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중단 없는 핵능력 강화' 강조..향후 협상 기선 잡기
[경향신문]
북한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에 맞춰 핵보유국 지위와 핵무력 강화를 골자로 한 ‘강 대 강, 선 대 선’의 대미 전략을 지난 9일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5일부터 진행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노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를 전하면서 이 같은 전략에 따라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밝히고 “새로운 조·미(북·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번 당 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국방력 강화를 명시하고 이를 국가 운영의 기본방향임을 분명히 했다. 대남·대미 전략도 이 같은 방침에 따르고 있다. 국방력을 강화함으로써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대외 메시지를 통해 조 바이든 신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의도하는 북·미관계와 북핵 협상의 전개를 짐작해볼 수 있다. 미국의 정권교체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북한의 대미 메시지를 강경하게 발신함으로써 향후 북·미 간 협상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철회에 새 조·미관계 달려”
강경 태도로 ‘바이든 정부에 밀리지 않겠다’ 의지 표명
북한은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힘의 원천으로 그동안 발전시켜온 핵무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췄다. “핵능력을 감축하면 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바이든 당선자에게 ‘중단 없는 핵능력 강화’로 맞선 것이어서 바이든 행정부 초반 북·미 간에 상당한 긴장과 진통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 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단계에 있다”며 핵잠수함 개발이 추진되고 있음을 처음 공식화하고 장거리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목표로 제시했다. 특히 미국과의 거리를 콕 집어 ‘1만5000㎞ 사정권’의 핵 선제 및 보복 타격 능력 고도화를 강조한 것은 미국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사일 발사와 같은 행동적 도발 대신 언어 위협을 통해 마찬가지의 효과를 노린 ‘절제된 도발’이다.
당 대회를 통해 북한이 밝힌 대미 요구는 적대시 정책 철회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 첨단무기 한반도 반입 중단 등으로 요약된다. 이 같은 요구는 2019년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에서 북한이 밝힌 전제적 조건과 동일하다. 여기에 북한은 핵미사일을 장착한 핵추진 잠수함 완성계획을 밝힘으로써 미국의 부담을 가중시키려는 의도를 보였다. 미 행정부 교체를 맞아 협상 문턱을 더욱 높이고 공을 미국에 넘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대미·대남 전략에는 핵무력 완성으로 인한 자신감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의도도 강하게 드러나 있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책임적인 핵보유국’을 자처하면서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해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8년 북·미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이 보고에서 “적대적인 조·미관계 사상 처음으로 열린 두 나라 최고수뇌들의 직접회담에서 당중앙은 강한 자주적대를 가지고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을 확약하는 공동선언을 이루어내였다”고 언급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합의의 연장선에서 북·미관계를 다뤄 나가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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