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교유서가 첫 단추 시리즈2  '역사' 

2021. 1. 10. 23: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시간 장소 의미의 결합이다. 인류의 안전한 미래를 위한 역사를 배우자.
[함이오 프레시안 대전세종충청본부장]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말한다. 역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는 자신의(어떤) 견해를 단하나의 진실한 역사(History)가 되지 않게 만들었다. 증거를 제시하고 상상력을 동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에 관한 저술 방법은 역사 연구방법 안내, 역사 이론의 철학적 탐구, 견해와 지지나 논쟁을 위한 저술이 있다. 모든 역사 서술은 완전히 맞을 수 없기에 빈틈 문제, 모순,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 역사 서술에서 틀린 부분이 생기는 이유다.

역사가들은 틀리면서도 언제나 '맞으려' 시도한다는 것이다. 증거가 실제를 말한다고 고수하고 입수 가능한 자료를 모두 찾아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 애쓴다. 사실을 지어내지 않으며 이는 픽션에 비해 상당히 건조하고 상상력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역사의 증거를 제시하고 설명할 때 상상력을 동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진실 다른 시점에서는 공상이 들뜨게 하는 면도 있다. 존재하는 증거가 언제나 꾸밈없고 진실하다면 역사가들이 할 일도 없고 논쟁의 기회도 없다. 역사가는 무엇보다 논쟁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논쟁이다. 과거의 대혼란에서 패턴과 의미와 이야기를 발견하거나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것은 물음 때문이다. 기회인지 위험인지 탐구하는 시선으로 누구를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사유하는 일이다, 과거를 이해하는 편이 유익하기에.

역사의 그리스어에서의 본래 의미는 '조사하다'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역사서인가 소설책인가?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의 원인이 꿈, 신화들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사실로 기록한 이유는 역사를 이용해 새롭게 성취 하려는 절박한 목적(기독교 초기 정당성 확보 노력)이 있었다. 에우세비우스가 교회사를 쓴 이유는 이교도보다 기독교가 오래 되었다고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논박하려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은 교회의 역사적 고투와 선과 악의 영원한 투쟁을 결합했고 제자 오르시우스는 '이교도 대항사'에 이르러 원본 문헌을 인용하고 성서의 정확성을 역설하는 거대한 선형적 사고에 교회의 역사를 연결 권위 있는 역사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키케로, 살루스티우스 등 로마인들이 창안한 설득력 있는 저술과 서술에 관한 수사학 방법을 기독교인들이 발전시켜 역사 서술에 써 기독교 역사를 오랜 유산처럼 남기게 된다.

키케로 등이 정리한 수사학은 글을 쓸데는 규칙과 규약이 있고 역사를 쓸데는 특별한 규칙과 규약을 지켜야 한다, 수사학자는 설령 다른 이들이 불쾌하더라도 진실을 불편부당하게 말해야 하고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지리적으로 배열하여 성격과 우연을 포함하여 행위의 원인을 주목하며 어떤 위대한 행위가 행해 졌는지 말하되 쉽고 물 흐르는듯한 문체로 차분히 써야한다 이 규칙들을 지키며 쓴 역사가는 설득력을 갖추고 포 호평을 받는다고 기록했다.
수사학 규칙을 이용해 사실을 가볍게 다루고 속임수나 농간으로 까지 나아간 의도적인 역사서는 역사에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그런 역사책 마저도 1천 년 전에는 그나마 수사학을 빼고는 사실을 일부라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본보기(위안)로 삼아야 한다.

회의론적 역사가들

이에 중세 반동으로 회의론적 역사가들이 등장한다, 맘즈베리 수도원의 사서 출신 윌리엄은 역사 기술의 덕목을 말한다. “허황된 상상으로 독자오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의심스런 사안을 모두 내버려두고 실질적인 진실들의 관계로만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인 서술에 기존의 오염된 사료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13세기부터 구태한 기독교적 역사 허구와 편향, 권위(그들은 고귀한 진실이라 여기는)의 서술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서술 방법을 비롯해 영역이 넓어지고 문체도 다양해진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다시 한 번 고대 그리스 로마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빌라니의 피렌체 연대기, 이탈리아 연대기 등 키케로의 수사학으로 돌아가 고대와 자기네를 연결하는 역사물이 늘어난다. 르네상스를 말한다.
허구와 권위를 위한 편향보다 자연사 인간사 보편적인 사실들을 과학적으로 추구하는 진실을 이야기하자는 접근의 시도다.

