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이끌고 신년 첫 무대 서는 지휘자 성시연 "시대의 묘비를 세우는 심정으로 연주하겠다"

” 문학수 선임기자 2021. 1. 10.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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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시향 부지휘자를 지낸 성시연이 모처럼 서울시향을 지휘한다. 코로나19로 떠난 이들을 애도하고 우리를 위로하는 연주회다. 서울시향 제공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을 떠난 이들이 10일 현재 세계적으로 19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지휘자 성시연이 이 안타까운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 이달 21일과 22일 성시연이 서울시향을 지휘해 롯데콘서트홀에서 선보이는 음악들은 그야말로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위한 레퀴엠’이라고 할 만하다.

하이든의 교향곡 44번 ‘슬픔’, 루토스와프스키의 ‘장송 음악’, 쇼스타코비치가 ‘파시즘과 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현악4중주 8번을 실내 교향곡 버전으로 연주한다. 최근 전화로 만난 그는 “190만명이 넘는 희생자들을 생각하면서, 시대의 묘비를 세우는 심정으로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음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이든의 교향곡 44번 3악장은 ‘Trauer’(‘슬픔’ 또는 ‘애도’)라는 부제가 붙은 느린 악장이죠. 하이든이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제를 생각하면 (슬픈 느낌의) 단조일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장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이든은 죽음 앞에서 초연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루토스와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예술성을 억압받았던 음악가들이죠. 이번에 연주하는 곡들은 이 두 분이 1958년과 1960년에 각각 작곡한 음악들입니다. 그야말로 당대를 비추는 거울 같은 곡들이죠. 2차대전과 전체주의의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참으로 깊은 애도의 감정을 담고 있는 음악입니다.”

장례식에서 연주해달라고 한
하이든 교향곡 44번 ‘슬픔’ 등
코로나 희생자를 위한 레퀴엠
셀 수 없이 많은 연주회 취소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죠

하이든의 3악장 아다지오는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1주제가 담담한 슬픔을 읊조린다. ‘장송 음악’은 폴란드의 루토스와프스키가 헝가리의 음악가 버르토크를 추도하면서 쓴 곡이다. 위대한 작곡가 버르토크는 파시즘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45년 뉴욕의 한 병원에서 백혈병으로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 쇼스타코비치는 1960년 작곡한 현악4중주 8번의 자필 악보에 “파시즘과 전쟁 희생자들을 애도하며”라고 적었다. 이 ‘희생자들’이라는 범주 속에는 쇼스타코비치 본인도 포함된다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 특히 루토스와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장송과 애도의 마음이 참으로 절절하다. 두 곡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처음 8마디의 선율에서 이미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듣는 이의 몸과 마음이 열려 있기만 하다면 작곡가의 진심은 얼마든지 전해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겪어보는 환란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고통에 처한 이들이 여전히 많다. 공연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예정했던 수많은 무대가 사라졌다. 국내에서 서울시향 부지휘자, 경기필하모닉 상임지휘자 등을 역임하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활약해온 성시연은 “참으로 우울한 시간을 견디고 있다”고 털어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때문에 허망하고, ‘무슨 일을 하면서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상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비로소 ‘견디는 힘’이 생겼다”고 말을 이었다.

“껍데기를 벗고 순수한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현실적으로 연주 활동을 못하게 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또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음악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요즘 저는, 음악이 세상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많습니다. 물론 그에 대해, 나는 이런 해답을 찾았노라고 몇 마디 말로 얘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연주회가 취소됐는지를 묻자, 성시연은 “셀 수 없이 많다”면서 허허롭게 웃었다. “특히 미국 연주는 100% 취소됐다”고 말했다. 그 막막한 느낌이 전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성시연은 올해 상반기에도 여전히 중요한 연주 일정들을 앞두고 있다. 앤트워프 심포니, 바르셀로나 심포니, 스페인 국립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할 예정이다. “해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지난해의 연장이죠. 상반기 연주회들이 취소될지, 아니면 예정대로 연주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만 저는, 현재 저에게 주어진 이 연주회들이 취소되지 않고 진행된다면, 제 영혼을 음악에 다 쏟아붓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이어서 성시연은 오는 21·22일 연주회와 관련해 청중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애도의 마음으로 시작해서 묘비를 세우는 심정으로 마무리하는 연주회입니다. 마지막 음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침묵으로 함께해 주시기를 그날 공연장에 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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