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이닝은 선수로, 나머지 평생은 '전설'로 뛴..다저스의 '푸른 심장'이 멈추다
[경향신문]
1988년 감독으로 ‘정상’ 이끌고
지난 시즌 다저스 우승 지켜본 후
94세로 ‘열정의 야구인생’ 마감
박찬호와 사제 넘어 ‘부자’ 인연
토미 라소다는 192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노리스타운에서 5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자서전 <위대한 야구(Artful dodgers)>에서 라소다는 “우리 집에는 항상 가난이 풍족했다”며 “결코 끼니를 굶은 적은 없다. 다만, 먼 훗날로 미뤄놨을 뿐이다”라고 적었다. 라소다는 구두를 닦았고, 채소를 팔고, 철로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군복공장에서 다리미질을 했고, 굴뚝 청소를 했고, 제일 자신 있던 ‘싸움’과 ‘야구’를 했다.
1945년 필라델피아와 계약했다. 드래프트가 없던 시절, 계약금 없이 월 100달러의 조건이었다. 라소다는 “2차 세계대전으로 선수들이 징집되는 바람에 내가 프로무대에 들어설 틈바구니가 생겼다”고 했다. 1948년 현금 4000달러에 다저스로 트레이드됐다. 다저스와 ‘평생가약’을 맺은 순간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 라소다는 야구보다 싸움의 달인이었다. 넘치는 에너지로 상대팀과 시비 붙기 일쑤였다.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것은 1954년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경기 등판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앨스턴 감독을 찾아가 따졌다. “제가 응원단장이나 하려고 여기에 온 줄 아십니까. 저를 왜 불러 올렸습니까.” 앨스턴 감독은 “네가 벤치에서 소리를 깩깩 지르는 게 우리한테 꼭 필요해. 그러면 우리 팀 분위기가 살아나거든”이라고 답했다. 라소다가 다저스에서 뛴 이닝은 모두 합해 13이닝이지만 1955년 이후 다저스가 명문팀이 되는 데 라소다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라소다는 1960년부터 다저스의 스카우트로 일했고 1966년 루키 리그 감독을 시작으로 감독의 인생에 들어섰다. 1973년 다저스의 3루 코치가 된 뒤 1976시즌 막판 앨스턴 감독의 은퇴와 함께 다저스의 감독이 됐다. 라소다는 다저스 감독으로 통산 1599승(1439패)을 올렸다. 1996년 심장마비를 겪으며 은퇴한 라소다는 ‘한번도 잘리지 않은’ 몇 안 되는 감독으로 남았다.
1988년 월드시리즈 우승은 라소다를 다저스의 아이콘으로 만든 결정적 장면이었다. 1차전 막판 장염과 다리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커크 깁슨이 대타로 나와 극적인 역전 끝내기 홈런을 때렸다. 중계 화면은 오른 주먹을 흔들며 절뚝거리는 깁슨과 함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라운드로 뛰어 나오는 라소다 감독을 비췄다. 언제나 열정이 넘치는 ‘야구 전도사’였다. 라소다 감독이 말한 “내 몸에는 다저스의 파란 피가 흐른다”는 야구의 오랜 명언 중 하나로 남았다.
라소다의 솔직한 열정이 그의 인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2017년 휴스턴과의 월드시리즈 6차전이 끝난 뒤 라소다가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라소다를 보고 끌어안으려 하자, 라소다가 오른손으로 로버츠 감독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이런 X같은 세리머니는, 내일 경기 이기고 나서 해.” 그때 못한 ‘X같은 세리머니’가 지난해 가을, 드디어 이뤄졌다. 93세의 라소다는 텍사스의 홈구장 글로브 라이프 필드를 찾았고, 우승 확정 뒤 로버츠 감독과 뜨겁게 포옹했다. 라소다는 얼마 뒤 LA 인근의 병원에 입원했다. 상태가 호전됐다는 소식이 이따금 들렸지만, 다시 일어나지는 못했다. 퇴원 뒤 집에서 쉬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얼마 뒤인 7일 오후(현지시간)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다. 향년 94세.
1994년 다저스에 입단해 라소다와 부자(父子)처럼 지낸 박찬호는 인스타그램에서 “마음이 무겁고 슬픔이 깊어지는 건, 그가 내게 준 사랑과 추억이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며 애도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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