신화와 꿈이 아니라 그림, 음악, 물건, 시문학, 위대한 인물, 교회, 통치기구, 정치의 유래, ‘그것은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통해 과거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철학적 신학적 옹호가인 장 보뎅으로부터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진 랑케에 이르러 역사의 근본 의미가 바뀌는 계기다.

이런 패턴들은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 확립한 것들이었다. 헤로도토스나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19세기 후반 랑케는 말했다. “실제로 그것이 어떠했는지만 말하라”
역사의 진실 옹호는 종교적 분쟁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에 대한 추구다. 16~17세기에도 사실적 진실과 종교적 진리는 묶여 있었다. 과거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신의 진리가 관건이었던 시대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권위가 충돌하는, 카톨릭은 쌓여있는 사료를 통해 한층 더 강화하려 했고 개신교는 카톨릭의 타락한 역사를 증명하려 했다, 루터 이전에 개신교는 존재했다는 식이였다. 카톨릭은 17세기 중엽 교회학자 집단인 모르회와 볼랑회를 통해 교회사와 순교사 ‘성인열전’을 편찬한다. 요지는 개신교에 맞서기 위해 증거를 산더미처럼 모으는 것이었다. 이들은 장대하고 교육적인 이야기라는 키케로식 모형에 영향을 받아 폭 넓고 재미있게 역사를 기술하려 한다.

반대로 실제로 그것이 어떠했는지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을 좀과 녹의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란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골동품 연구자’라 부르게 된다.
골동품 연구자들은 물건, 문헌, 자료를 통해 거짓을 증명한다,
1439년 로렌초 빌라(언어학 문헌학자)는 그리스도 이후 1400년간 가장 유명한 교회의 무기고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이 위조 문서 임을 입증한다.
라틴어로 쓰인 기증장에 쓰였다고 하는 4세기의 라틴어와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문서 자체의 특징에 근거해 문서를 비판 할 수 있고, 언어(문화)가 역사적 시대의 따라 바뀌며 통치 엘리트나 사람들이 말하고 생활하는 방식도 변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사건(타키두데스의 정치사의 탑) 말고도 다른 것도 역사에 포함된다는 생각으로 확장된다. 언어학자, 지리학자, 화폐 연구가 등 골동품 연구가들이 인기를 얻는다. 피론학파 회의주의가 가져온 성과다.

회의주의 역사가들은 기독교가 지어낸 ‘역사에서 지어낸 이야기 일소하기’를 위한 연구를 법학과 결합한다. 르네상스까지 역사는 ‘지어낸(작문) 무언가’였다면 르네상스 시대 이후는 ‘갈수록 탐구하는 무언가’가 되었다. 진실과 허구, 진실과 창작, 진실과 종교, 진실과 민족 등 역사학자들은 진실과 이야기라는 두 극단에서 복잡하게 뒤엉킨 가닥에 흔들리며 자리를 잡아온 철학의 문제였다.

반대파도 여전히 있었다, 극작가 볼테르는 “세부에 화 미칠진저! 후손들은 세부를 깡그리 무시할 것이다. 세부는 대작을 갉아먹는 일종의 해충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19세기 계몽주의 이성, 자연, 인간과 역사를 연결 지으려는 사조는 계속된다.

이어 자연과학 분야에서 투키디데스 탑에서 두 번째 탈출이 이뤄진다. 정치와 철학에 기울어진 역사 연구 방법은 축적된 사실과 문헌 정치적 사건으로만 불충분했다. 지리 기후 경제 사회 구성 등 사람들의 특징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자연세계에서 현상들 간의 믿기 어려운 연관성을 새로운 방법으로 찾아내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식물학 지질학은 구약성서보다 과거를 훨씬 길게(과거 확장) 만들었고, 신의 섭리에 따른 인류의 행로는 우연과 위인으로, 계획됨은 의도되지 않음으로, 추상적·초자연적 현상은 이성에 대한 믿음으로, 더 나아가 인간 본성·보편·역사는 자연과학 논리로 점차 다가선다.

자연과학으로 바라보다.

