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처럼 지분율 감소 없이 성장" "재벌 경영권 승계 도구로 악용"
복수의결권 도입 둘러싼 논쟁
[경향신문]
국무회의 통과한 ‘복수의결권’
정부·재계는 “벤처 창업 활성화”
시민단체, 투자 유치 효과 회의적
발행 주체 ‘창업주 한정’ 여부 쟁점
“복수의결권이 도입되면 혁신적인 벤처기업이 대규모 투자 유치를 통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중소벤처기업부)
“복수의결권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정부는 몇 개의 안전장치를 통해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하겠지만 그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경제개혁연대)
지난달 22일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정해 최대 10년 동안 1주당 의결권을 10개까지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기대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앞으로 국회 논의를 거쳐 최종안이 확정될 예정인데, 정부와 재계는 복수의결권 허용으로 안정적으로 경영에 전념할 수 있게 된 만큼 벤처 창업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투자 유치 효과는 적고 오히려 재벌의 경영권 승계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다양한 형태의 차등의결권
지금까지 의결권은 ‘1주당 1개’를 원칙으로 주주는 보유주식 수에 비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면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의결권도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유형은 1주당 2개 이상 의결권을 부여하는 복수의결권이다. 1주당 1개 미만 의결권을 부여하는 부분의결권과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의결권이 달라지는 ‘테뉴어보팅(tenure voting)’도 있다. 주식 수에 관계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모두 의결권에 차등을 두는 형태이다.
반면 의결권은 없고 이익 배당이 목적인 ‘무의결권 주식’도 있다. 국내에서도 2012년 상법을 개정해 발행주식 총수의 25% 내에서 무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1980년대 들어 미국에서 적대적 M&A가 빈번해지면서 대안으로 떠올랐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식 발행을 통해 외부자금을 조달하지만 창업주의 지분율이 줄어드는 위험이 있다. 이때 차등의결권을 활용하면 창업자는 지분율 감소 없이 자금을 끌어올 수 있게 된다. 차등의결권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구글이 자주 언급된다.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은 2004년 상장할 때 무의결권주와 1주당 1개 의결권을 갖는 보통주, 경영자에게 1주당 10개 의결권을 부여하는 복수의결권을 각각 발행했다. 실제 1980년부터 2019년까지 8.6%에 그쳤던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 비중은 최근 5년(2015~2019년)만 놓고 보면 20.4%로 비중이 2배 이상 늘었다.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이 많아지면서 이를 인정하는 거래소도 증가하고 있다. 2014년 알리바바, 징둥 등 중국의 대표적 IT기업이 연이어 미국 상장행을 택하자 위기를 느낀 홍콩거래소와 싱가포르거래소는 2018년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상장규정을 채택했다. 지금까지 차등의결권 기업 상장에 거리를 두던 런던증권거래소도 개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복수의결권 발행 범위·존속기간 우려
그러나 복수의결권 허용이 벤처투자 활성화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국내에서도 무의결권 주식이 도입됐지만 발행 실적은 전무하다”며 “의결권이 배제된 주식을 매입하며 자본을 제공할 투자자가 없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복수의결권 발행 주체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안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라고 규정했지만 이미 발의된 두 건의 의원안에서는 ‘비상장 벤처기업’으로 규정해 법안 논의 과정에서 조정이 예상된다. 박재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창업주에 한정하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권한의 과도한 집중으로 도덕적 해이나 경영 판단의 실수 발생 시 경영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가 창업된 지 1년 뒤에 투자자로 합류한 경우였다. 경영권 분쟁에서 만약 창업주가 복수의결권을 행사했다면 투자자였던 머스크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일도 어려웠을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홍콩·싱가포르·상하이증권거래소도 기업공개(IPO) 시점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면 복수의결권 보유를 허용하고 있다. 홍콩과 상하이거래소는 창업주가 아니더라도 10% 이상 주식을 가진 경우 복수의결권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복수의결권 도입에 반대하는 측은 기한을 한정해 도입하더라도 일몰 시점이 지나면 법 개정을 통해 유예하거나 존속기간을 연장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상장 후 만료 시점에 창업자 의결권이 갑작스레 줄어들고 외국인 주주 비중이 늘어나게 된다면 복수의결권 연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복수의결권 허용이 자칫 대기업집단의 경영권 방어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복수의결권 허용은 지배권을 영속화하려는 재벌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며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은 벤처기업이 아닌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에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보태주는 꼴이 된다”고 강조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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