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 '3년 전 봄날' 돌아갈 수도" 발언 배경은
한·미에 '압박 외교'..3월 연합훈련 여부가 정세 가늠자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노동당 8차 대회(이하 ‘대회’)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로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유엔 등의 제재 해제·완화를 기대하지 않고, 한동안은 제재를 상수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남쪽은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북남합의 이행을 위해 움직이는 만큼”만, 미국은 “강 대 강, 선 대 선 원칙”에 따라 상대하겠다고 밝혔다.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의 ‘문’은 닫지 않고 열어뒀는데, 먼저 손을 내밀지도 않겠다는 태도다.
김정은 위원장은 또 “국가방위력 지속 강화”의 뜻을 밝히며 “강력한 국가방위력”을 “외교 성과를 담보하는 위력한 수단”이라 규정했다.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선언과 함께 한·미 양국에 ‘압박외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일방적으로 ‘폭주’할 생각이 없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이 대회에서 한 ‘노동당 7기 중앙위 사업총화보고’(이하 ‘보고’)는 큰 틀에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뒤 노동당 중앙위 7기5차 전원회의(2019년 12월28~31일)에서 채택한 “자력갱생 정면돌파전” 노선을 재확인한 것으로 예상 밖의 새로운 내용은 없다. 끝을 예견하기 어려운 코로나19 상황과 국제정세의 유동성 등을 염두에 두고 일방적·확정적 노선을 피하고 선택과 해석의 여지가 상당한 잠정적·과도적 노선을 밝혔다고 풀이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5~7일 사흘에 걸쳐 9시간 동안 진행한 대회 보고에서 “파국에 처한 현 북남관계를 수습하고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북남관계에 대한 원칙적 입장’으로 △근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 △적대행위 중지 △북남선언들의 성실 이행 등 3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은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신문은 전했다. “3년 전 봄날”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인 2018년 4월 ‘판문점 회담’의 비유적 표현으로, “단계적 군축” 등을 약속한 ‘4·27 판문점선언’ 이행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김 위원장의 호소가 담긴 듯하다. 문 대통령의 호응에 따라선 새 정상회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듯하다.
김 위원장은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 발전의 기본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 특유의 공격적 어투를 걷어내면, 대외정책의 초점을 북-미 관계 개선과 정상화에 맞추겠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강 대 강, 선 대 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며 “새로운 조-미 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고 대미 정책의 원칙과 기준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언급하지 않은 채 새 미국 행정부를 맞는 첫 공개 언급을 내놨다.
김 위원장의 대남·대미 정책의 기조에 비춰보면, 올해 3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연습의 강행 또는 중단 여부가 한반도 정세의 결정적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북쪽이 첫손에 꼽는 대표적 ‘적대 정책·행위’가 한-미 군사훈련이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남북 합의를 이행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하다”는 내용의 ‘북한 제8차 당대회 관련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내놨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10일 “한·미가 군사훈련 중단 방침을 밝힌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지금보다 유연하게 움직일 공간을 여는 내부 설득의 명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한-미 훈련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 개선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 과정의 재작동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짚었다. 다른 전직 고위관계자는 “남북관계 개선 노력만으론 정세를 돌파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 긴밀히 논의해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협상 마당을 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2018년 이후 남-북-미 3각 (정상)외교가 벽에 부닥친 만큼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으로 전략적 돌파구를 여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고 짚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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