토마스 칼라일은 말했다, 법률 자체와 정치 조직은 우리 삶이 아니라 우리 삶을 영위하는 집의 벽체에 불과하다, 집에 꼭 필요한 모든 가구나 우리의 존재를 규제하고 지탱하는 발명품과 전통은 오래전에 잊혀진 모든 예술가들과 장인들의 산물이다.
고대 철학적 역사관에서 르네상스 시기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서고의 사료를 상세히 연구해야 한다(오염된 사료를 찾아낼 정도로) 그리고 지리적 위치, 사회체계, 경제적 세력, 기술발전, 문화적 관념, 개개인의 의지 같은 복잡한 관계를 포함하는 인과관계에 대한 이론을 발전 시켜야 한다로 경제학과 사회학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종교가 신을 빌어 정치사만 기록하던 초기 역사 서술 방식에서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만 말하라”는 프랑스 랑케 이후 국가, 민족, 전쟁의 사료 연구로 발전하고 특정 주제로 더 나아가 오늘날 사회사, 문화사, 여성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갈랫길을 만든다.
역사 서술 방식은 이렇게 전문화 과정을 거치며 특수한 문화와 제도에 대한 필요성은 증가하고 당파성은 강해진다.

오늘날은 모든 분야별 전문가는 독서공중 보다는 수백명의 학구적 소수만 구독하는 글을 쓰고 대중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흥미롭고 관심을 가지는 중요한 일은 전문직 조직이라는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전문직은 마치 초연하고 개관적인 척 한다.
“전문직은 공평하다는 뜻이 아니라 보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특정 영역만의 위원회들, 학술지, 기득권의 그물 안에서 일한다, 결국 특정한 것이란 그런 것이다, 오늘날 방대한 영역에 걸친 전문가는 없다. 분할은 불가피하고 생산적일 수는 있지만 하나의(전체의) 진실한 이야기일 수 없다.

자나 깨나 심혈을 기울여 경제를 외치는 한국의 보수가 자기가 외치는 현대 '경제'의 정의가 마르크스의 개념 '정치경제학'을 전제한다는 것을 이해는 하고 말하는 것일까? 꼭 집어서 그들이 하는 얘기를 옹호하자면 자유자본(케피탈리즘)을 주장해야 옳을 것이다, 좌파니 우파니 문제를 떠나서 경제는 분배의 문제를 우선으로 고민하는 마르크스로부터 나온 개념이다, 원초적으로 자유시장은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주장하는 케피탈리즘, 자유자본시장을 경제라고 쓰고 있다(아마 속으론 이 말을 직접적으로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400년 전 중세 유럽의 주식회사처럼 한국 사회의 자본이 마음껏 움직이기를 꿈꾸는 것일까?).
미국으로 건너간 정치경제학이 내용은 그대로인 채 용어만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 경제라는 말이 마치 아담스미스, 리카르도 등 새로운 주장인 것처럼 재포장 되며 자본주의가 경제의 대표자인 것처럼 겉옷을 바꿔 입힌 것이다.
‘운 없는 마르크스다. 개인을 과소평가한 탓으로 받는 형벌’이 되었지만, 누가 경제를 말하든 경제를 주장할 때 배분의 문제가 핵심이라는 당위는 늘 기억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 어떤(다른)것을 사고하는 추세로

시간, 의미, 위치 등 세가지 필수 조건의 정보가 가치를 결정한다. 과학적 사건, 역사, 철학, 사건, 사고, 종교, 개인사일지라도 말이다. 환경, 역사, 사람들의 관계다.

시간 Time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근거로서 원인과 기원의 추적.

장소(곳), 공간 Place, Space
위치는 시간과 더불어 일어난 일의 상당한 이유와 원인, 기원, 우연 등 관계를 파악하는 근거

의미(뜻), Point
일과 사건의 원인과 기원, 배경을 아는 중요한 단서다. 개인 또는 집단의 누군가로부터, 무엇으로부터.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의도와 의미 없는 등 원인을 찾아가는 절대적인 열쇄다.

위 세가지를 요점으로 파악하는 사고체계가 모두에게 이롭고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다. 세가지 전제 조건은 반드시 서로 얽히어 상호작용을 하며 사건, 활동, 결과의 해석에 서로 작용하고 생각의 요점을 부여하는데 상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들이다. 여기서 누가(WHO)의 문제를 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지가 의문일 것이다, 누가는 인류 기록과 사건의 제일 명제로 다루는 사고방식은 사건 자체보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수많은 본질을 흐르게 했다는 점을 상기하자.

