배빗 역시 트럼프가 소아성애자들과 사탄을 숭배하는 민주당원들을 정복할 운명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한 지난 6일이 큐어넌이 말하는 ‘폭풍(storm)’이라고 믿었다. 폭풍은 트럼프가 그의 적들을 제거하는 때를 말한다.

배빗은 6일 페이스북에 남긴 마지막 영상에서 “우리는 현재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로 향하는 첫 번째 길을 걷고 있습니다. 300만명 이상이에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시위대의 규모는 수천명 남짓이었다. 그는 의사당 문의 깨진 창문 틈으로 진입하려다 총에 맞아 사망했다. WP는 그가 워싱턴DC 공군부대에서 근무하면서 폭동 통제 훈련을 받았기에, 법 위반시 공권력이 살상력도 사용할 수 있음을 알았을 것이라고 보았다. 심지어 6일 현장에는 그가 과거에 속했던 부대가 연방의회 의사당을 보호하기 위해 출동해 있었다.

그는 온라인 상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말할 때 “나라가 전에 없이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WP와의 인터뷰에서 배빗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낙천가였다고 말했다. 그는 종종 “나는 건강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며 “다른 문제들은 작은 것들 뿐”이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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