생각과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문제는 인류 모두의 문제이지 누군 못하고 위대한 누군 잘하고의 문제가 아니다(결과의 책임은 반드시 누군가가 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좋음이던 나쁨이든). 지금까지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오로지’나 ‘전적’으로 그 사람 때문이었을까? 지금은 안다, 위대한 사람이 인류를 구할 수 없고 위인이 사회를 재구성 할 수 없으며, 철인이 문제를 해결한 바도 없다.

영웅 한사람은 그 영웅을 필요한 정치적 누군가(어떤)의 필요 때문이기에 누구의 문제는 모든 우리이기 때문에 누구는 앞으로 다방면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역사는 위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진다.' 그리고 지금 사람이 육체적으로 하는 일들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줄어들고 있는지를 보라!

지금은 경제사상에 관해서건, 정치사상에 관해서든, 사회구조에 관한 사상, 문화 사상들이 어떻게 단일한 분석으로 함께 쓰이게 되었을까? 모든 분야의 학자들 역사가, 경제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과학자등 어떤 딱지가 붙었을지언정 분석하는 활동에 관여한다, 접근법에 따라 강조하는 바가 다를 뿐 공통점이 많다. 시간(사건의 사실, 행위). 의미(의도, 원인, 기원). 공간(배경과 객관)을 분석한다. 과거의 경쟁적 요소 만를 부각하는 사고 방법을 멀리 하면서.

진실의 해석과 역사가 중요한 이유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의 쓸모는 무엇이고 우리가 구태여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적 지식은 주관적 지식인가 객관적 지식인가?

요구하고 지지하고 귀 기울이는 대중에게 말하는 것과 반대하고 소극적이고 적대적인 군중에게 어떤 서술이나 말이 진실하게 다가갈까? 여성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전혀 다른 대중을 보고 작성한 원고가 다를 수 있지만 두 서술은 여성인권이란 진실을 주장할 것이다,
1.사실과 진실도 의미와 해석의 판단에 따라 맥락의 외부에서 말할 수 없으므로 사실과 의미가 옹호 될 수 없다로 반박 되거나
2.진실로 통하는 것(진실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 일반적으로 수용 되는 것 사이에서 진실은 합의 과정이다.로 나뉘게 된다. 느낌과 의미를 두고 어떤게 진실한지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획일적인 진실은 다른 진실을 가릴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인간이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자랑하는 경향이 모든 단하나의 진실에 우리를 가두지는 않는다. history가 자신의 견해를 단하나의 진실한 History가 되지 않기에 충분한 의문 말이다.

진실을 가장한 딱지 붙이기도 유일한 하나도 거짓과 위조에도 정할 수 없고 선이 제시되지도 않는 '더 넓은 진실'이라는 권리 안에 있는 한. 사기꾼과 이데올로기 거짓말쟁이들에게 압도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증거를 부인하는 삐뚤어진 길로 나아가진 않을 것이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홀로코스트를 누가 저질렀느냐 물으면 아돌프 히틀러가 저질렀다고 답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배의 문제를 지적하면 히로이토나 이토라고 답하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를 얘기하면 누구누구라고 하는게 아니다, 이들에게 협조한 적극적 소극적 가담자들의 잔혹성을 놓치게 된다.

역사를 배우고 탐구하는 것은 더 깊이 이해하고 교훈과 성찰은 지적한 위인을 대하는 태도와 같아야 한다. 특정한이 아닌 모두 우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의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얼마나 다르게 행동했는지를 통해 생각할 기회를 얻고 우리가 개개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알아가며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을 의식하게 하는 일이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이렇게 넓은 의미의 진실조차도 불편한가?

우리는 지금까지 대부분 역사를 전쟁 민족 종교 정치 영토나 인물중심(영웅)의 줄기로 이해하고 교육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와 공동체, 사회순환 고리, 다양한 문명과 지식의 발전으로 보는 견해 중 무엇이 미래에 이롭겠는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한다. 지금도 불완전하지만 과거 어느 문명도 노예, 여성, 어린이, 인종, 약탈, 파괴, 전쟁, 종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며 지금처럼 기술과 과학, 자연, 인간사회를 이해하진 못했다, 이제는 문명과 암흑의 롤러코스터보다 인류의 안전한 미래를 위한 역사를 배워야 한다.

[함이오 프레시안 대전세종충청본부장]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